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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지프의 랭글러 80주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은 가속 페달을 밟자 기다렸다는 듯 가볍게 치고 나갔다. 엔진 소리는 루비콘에 비해 가벼웠고 노면의 소음은 적었다. 오히려 주행에 재미를 느낄 만큼 차와 도로는 부드러운 마찰로 온몸을 간지럽혔다.

지프의 80주년 에디션을 만나면 우선 기존 모델에 비해 특징 있는 색상으로 매력을 뽐낸다.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색상이 있긴 하지만 몸체부터 휠에 이르기까지 리미티드 버전(limited version)만의 절제미와 세련된 이미지를 풍긴다. 기념 에디션이지만 화려한 기대와 달리 기본에 충실한 멋을 갖췄다. 

시승차량은 80주년 기념 에디션만의 그라나이트 크리스탈 메탈릭(Granite Crystal Metallic) 색상을 입은 휠과 바디를 바탕으로 파워탑이 적용된 녀석으로, 글래디에이터보다는 정제된, 그러면서도 단단한 모습이었다. 일반 운전자라면 외관만 보고 한눈에 차이점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지프 애호가나 자동차 마니아 정도 수준에 이르면 차이점을 꽤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는 유사해 보이는 외관을 제외하고는 글래디에이터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글래디에이터에 적용된 3.6리터 V6 펜타스타 가솔린 엔진은 8단 자동변속기와 함께 284마력의 최고출력과 36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그랜드 체로키 역시 동일한 엔진을 적용해 유사한 수준의 능력을 보여줬다.

그런데 랭글러의 파워트레인은 사뭇 다르다. 2.0리터의 직렬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을 얹었다. 역시 8단 자동 변속기를 얹고 셀렉트 트랙 사륜(4W) 시스템을 적용해 272 마력의 최고출력과 40.8kg.m의 최대토크로 도로를 질주한다. 

글래디에이터나 그랜드체로키와 다른 엔진이지만 2.0리터라는 수치를 무색하게 할 만큼 강력한 토크로 힘을 뿜었다. 도로 주행에서 엔진이 차량을 끌어주는 힘은 4륜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미는 힘과 맞물려 남아도는 힘을 과시했다. 

파워탑을 적용해 버튼 하나로 1열과 2열의 지붕을 완전히 개방할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하늘이 맑아 창과 지붕을 함께 열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그 상쾌함을 한번 맛보고 난 다음, 주행하는 내내 수차례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게 만들었다. 

2.0리터 엔진의 장점이었을까. 실 주행거리로 600km(도심 1 : 고속도로 9)를 달려왔음에도 연료가 여유롭게 남았다. 도심 주행 위주라면 연비는 훨씬 떨어질 수 있다. 2톤의 무게이긴 하지만 2.3톤의 글래디에이터보다 300kg이나 가벼우니 가능한 연비 성적으로 생각된다. 

글래디에이터가 레저(leisure)를 위한 용도로 각광을 받고 있는 반면 랭글러는 레저를 넘어 도심형으로도 손색이 없다. 2열 뒤에 이어지는 적재 공간은 900리터의 공간을 제공한다. 2열 시트를 폴딩(folding)하면 동급 최대 규모의 차박 공간도 마련된다. 여기에 완전 오픈되는 지붕을 고려하면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 캠핑을 즐길 수도 있다. 

시승차는 온로드용 타이어를 신고 고속도로에서 고속 주행의 진가를 발휘했다. 돌아오는 길, 천장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사방에 울려 퍼지는 음악으로 샤워하며 질주했다. 앞쪽 창의 세워진 각도만큼이나 바람을 받아내는 기운이 느껴졌다. 이 맛은 랭글러를 타본 자만이 알 수 있는 특권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