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그때 누군가 거칠게 문을 열려고 했다. 방문이 곧 부서질 것 같았다. 수원은 전화를 끊고 초조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창 쪽에 완강기가 있었다. 화재가 나면 비상 탈출용으로 쓰는 것이었다. 15층이긴 하지만 잘만 타고 내려가면 탈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원이 창문을 열어 밖을 확인하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나!”옥상에서부터 줄을 타고 내려온 특공대원이 방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수원은 얼른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특공대원이 유리창을 깨고 날렵하게 방안으로 들어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2.19 18:44
-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진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노랫말을 따라 불렀다. 심장이 약한 진숙은 조용한 노래, 그중에도 트로트를 좋아했다. 이제는 나이가 너무 든 탓인지 귀도 잘 들리지 않아 꼭 이어폰을 끼어야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나는 젊을 때부터 가슴이 콩콩 잘 뛰었어. 목소리가 큰 아버지가 나를 꾸지람할 때는 심정이 멎을까 봐 걱정을 할 정도 였으니까.”평소에 할머니 진숙이 늘 하던 말이었다.“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소.”진숙 할머니가 귀여워하는 이웃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2.19 18:39
-
“나도 봤어.아무래도 그들 사이에 뭔가가 있어. ㅎㅎㅎ”“얌전한 뭐가 뭐한다더니... 정말 그럴 수가 있을 까?”관리팀의 두 여사원이 커피 자판기 앞에서 아까부터 남의 험담을 늘어놓고 있는 모습을 못 본 척하고 있던 팀장은 그들의 이야기가 점점 인신 공격적으로 나가자 한마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너희들 확실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남을 그렇게 뒷담화의 부뚜막에 올려놓을 수 있어?”그러자 그들은 오히려 팀장의 말을 반박하고 나섰다.“아니예요. 그건 팀장님이 잘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세요.”팀장은 그들의 반박이 내심 괘씸했다.-라떼는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2.15 08:54
-
“비행기가 어느 쪽에서 날아왔습니까?”서생면 쪽에서 날아와서 월내 쪽으로 가다가 되돌아 왔습니다.”“서생면 면사무소 쪽을 말하는 거군요. 원자로를 기준으로 보면 동북쪽이지요. 반대쪽은 남쪽이고요. 임랑 해수욕장이 근처에 있지요.”문동언 경위가 말했다.“거긴 비행장이 없는데... 바다에서 비행기가 뜰 리도 없고.”손진훈 과장이 혼잣말을 하다가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비행기에 조종사가 없었던 게 확실하군요?”“조종사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비행기에서 한 사람이 탈출한 것은 틀림없어요. 비행사 모자를 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혹시 비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2.15 08:49
-
파주 본가에서 시어머니가 다녀갈 적마다 가빈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금이 봉건시대도 아닌데 아들을 낳아야 여자 구실을 한다고 닦달하는 시어머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혼한 지 이제 겨우 3년, 아직 24평짜리 아파트 월부금도 다 갚지 못했는데 애기가 뭐 그렇게 급한 일인지 가빈은 도무지 시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가빈은 아침 열 시가 다 되도록 설거지도 하지 않고 고양이 낯짝만 한 작은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면서 시어머니 일을 되생각해 내고 있을 때였다.-내 나이가 어때서~♪핸드폰이 청승맞게 노래를 토해냈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2.05 17:49
-
이어서 육군 지역 사단 작전 참모와 서울의 경찰청장, 부산시장이 대책실에 들어왔다.“현장 주변 1킬로미터까지 병력을 배치하고 출입 통제를 했습니다.”사단 참모가 보고했다.“경찰에서도 특공대가 대기 중입니다. 만에 하나 방사능 오염이 있을 것에 대비해 주민을 소개시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경찰청장이 보고했다.“다행히 방사능 오염은 없는 것 같습니다.”김종호 사장이 말했다.“자폭한 조종사의 흔적은 찾았나요?”국정원 부산 지부장이 부산 경찰청장을 향해 물었다.“아직, 현장 감식을 못하고 있습니다.”경찰청장이 여기저기서 전화를 받다가 대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2.05 17:44
-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화가로 이름난 심춘 백정휴 씨가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연다고 한다. 심춘의 공식 경력은 서울 Y대학의 건축과를 나온 뒤 파리, 이태리 등에서 20여 년간 회화 공부를 하고 돌아 왔다고만 되어 있다.심춘이 유럽의 무슨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그로테스크한 화풍은 국내에서 극찬과 혹평의 양극을 이루었다. 그 중에도 신예 평론가인 황보 진 씨의 평은 신랄했다. 도대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내세우는 그의 주장은 어불성설일 뿐 아니라 그림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특히 그의 주 소재인 백사(白蛇)를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1.29 16:13
-
남자는 비행기 조종석에 올라탔다.“출발한다.”“굿 럭!”여자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땡큐. 아홉시에 거기서 만나.”남자가 시동을 걸자 프로펠러가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우렁찬 소리를 냈다. 10초쯤 지나자 비행기는 은빛 날개를 반짝이며 골프장 초원을 내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8번 홀 페어웨이가 다 끝나기 전에 사뿐히 날아올랐다. 숙련된 조종 솜씨였다.경비행기가 무사히 날아오르자 페어웨이에 남아 있던 남녀는 재빨리 지프를 몰고 카트 길을 따라 골프장 밖으로 사라졌다.수원은 일찍 일어나 식사도 거른 채 회사로 달렸다. 오늘은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1.29 16:09
-
내가 장흥의 카페에서 나설 때는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였다. 뜨겁던 첫여름이 지나고 장마가 시작되려는 전주곡으로 내리는 부슬비였다.“시간도 늦고 차편도 없는데 우리 올 나이트로 한잔 더 하지요.”일행 중 한 사람인 민속학자 정 박사가 붙들었으나 나는 내일 충주캠퍼스에 가서 특강을 해야 되기 때문에 집에 가야 했다.“아니오. 택시나 하나 불러주면 여기서 일산까지는 금방이니까.”“꼭 가야 한다면 그렇게 하지요.”내가 밖으로 나오자 정 박사가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르려고 했다. 바로 그때 지붕에 노란 불이 켜진 택시 한 대가 우리 앞에 와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1.22 15:57
-
성격이 우직하고 충성심이 강한 김형욱은 1974년 4월 한국을 떠나 미국에 망명을 요청했다. 그리고 박정희 독재 정권을 맹렬히 비난했다.육사 8기로 5?16 쿠데타에 참여한 김형욱은 저돌적이고 공작에 능한 인물이었다. 중앙정보부장 시절 인민혁명당 사건을 발표하면서 혁신계 인사, 언론인, 교수, 학생 등 41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시키기도 했다.그러던 김형욱이 이번에는 박정희의 인권 탄압과 유신 독재에 화살을 겨누었다. 물론 거짓이었다. 미국을 속이고 박정희의 밀명을 수행하기 위한 망명 위장이었다.한국과 핵에 관한 협정을 체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1.22 15:55
-
그해 로마의 겨울은 대단히 따뜻했다. 아내와 나는 북 유럽을 여행 하다가 로마에 갔었는데, 날씨가 너무나 청명하고 따뜻해 마치 우리나라의 늦가을을 맞는 듯한 날씨였다.우리 부부가 함께 로마에 간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우리는 콜로세움 근처에 있는 사보이 호텔에 여장을 풀고 여기에 온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하듯 렌트카를 타고 시내 관광에 나섰다.우리가 시내로 나가기 전에 호텔의 지배인은 우리에게 경고를 주었다.“요즘 로마는 어수선합니다. 특히 정치테러가 심해 잘못 휩쓸리면 큰 봉변을 당하지요. 해가 떨어지기 전에 호텔로 돌아오는 것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1.15 18:40
-
영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국가에 대한 신념, 원전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자신의 일에 대해서도, 심지어 연인한테조차 일정한 거리를 두고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는 성민과 대조적이었다.수원은 몇 주 전에 들은 소문이 생각났다. 회사 내에 핵무기 개발을 옹호하는 비밀 동아리가 있다는 말이었다. 영준이 그 동아리의 주축 멤버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신념과 자부심이 방향을 잃고 질주하면 맹목적 애국심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다 왔습니다.”수원은 영준과 함께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영준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1.15 18:38
-
혜련은 이런 경우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지 난감했다. 기획실에 근무하는 박연실 언니에게 상의할까도 생각해 봤으나 도저히 그 일만은 상의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에서부터 화장품 하나 사는 일도 박연실 언니와 이야기 했는데, 어쩌면 중대하다고보면 그렇기도 한 이 일을 상의할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은 상대방도 상대방이지만 우선 자신의 평판에 관한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상대방이란 혜련이 근무하는 영업2과의 천용세 과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혜련은 입사한 지 1년도 채 안 된 초년생인데다 부사장실에 근무하다 여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1.08 16:04
-
“고정 IP는 뭐고 유동IP는 뭐예요?수원이 궁금해서 물었다.“글을 올릴 때 사용한 컴퓨터가 고정 IP와 연결된 것이 있고, 올릴 때 마다 임시 IP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 유저들은 그런 구분을 잘 못하지요.”“시간이 급박하지 않나요? 지난번 폭발물은 조기 발견해서 무사했지만 이번에는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잖아요.”“물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액체 폭탄이 냉각수 케이블에 들어가서 폭발해도 정말 방사능 누출 위험이 없을까요?”허견 수사관도 원전의 안전성에 관해서는 사전 지식이 별로 없는 듯했다. “취수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1.08 16:01
-
자재과의 공도식 과장 하면 사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우선 사내의 모든 과에서 사무용품이나 비치할 물품을 사야 하는데 공 과장의 결재를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팩스 용지가 떨어져 새로 타내려고 하면 두번, 세 번 공과장에게 다녀가야 한다. 왜 물자를 헤프게 쓰느냐며 무턱대고 잔소리부터 시작해서 용지 사용대장을 가져오라느니, 그쪽 과장의 설명서를 가져오라느니 하면서 사람을 괴롭힌다. 특히 자기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들에게 심하게 군다.타 과의 사람들도 공 과장이라면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드는데 같은 자재과에 있는 사람들은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2.31 16:58
-
영준과 헤어진 수원은 천천히 걸어 사무실로 돌아오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김형욱과 박정희, 그리고 아버지 한용국. CIA와 KGB, 대한항공 902편. 아나톨리와 원자력 발전소, 그리고 대한민국. 수원은 마치 퍼즐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이 모든 단어가 아버지의 죽음을 푸는 열쇠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갑자기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수원은 벌떡 일어나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메모지를 꺼내 글씨를 썼다.A. N. A. T. O. L. Y수원은 알파벳 일곱 글자를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수원은 오후에 정기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2.31 16:57
-
정세찬은 맥주잔을 단숨에 들이켜고 말을 이었다.“박정희는 곧바로 미국에 있는 한국계 핵물리학자 2백여 명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등 미사일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만약 박정희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1980년 10월 1일 국군의 날에 핵무기를 선보였을 겁니다. 이런 계획이 담긴 문서가 최근에 발견되었거든요.”“정말이에요?”수원이 고개를 갸웃했다.“1979년 김재규가 박 대통령을 암살한 것도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미국이 사주한 일이란 말이 떠돌 정도입니다.”“어머!”유미가 놀랐다.“1971년에 핵무기 제조 계획을 세웠고 19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2.24 17:38
-
세상에서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일까?아마도 죽음이 가장 두려운 대상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면 이 세상에서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사람의 죽음, 그것도 살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 바로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은 그 원형이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일이다. 물론 뤼팽 시리즈 같은 경우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추리소설로 유명하지만, 그 외 대부분 추리소설은 살인범과 탐정의 목숨을 건 대결로 이루어져 있다.완전범죄를 꿈꾸는 살인범의 두뇌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탐정의 두뇌도 이를 앞지르기 위해 발달해 왔다.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2.24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