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 가해자 대부분 미성년자로 밝혀져
피해 중고등학생 호소 “두려움에 떨고 있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의 딥페이크 대응 긴급 브리핑 [교육부]
오석환 교육부 차관의 딥페이크 대응 긴급 브리핑 [교육부]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AI 기술을 활용한 이른바 ‘딥페이크’ 성 착취물 피해가 계속 속출하고 있다. 이 가운데 미성년자 피해자도 다수 발생하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는 상황. 기술 활용의 간소화로 미성년자가 가해자인 경우도 과반을 넘어섰다. 국회는 동시다발적으로 법률개정안 발의에 나섰지만, 일각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도 성 착취물 피해는 2015년부터 공론화돼 꾸준히 발생해 왔다. 경찰이 다각도 수사 기법으로 범죄 척결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나, 제도 수립과 정책 보완이 신속히 이뤄지지 않는 한 디지털 성범죄는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불법합성 이른바 ‘딥페이크’ 성 착취물에 대한 피해자가 속출한다.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성범죄 유형 또한 고도화되며 입법·행정력이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디지털 성 착취물로 세간이 떠들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소라넷, 2018년 웹하드 카르텔·다크웹, 2020년 ‘n번방’ 등 족히 10년은 디지털 성 착취 사건이 수 차례 발생했다.

이때마다 시민과 전문가들은 처벌 수위 강화, 법제도 개선 등 입법부·행정부 차원의 강력한 조치를 요구했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사건이 거듭 반복되며 정부마다 강조했던 ‘강력한 조치’는 미약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딥페이크 피해자 10명 중 6명 ‘미성년자’

이번 텔레그램 사태를 계기로 딥페이크 피해자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부터 청소년들은 이미 범죄 위험성에 노출돼 있었다. 일각에서는 끊임없이 위험신호가 있었으나 선제적인 대응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월3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2023년 경찰에 신고된 딥페이크 영상물(AI 기술을 통해 편집된 합성음란물) 사건의 피해자는 총 527명으로 그중 315명, 59.8%는 10대 청소년이었다.

이는 20대 32.1%, 30대 5.3%, 40대 1.1% 등 다른 연령대에 비해 월등히 큰 비중이다. 딥페이크 미성년자 피해자는 2021년 53명에서 지난해 181명으로 2년 만에 3.4배 증가했다. 나아가 기술 발전으로 딥페이크 제작 방식이 쉬워지며 미성년자 가해자 비중도 눈에 띄게 늘었다. 

딥페이크 범죄 혐의로 입건된 전체 피의자 중 10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2021년 65.4%, 2022년 61.2%에서 지난해 75.8%로 상승했다. 올해 1~7월까지도 73.6%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딥페이크 범죄가 청소년들 사이 만연해지는 상황에서 정부의 뾰족한 대책은 나오지 못했다. 이에 선제적 예방보다는 사건 발생 후 수사기관의 처벌에만 의존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로 공론화가 되자 국회는 여러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국회, 동시다발 개정안 발의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은 이른바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법’을 대표발의하며 “불법 촬영물과 달리 딥페이크 영상과 같은 허위 영상물에 대해서는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한 자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라며 “허위 영상물의 편집·배포 등의 법정형을 불법 촬영물과 같도록 상향하고, 허위 영상물 등을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한 자까지 처벌해야 한다”라고 개정 이유를 밝혔다.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정 의원은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에 대한 심각한 인격권 침해이자 사회적 살인행위”라며 “경제적 이득을 끝까지 몰수해 디지털 성범죄 뿌리 뽑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남희 민주당 의원은 ‘성폭력처벌법’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어 “딥페이크를 악용한 영상물은 쏟아지지만, 계정 삭제와 같은 플랫폼 대응이나 처벌에 대한 법적 규제는 미비한 상황”이라며 “법 개정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뽑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나아가 황명선 민주당 의원도 정 의원과 같은 법률안의 개정안을 발표하며 “5년 전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n번방 이후 또 다시 수많은 여성을 불안에 떨게 할 어두운 실태가 드러났다”라며 “국회는 물론 국가 전체가 함께 나서서 우리 사회에 무섭게 퍼져가는 온라인 성범죄의 뿌리를 반드시 뽑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회의 동시다발적인 즉각 대처를 두고 아직 문제 개선의 여지는 남아있다는 평도 나온다. 하지만 10여 년 동안 꾸준히 지적된 문제를 사건이 공론화되고 문제가 심화되자 움직이는 것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불법합성물 발견 학교 지도 [딥페이크 지도(deepfakemap) 캡처]
불법합성물 발견 학교 지도 [딥페이크 지도(deepfakemap) 캡처]

고등학생 호소 “학생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지난 8월27일에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동시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등학교 3학년의 손편지를 공개했다.

자신을 국민의힘 전남도당 청소년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한 A 학생은 “최근 친구들을 비롯한 각종 언론에서 떠돌고 있는 내용들이 가히 충격적이고 결코 가볍게 넘어갈 만한 사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는 것 같다”라며 “당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운을 떼게 됐다”라고 호소했다.

이어 “몇 년 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는데도 최근에 또다시 텔레그램을 이용한 비슷한 일이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다”라며 “지인의 SNS에 올라온 사진들을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불법 합성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라고 상황을 전달했다.

한 대표는 이를 두고 “딥페이크 범죄의 피해대상이 확대되고 실상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우려가 크다”라며 “AI를 악용하는 것도 사람이지만, 이를 예방하고 제한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다. 법과 제도 안에서 악용은 막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지난 8월29일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시·도청 사이버 전담팀 위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위장 수사, 탐지 소프트웨어 활용 등 다각도로 적발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전했다.

현재 n번방이 지난 21대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AI 기술을 활용한 성범죄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제도, 정책은 미비하다. 날이 갈수록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진화하는 성범죄 양상을 근절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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