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목은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으리, 급하옵니다.”
마천목은 계속 재촉을 했다.
그러나 무안군은 도로 뒤로 벌렁 드러눕고 말았다. 마천목과 김용세는 할 수 없이 외궁 마당으로 다시 나왔다.

“빨리 집으로 가자.”
정안군이 양 발로 말의 잔등을 찼다. 궐내서는 말을 탈 수 없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 회안군, 익안군 등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상당군은 정안군의 말꼬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누국 앞을 지나 영추문으로 나와 도당을 뒤로 두고 정안군의 집을 향해 달렸다.

김용세도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헉헉거리며 뛰었다. 그는 뛰면서도 자기가 왜 이 일에 휘말려야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눈에는 노모와 죽은 동의, 그리고 신홍아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김용세는 정안군의 말을 따라 계속 뛰었다. 어느새 도망갈 생각은 없어졌다. 도당 앞을 지나 이조, 호조 건물 뒤로 돌아 순군만호부 옆으로 빠져 광통교로 나왔다. 광통교를 건너 얼마 안 가면 목멱산(안산, 남산) 아래에 정안군의 집이 있다.
정안군은 중추부 뒤에 작은 집이 있었으나 그곳은 쓰지 않았다. 도성 안은 아직 초저녁인데도 사람의 그림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순라꾼들도 아직 순라를 돌 시각이 아니었다.

김용세는 광통교를 지나 안산 쪽으로 가면서 가까이에 있는 태평방의 신홍아를 생각했다.
신홍아라면 이럴 경우 어떻게 했을까? 그녀는 현비를 그림자처럼 따르던 사람이니 세자의 안위를 걱정할 것이다. 그리고 현비가 한 사나이로까지 흠모하던 봉화백의 생사도 걱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김용세 자신은 지금 신홍아와는 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냉정하게 말한다면 지금 역모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왕을 해하려는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왕통을 이을 세자 주변의 합법적 세력을 제거하려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게 아니야. 지금 권력을 잡은 무리들이 그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정의롭고 충성스런 사람들을 해치려고 하는 것이고, 왕자들은 그 덫을 빠져나가려는 것뿐이다.’
그의 가슴 한쪽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그 생각에 대해 시간이 갈수록 회의를 품게 되었다.

도망치다시피 나온 정안군 일행은 동네 어귀에 이르렀다. 동네 어귀에는 정안군의 지시로 이숙번이 머물러 있는 신극례의 집이 있었다. 신극례의 집 옆에는 해산된 사병들이 쓰던 빈 군영이 있었다.
“빨리 신공을 깨워라.”
정안군이 말에 탄 채 호령하자 마천목이 대문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곧 행랑 노비가 뛰어나왔다.

“이숙번 대감을 빨리 모셔라. 정안군 나으리시다.”
마천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옷에 갑주 투구를 쓴 이숙번이 말을 끌고 급히 나왔다. 곧 이어 군영 쪽에서도 무장한 갑사 세 명이 말을 몰고 나왔다. 그들은 창과 철퇴, 활을 메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숙번이 말 위에 있는 정안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신극례 집의 노비들이 횃불을 들고 나왔다. 말 위에 앉은 정안군의 얼굴은 횃불 탓인지 굳은 각오로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여겨서는 아니 된다. 피를 흘리지 않고 이 일을 수습할 방도는 없는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좌우간 우리 집으로 가자!”
일행은 정안군의 집 앞에 닿았다. 거기에는 벌써 여러 명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으리, 살아 오셨구려.”

부부인 민씨가 달려가 정안군의 말 안장을 잡았다. 거기에 모인 사람은 이숙번과 그의 갑사 세 명, 익안군, 상당군, 회안군 부자 그리고 이거이 부자, 조영무(趙英茂), 신극례, 서익(徐益), 심귀령(沈龜齡)과 민무질, 민무구 형제, 마천목, 김용세 등이었다.
말을 가지고 있고 기병 역할을 할 만한 사람이 모두 아홉 명이었다. 그 밖에 보병으로 싸울 만한 사람은 모두 합쳐야 열 명 정도였다.

“남문 밖에 있는 군사를 불러올까요?”
이숙번이 정안군을 보고 물었다.
“우리가 대궐을 치자는 것이 아니오. 그 군사는 나중에 도성 질서를 잡는 데 쓰면 될 것이오. 사람을 보내 항상 대기하라고 이르시오.”
정안군이 말에서 내렸다. 그는 비로소 부부인을 보고 아는 척했다.
“밤바람이 흉흉하니 부인은 안에 들어가 계시오.”

그러나 부부인은 들어갈 자세가 아니었다. 들어가기는커녕 그녀는 소근 등 노비들을 데리고 광으로 들어가 한참 있다가 무기를 한아름씩 안고 나와 정안군 앞에 놓았다.
“아니, 이 창과 칼들은 다 어디서 나온 것이오?”
정안군이 놀라 물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준비해 두었지요. 저번 사병을 해산할 때 훗날을 위해 제가 몰래 감추어 두었던 것들입니다.”

모인 사람들이 모두 숙연해졌다. 그러나 김용세는 민씨 부인이 보통 여자가 아닌 계략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방원의 집에서는 오래 전부터 정권의 무력 탈취를 준비해 왔다는 말이 된다.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김용세는 세 가지 입장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본처 소생의 왕자이며 손위인 아들이 다섯이나 있는데도 나이 십여 세인 막내를 세자로 봉해 순리를 어긴 점. 둘째, 지금은 비록 죽고 없지만 파당을 형성해 사후에도 자기가 낳은 아들만을 지키게 한 현비의 이기주의적 폐해. 셋째, 현비의 세력들은 장차 버거운 인재들을 무슨 올가미든지 씌워 목숨을 뺏는 지경에까지 가게 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도전 등이 정말 그들의 말대로 왕자들을 죽이려 했다면 그것은 맞는 예측이었다. 그러나 김용세는 봉화백이 오늘 밤 그런 음모를 정말 꾸밀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 지사, 오늘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소?”
정안군이 이숙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겁낼 것도 없습니다. 군호나 내려주십시오.”

이숙번이 군호를 달라고 한 것은 밤에 아군끼리 부닥칠 때 암호를 대자는 뜻도 있지만, 그것보다 출전 명령을 내리라는 뜻이었다. 국록을 먹는 자가 정당한 계통이 아닌 사적인 사람으로부터 출전 명령을 요청한 것은 중대한 뜻이 있다. 장차 그를 군왕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정안군은 한참 동안 묵묵히 있었다. 모인 사람들도 모두 숨을 죽이고 정안군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한참만에 그가 무겁고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군호는 산성山城!”
그때부터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부인이 준비한 무기를 하나씩 골라 잡았다. 소근은 긴 칼 하나를 허리에 차고 다시 철삭을 손에 들었다.
“야밤에 활은 가져가서 뭣해?”

무예가 뛰어난 대장군 심귀령이 조영무를 보고 말했다.
“활을 가지고 가야 하오.”
이숙번이 결론을 내렸다. 무기가 없는 노비들은 몽둥이를 들고 나왔다. 그때 회안군 방간의 집에서도 노비 서너 명이 달려와 합세했다. 모두 기골이 장대해 힘깨나 쓸 만한 놈들이었다.

“자, 출정.”
“산성!”
일제히 군호를 외치며 광화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제1차 왕자의 난, 혹은 방원의 난 또는 무인정사戊寅靖社’ 라는 불상사가 시작되었다.

그 시간에 경복궁 안에서도 긴장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청량전에 있던 왕의 병이 점점 더해 가자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 청량전은 궁의 동쪽 건춘문으로 가는 곳에 있었다. 기와나 창호들을 여름에 대비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도록 지은 전각이었다.
왕은 왕비가 생전에 쓰던 교태전으로 옮겼다. 세자는 강령전으로 가자고 했으나 왕이 그곳에 가고자 했다.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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