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타는 말과 소연, 대연 및 왕비의 교자 등도 여기서 관리한다. 왕자들이 오면 수행자들은 여기나 빈청에서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갑니까?”

김용세는 꼭 대답을 들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아주 심각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더니 김용세를 사복시 집무청 뒤로 끌고 갔다. 그는 궁장 은행나무 아래에 앉았다. 어느새 샛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 가을이 가까웠음을 알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한판 붙을 것만 같은데……. 나으리께서 전하를 배알하러 가신 것은 봉화백의 안하무인식 거동을 혼내시려는 것이오. 아, 글쎄 봉화백이 우리 나으리를…….”
그는 엄청난 이야기를 김용세에게 들려주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왕의 이복 형제이며 정안군의 숙부인 의안군 이화李和가 정도전에게 맹랑한 이야기를 전달했다.
“역술에 뛰어난 관식(關植)이란 자를 만났는데…….”
“역술?”

정도전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는 역술이나 도참설 따위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왕이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자 할 때에도 도선비기나 풍수설보다는 현실론을 택했던 사람이다.
“예. 그 자는 왕실의 장래 일을 지난날에도 많이 예언해서 적중했지요.”
이화가 너무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정도전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가 이르기를…….”

그는 사방을 둘러보고는 정도전 앞에 얼굴을 바싹대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자 저하와 배다른 형제들 중 왕이 될 신수를 가진 분이 여럿 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배다른 형제라면 영안군을 비롯해 신의 왕비 한씨 소생의 다섯 형제나 있지 않소?”
정도전이 흥미를 보이자 이화는 말을 계속했다.
“모두가 세자 저하보다 훨씬 연장이시니 저하보다 뒤에 보위에 오르는 일은 없을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뻔한 일이지요.”

영안군 이하 왕자가 다섯이라고 한 것은 장남 격인 진안군(鎭安君) 방우(芳雨)가 죽고 없기 때문이다. 그는 술을 너무 즐기는 바람에 어느 날 만취하여 쓰러지고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크게 걱정 마시오. 아무리 많아도 없애면 그만이지요.”
정도전이 뜻밖의 말을 했다.
덩치 큰 마천목이 여자처럼 소곤소곤 이야기하고는 김용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서운 일입니다.”

“봉화백이 사대부집 사병들을 자꾸 해산시키자고 전하께 조르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여러 관아에서 사병 해산의 계를 올렸다. 그중에도 봉화백의 직계이며 왕의 조카 사위인 우산기상시 변중량(卞仲良)의 상계는 아주 강도가 높았다. 그는 특히 왕자들이 사병 해산에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천목은 헤어질 때 자기가 한 말을 입 밖에 내면 큰소동이 날 테니 절대 비밀을 지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튿날 김용세는 승정원 뒤로 산책을 나갔다. 그는 사정전으로 통하는 협의문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강령전이나 사정전에 있을 상궁 신홍아가 어쩌면 이곳에 나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신홍아를 안 것은 일 년도 채 안 되지만 왠지 그녀의 얼굴이 가끔 떠오를 때가 있었다. 홍아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은 죽은 아내에 대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신 상궁은 나오지 않고 뜻밖에도 문하부 참찬 이거이(李居易)를 만났다.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김용세는 놀라 우물쭈물했다. 서운관의 당하관이 이렇게 궁중 깊숙한 곳에서 얼쩡거린다는 것이 어찌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금위의 갑사들이라도 보았다면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모른다.
“별 바쁜 일 없으면 날 따라와 택일을 좀 해주게.”

그는 아주 심각한 얼굴로 앞장서서 걸었다. 김용세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따라갔다. 그는 광화문 쪽으로 한참 걷다가 동궁전 앞에 있는 청량전의 빈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 좀 앉게.”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밖에 믿을 사람이 없어. 내년의 정안군의 운세를 좀 보아주게.”
“예?”
김용세가 놀란 것은 그의 심각한 표정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명운을 보는 일은 자기의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들은 풍월로 못할 것도 없었지만 어쩐지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은 절대 비밀을 지켜야 하네. 그럼 내일 사람을 서운관으로 보낼 테니 실봉 문서로 해주게.”
그 말만 남기고 그는 휑하니 나가 버렸다. 실봉 문서란 전하에게 보고하는 문서를 단단히 봉하고 관인을 찍어 탑전에 직접 올려 전하만이 뜯어볼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거이 참찬이 말한 것은 아무래도 전하에게 보내는 것 같지는 않다고 김용세는 생각하였다.

그는 며칠에 걸쳐 무인戊寅년 정안군의 신수를 알아보았다. 말을 타고 광대줄을 달리는 운수였다. 높은 줄 위에서 말을 탄다는 것은 보통 배포나 재주로는 안 된다. 떨어지면 목숨을 잃는 아주 위험한 일이다. 그는 그대로 이거이에게 전해 주었다.
김용세는 정세가 어쩐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긴장된 나날이 계속되던 중 명나라에 신덕 왕비의 승하를 고하러 갔던 사신들이 돌아왔다.

문하부 참찬 안익(安翊), 중추원(밀직사) 동지 김희선(金希善), 예문춘추관 학사 권근(權近) 등이 명 황제의 조위문을 가지고 왔다. 왕이 봉사시에 알린 조위문은 다음과 같았다.

‘사신이 오는 편에 왕의 첫째 왕비-왕은 비빈은 여럿 두고 있기 때문에 한 말이다-인 강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 참으로 안되었구나. 왕은 으레 아침 저녁으로 그리움을 못 잊어할 것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지난날 한 가정을 왕조로 바꾸어 놓을 때 아내로서 뒷바침하기 위해 수고하고 온 나라의 어머니로서 모범을 보인 것이 강씨가 아니던가. 이제 사람은 없고 흔적만이 남아 있으니 이야말로 그리워서 견딜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가 살아 있을 때, 왕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옷을 입게 되면 강씨는 때맞춰 일어나 시중들었으며, 왕이 때가 되었는데도 식사를 잊고 정사에 골몰할 때는 강씨가 챙기면서 많은 날을 보냈을 것이다.

왕이 조회에 나갈 때는 강씨가 궁녀들을 데리고 나가 바래다 주었을 것이고, 해가 저문 뒤 돌아올 때는 강씨가 촛불 켜든 궁녀를 앞세우고 맞이해 잠자리로 들어갔을 것이다. 이제 강씨는 영영 가버리고 벽에 걸린 거울도 들여다볼 이가 없다. 왕이 새벽 조회를 보러 나가도 배웅할 사람이 드물 것이고, 밤에 잠자리에 들어도 함께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도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은 궁녀와 여종들이 관을 만지며 우는 모습뿐일 것이다.
얼마나 마음이 상하겠는가…… (중략)…… 강씨는 이제 가버렸다. 그러나 왕은 마땅히 자기 몸을 돌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황제는 글을 보낸다.’

이 조위문을 보고 정기준이 침을 튀기며 명나라 황제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아무리 대국이라지만 남의 왕한테 이렇게 무례한 편지를 보낼 수 있는가? 남이야 밤에 혼자 자든 궁녀를 껴안고 자는 제가 그런 걱정하게 되었어? 이런 걸 보면 그냥 정도전 말처럼 쳐들어가야 하는 건데…….”
술도 마시지 않은 정기준이 그렇게 비분강개하는 것을 김용세는 처음 보았다.

현비를 장사지낸 뒤 왕은 허탈한 상태에서 거의 정사를 돌보지 않고 정릉에만 오가며 그 공사에 열중한 지도 어언 일년이 되었다. 그 동안 조정과 여엄에서는 기감이 해이해져 괴이한 일들이 속출하고, 관력을 잡기 위한 두 파당의 암투는 노골화 되어 거의 모든 관인이 두 파로 갈라져 모함을 일삼는 지경에 이르렀다.

왕은 다시 조회를 재개하였고 미몽에서 조금 헤어난 것 같았다. 그러나 양파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각하게 계속되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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