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G90, 구름 위를 달리다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는데 길이 뻥뻥 뚫렸다. 차량은 좀 있었지만 속도를 올리자 차들이 도로를 내줬다. 멀리서 달려오는 G90의 위압감은 앞서 달리는 운전자가 알아서 길을 양보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바꿔 생각해보니, 멀리서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려오는 무광의 흰색으로 덧입은 제네시스 G90이 룸미러에 보인다면 자연스레 도로를 양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광의 매력을 제네시스 G90에서 느끼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시승차를 기다리는데 놀랍게도, 나중에 찾아보고 이름을 알게 됐지만, ‘베르비에’ 화이트 무광을 곱게 덧입은 차량이 전면부에 대형 하트(♡)를 품은 채 다가왔다.
제네시스 G90이라고 하면, 그 할아버지뻘 쯤 되는 에쿠스를 떠올리는 게 자연스럽다. 그래서 당연히 짙은 검은색의 차체에 선팅도 짙게 입힌 대형 세단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모습을 떠올리면, 재벌가 회장님이 뒷자리에 타고 있을 것만 같은 상상을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하얀 설탕가루를 곱게 갈아 만든 옷을 입은 것만 같은 G90을 만나니 전혀 다른 기분이 솟아올랐다. 검은 세단의 중심이 우측 뒷좌석이라면, 무광의 흰색 세단은 핸들을 잡은 드라이버가 중심이 된다.
이름도 생소한 베르비에(Verbier)는 해발 1500m 지대에 위치한 스위스의 스키 관광지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온 세상에 빈틈없이 눈 내린 겨울의 베르비에 모습을 본 떠 무광의 흰 색을 베르비에 화이트라 명명한 것 아닐까 추정된다.
전면부 후드 그릴에 적용된 대형 하트도 인상적이었다. 제네시스를 상징하는 엠블럼 아래 대형 하트와 양쪽으로 뻗어 나가는 쿼드 램프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하트에 묶인 대형 리본 같기도 하고, 큰 제네시스 앰블럼 같은 모양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감탄하며 만났던 무광의 베르비에 화이트 G90을 타고 대나무가 유명한 담양으로 향했다. 서해고속도로에 차를 올리고 가속페달에 살짝 발을 걸쳤다. 기대 이상의 힘으로 G90은 뻗어 나갔다. 마치 바람 한 점 없는 하늘 위의 구름을 달리듯 부드러웠고, 부드러웠지만 무게감은 안정감으로 다가왔다. 국내 완성차업체의 기술력과 수준을 가장 완벽하게 대변하는 차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넓고 안정감 있게 도로의 가운데 자리 잡은 G90은 운전자의 피로도가 상승하는 시점을 고려해 일정 시간이 지나자 등줄기 뒤쪽부터 꿀렁대기 시작했다. 어깨로부터 등을 타고 엉덩이까지 마사지를 하며 졸음도 깨우고 뻐근함도 해소했다. 뱅앤올룹슨(Bang & Olufsen)의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이 적용된 스피커에서는 운전하는 내내 잔잔한 음악이 온몸을 감싸며 귀가 심심하지 않게 도왔다.
가장 큰 매력은 역시 G90의 파워트레인이었다. 8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된 3.5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은 380마력의 최고출력과 54.0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했다. 말 그대로 힘을 뿜어냈다. 고속도로를 질주하자, 멀리서 달려오는 흰색의 덩치가 보였는지 앞선 차량들이 길을 터주기 시작했다. 추월할 때 순간적으로 뿜어내는 힘이 뒷목까지 찌릿하게 와 닿을 정도였다.
핸들은 부드러웠다. 특히 좌우를 제외하고 핸들 아래위로는 크로스 그립이 없어서 장거리 주행에 손을 핸들 아래쪽에 살짝 걸치고 운전하기에도 편했다. 핸들 주변으로 위치한 물리 버튼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현대차 및 제네시스 특유의 구성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아울러 기어박스 주변부의 고급스러움은 오른팔을 주변에 거치하고도 이것저것 자꾸만 만져보고 싶게 했다.
성인 5명이 타도 힘이 달린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1인 탑승 시와 큰 차이 없이 부드럽게 나아갔다. 4인 탑승에도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 느껴지는 G90의 부드러움은 국내 최상의 프리미엄 대형 세단의 가치를 한 번 더 느끼게 했다. 시승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졸음쉼터에 들러 시트를 조금 누인 채 음악의 볼륨을 낮추고 휴식을 취했다. 주변 소리는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조용히 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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