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별로 그런 일은 없지만, 때론 밥을 해두거나 남은 밥들을 찬 속에 넣어두면 없어진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방안에 있는 이불들이랑 옷가지가 잘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날 뒤부터 나졸들이 밤 낮을 가리지 않고 해월의 집을 지켰고. 섯영서도 여러모로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잡을 수 없었고, 귀신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하루는 석영서가 포청에 나와 있을 때 지성천이 이런 말을 올렸다.
“졸렬한 의견이오나 드려도 좋겠습니까?”

“그래, 흑장 유령의 사건 말이냐?”
“저어, 소인의 생각으로는 그게 유령이 아니라 사람이 아닌가 하옵니다.”
석영서는 그 말에 바짝 긴장했다.
“그건 어째서냐?”

“그때 죽은 옥채유의 귀신이 나타날 리는 없을 줄로 아룁니다. 만약 귀신이라면 소인이 어깨를 내려쳤을 때 창에 피가 묻었을 리 만무하였을 줄로 아룁니다. 달래와 소서의 짓이 아닌가 하옵니다.”
“그건 또 어째서냐?”
“예, 평소에 그 둘이 음식이나 의복이 없어진다고 한 것은, 즉 황송한 말씀이오나 그들의 뒤에 따르는 것이 있어서...”
“음, 그들의 간부(姦夫)가 있었단 말이지.”

“예, 그러해서 그 사나이는 지하도에서 숨어 있다가 몸종들이 날라다주는 음식을 받아먹거나 의복도 받았다고 생각되옵니다. 그러던 중에 무슨 일인가가 생겨 달래와 소서를 죽이고 옥채유로 변장을 하고는... 저어, 황송하오나...”
“그래, 그 다음은 마님을 탐내 나타났다는 말이지!”
대강 이러한 말이었다.
“허나 그 시체가 발가벗겨져 하나는 벽장에 들어있고, 하나는 지하도에 있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영서가 의문을 표시했다. 
그도 그렇다. 어째서 벽장 속에 들어 있었느냐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진실로 이상한 것은 하필 옥채유로 변장을 한다는 것이다. 석영서는 그럴만한 사람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지만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건도 여기서 멈추지를 않았다. 

인심은 갖가지로 흉흉해지고 여러 곳에서 흑장 유령을 보았다는 고변이 들어왔다. 조정에는 포도대장의 무능을 질책하는 상소가 빗발쳤다. 석영서의 입장은 실로 딱했다. 아무리 힘을 쓰고 수사를 해도 모두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그럴수록 냉소의 물결은 커져만 갔다.

어느 날 흑장 유령이 해월의 침소에 다시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때 나졸들이 없었다면 해월은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유령은 우물터의 지하도로 해서 사라졌다고 하는데, 쥐구멍 하나 없는데도 그 놈은 없어지고 말았다고 했다. 
석영서는 자신이 직접 그 집에 가서 취침하기로 했다. 나졸 셋이 지키던 것을 열 명으로 더늘리고 집 안팎을 철통 같이 경비하게 했다.

석영서가 해월의 집에 와 있은 지 닷새가 지나도록 흑장 유령은 나타나지 않았다. 엿새째 되는 날 저녁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석영서가 말했다.
“자네, 요새 퍽 이상해졌어? 나보고 말도 안 붙이잖아?”
“황송합니다.”

해월은 그 이상 말이 없었다. 한참을 묵묵히 앉아 있다가 나직이 말했다.
“옥채유에 대한 세상 동정이 어떠 하온지 아시옵니까?”
“세상 사람들이 그걸 알려구?”
“알다 뿐이옵니까? 인심이 매우 흉흉하옵니다.”
“허, 그래야 뭐 별 수 있을라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무척 께름칙했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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