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천은 범인이 근처에 있으리란 생각을 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앞으로 몇 발자국 나갔는가 싶었는데, 발밑의 땅이 내려앉아 버렸다. 성천은 어디로 쳐박혔는 지 몰랐다. 
얼마를 지나서야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날이 새었고 성천은 강기슭에 닿아있었다. 건너편으로 해월 마님의 집이 커다랗게 보이는 한강 가였다.

지성천의 옷은 흠뻑 젖어 있었다. 지성천은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서려 했으나 허리가 시큼하고 결려 주저앉았다가 용을 쓰고 다시 일어났다. 허리를 만져보니 칼자국이 나 있었고 피가 배여 나오고 있었다. 지성천은 어제 싸운 귀신에게 입은 상처라고 생각하고 강가로 나왔다. 

어제 저녁의 일이 꼭 꿈만 같았다. 도깨비에게 홀린 듯도 했다. 지성천은 걸어서 해월의 집으로 행했다. 

가까이 왔을 때 나졸들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문간에는 나졸들이 창을 들고 서 있었다. 지성천의 초라한 꼴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마당에 들어섰을 때 포도대장 석영서가 나졸들을 모아놓고 무엇인가를 이르고 있었고 마루에는 백포를 덮은 시체 같은 것이 보였다.
성천은 나졸 두 명과 같이 허리를 끈으로 졸라매고는 포도대장 석영서 앞으로 가서 읍을 했다.

“아니, 이게 성천이 아니냐...”
“예, 어제 저녁은 한강에서 취침을 했습니다.”
석영서가 눈이 동그래졌다.
“게 무슨 말인고?”

석영서는 몸을 앞으로 숙이다가 별안간 왼쪽 어깨를 지그시 누른다. 그곳이 불룩하고 피가 배여있는 것이 칼에 찔리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어제 저녁 성천이 귀신에게 일격을 가한 곳도 그곳이었다. 성천은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 옥채유란 귀신이 나타나서?”
그 전 이야기는 해월에게서 들었는지 석영서가 거기부터 묻는 것이었다. 성천은 그 다음부터의 이야기를 자세히 해 바쳤다. 

석영서는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한참을 아무 말이 없었다.
“사건이 크게 벌어졌군! 여봐라! 빨리 지하도를 수색하렸다. 귀신이란 잡기에 힘든 물건인 터!”
석영서의 호통에 나졸 대여섯이 성천을 앞장세우고 지하도로 내려갔다.
“아이고 또 귀신이나 만나면 어떡하지?”

횃불을 잡고 오는 전달의 말이다. 지성천은 귀신이 도망친 지하도로 들어가며 횃불을 뺏어 쥐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지성천이 굴러 떨어졌던 비스듬한 굴을 올랐다. 몸종 소사의 시신을 포에 싸서 내보내고 다시 길을 살폈다.
“야, 이것 봐! 이건 정말 지옥이야!”
앞에 걷던 지성천이 놀라서 외쳤다. 

비스듬히 올라가던 굴은 밑이 무너져 있었고 그 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지형 상으로 보아 그 물은 한강으로 통하는 것이었다. 경사진 곳은 나무다리로 되어 있었는데 오래 되어서 그런지 썩어 있었다. 그리고 윗 쪽에는 바위 틈새로 햇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들은 나무를 가져다가 다리를 놓고 그 위로 들어갔다.

그곳은 출구인 모양인데 바위가 막혀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바위는 손쉽게 밀쳐지고 그들은 그 위로 나올 수 있었다. 그곳은 집 뒤꼍의 우물터였다. 말라버려 사용하지 않는 우물이었는데 이곳으로 나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 나졸이 사방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이건 대체 뭐야? 여자 옷이 있네그려.”

“음, 그래 이집 종 달래와 소사의 옷이로군.”
그들은 우물 옆에 널려있던 옷을 가지고 석영서 한테 부복했다. 그러나 옷이 거기에 있을 이유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석영서는 해월에게 몸종 둘이 이상한 눈치가 없었느냐고 물어 보았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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