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는 빙긋이 웃고 있었다. 희수는 차마 웃는 얼굴은 겨냥할 수 없어 겨냥지를 허벅지로 바꾸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총을 쏘았다.

마술사는 다시 접시를 앞으로 내밀었고, 총알은 그의 발 밑을 굴렀다. 희수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일순 당황했으나 곧 눈치챈 것이 있었다. 자신은 분명 허벅지를 겨냥했는데 마술사는 왼쪽 가슴을 보호하려는 자세로 팔을 뻗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이 공기총은 발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소리만 요란하게 날 뿐 실제 총알은 나오지 않았으며 누군가가 '쨍그랑' 하는 음향효과를 내주었던 것이다.
희수는 내막을 알았지만 그것을 그 자리에서 폭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이 그의 무례한 행동을 점잖게 받아준 것에 대한
예의를 자신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술사와 악수를 정중하게 나누고 내려왔다.

자리로 돌아왔는데 효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을 감탄의 눈길로 보고 있어야 할 여자가 없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짜증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곧 짜증은 걱정으로 변했다.
마술은 아직 여흥으로 몇 가지 더 남아 있는 모양이었으나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희수는 공연장 밖으로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불길한 예감이 가슴속을 뒤집어 놓았다.
화장실부터 뒤졌지만 아무런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희수는 시민회관 밖으로 뛰쳐나왔다.

허둥대던 그는 옆으로 스쳐지나가던 행인과 콰당 부딪쳤다. 그 조우가 우연이 아니라 계획된 것이라는 점은 희수의 손에 쪽지가 주어짐으로써 증명이 되었다.
B지구 공터로 쪽지에 적힌 것은 간단했지만 어느 놈이 이런 짓을 했는지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민회관을 자신의 구역으로 여기고 있는 해룡파의 짓임에 틀림없었다.

B지구 공터는 역시 희수가 자기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는 곳인데 최근에 쇼핑센터가 지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시민회관 구역을 손아귀에 넣은 해룡파는 당연히 쇼핑센터 구역도 눈독을 들이게 되었고 귀찮은 독불장군 희수를 처리해야 했고, 자기 구역에 들어온 봉을 놓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자식들을!”
희수가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는 따르는 여자가 많았기 때문에 여자란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효미가 비록 여대생이라고 해도 전문대생이었고 뛰어난 미모를 지닌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효미가 자신의 손아귀에서 적에게 넘어간 것이다. 지금 해룡파에 있는 것은 효미가 아니라 희수의 자존심이었던 것이다.
희수는 곧바로 B지구 공터로 향했다.
“야, 개자식들아! 내가 여기 왔다!”
희수가 건축자재 사이를 뛰어다니며 외쳤다. 해룡파는 웬일인지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비겁한 녀석들! 어디 숨었냐!”

다시 외치는 순간, 등 뒤에서 일어나는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희수는 얼른 몸을 낮췄다. 머리 위로 철근 덩어리가 휙  지나갔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 자식들이 아주 날 죽일 작정을 했구나.”
희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몸을 낮춘 자세에서 바로 원을 그리며 발을 날렸다.
발에 묵직하게 체중이 걸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희수는 힘을 다해서 그대로 걷어차 버렸다.

쿵소리와 더불어 한 녀석이 쓰러졌다. 희수는 그자가 들고 있던 철근 뭉치를 손에 잡아 보았다.
그러나 손아귀에 맞지도 않고 너무 무거웠다. 1회용의 기습용이면 몰라도 들고서 뛰어다닐 수 있는 성격의 무기가 아니었다.

“숨어 있지 말고 나와! 내가 그렇게 겁이 나냐!”
희수는 쌓여 있는 건축자재 더미 위로 뛰어올라갔다.
공터가 모두 내려다 보이는 곳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기습을 당할 염려가 없는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짜샤, 네깟 놈을 두려워하다가 내가 제 명에 죽겠냐?”
굵은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곧 거무스레한 형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희수 씨!”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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