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를 위로할 적당한 말을 찾아 사무실 안을 서성이던 성철이 갑작스레 지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아 양이 느끼는 것은 바로 그 일을 방해하기 위해서  보내지고 있는 텔레파시의 일종이 아닐까?”

지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런지도 몰라요. 그래서 도움이 필요해요.”
지아의 말에 성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자의 짓이라면 큰 우려는 하지 않아도 좋아. 실제로  무슨 해를 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그냥 겁을 주자는  것뿐일 게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할 수 있지요?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못할 일이 없는 법이에요.”
“지아 양의 일은 더 이상 진전이 없지?”
성철이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물었다. 지아가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이상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물론이에요.”

“우리가 확실한 증거를 잡지 못하는 한 그도 위험하지 않아.
그러니까 단지 위협만으로 그칠 수밖에.”
지아는 성철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그것은 모순이에요. 그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위험할 이유가 처음부터 없어요!”
  지아의 말에 성철도 금방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대로 물러서기에는 멋쩍은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렇진 않아. 그자가 비록 사기꾼이라 할지라도 그자를 중심으로 재기를 노리는 사람들 중에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지아의 눈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그렇다면 정말 그 사람일까요?”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런데 그 사람이면 확실히 안심이 되나 보지? 금세 목소리가 좋아졌는데?”
성철이 반가운 느낌에 바로 반문을 했다.
지아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런 것은 아니예요. 다만 실체가 보인다면 싸울 수 있어요. 저는 이게 카르마(業)가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더랬어요.”

“카르마가 불안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성철은 소파에 앉았다. 마치 머리의 거대한 무게가 그를 내리 누르는 것 같은 모습으로.
“확인을 할 방법이 없을까요?”
지아가 깍지를 끼며 물었다. 희고 작은 손이 보석처럼 빛났다.
“글쎄, 텔레파시에서 나오는 전파를 감지해 내는 장치가 미국에는 있다고 말만 들어 봤지.”

“쓸데없는 소릴랑 하지도 마세요.”
지아가 톡 쏘았다.
“미안. 방법이 없어. 그자에게 누군가를 붙여서 감시를 하기 전에는 말야.”
성철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럼 감시라도 붙여야죠!”

지아의 목소리가 톤을 높였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지아 양도 잘 아는 일이잖아?”
성철이 안타깝다는 투로 말했다.
“이런 일은 수고는 많이 들지만 얻는 것은 별로 없지 입으로는 나물대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말 위험이 있다고 하면 뛰어들 사람은 거의 없어. 그리고 믿을 만한 사람도 별로 없고.”

성철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다 내가 비실세 회장이라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기도 하지. 아직도 이쪽에 붙을까, 저쪽에 붙을까 하고 머리를 쥐어 짜는 사람들이 많거든. 하지만 나한테 붙을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지.”
지아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회장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저도 힘을 낼 테니까요.”
“그래요. 지아 양, 힘을 내요. 그리고 위험한 느낌이 오면 내게 메시지를 보내요. 나도 이제부터 내 감각의 문을 백 퍼센트 열어 놓을 테니깐.”
성철은 지아의 손을 쥐고 토닥거렸다.

지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성철이나 지아나 다른 도리가 있을 수 없었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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