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박 성 철
한국초능력자연구회 회장 박성철은 아침에 눈을 뜨며 오늘 반가운 손님이 찾아올 것이라는 영감을 얻었다. 그 손님이 누구인지 알고자 한다면 모를 것도 없는 일이긴 했으나 만남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해서 그는 그런 행동을 취하는 것을 자제했다.

성철의 느낌은 사무실이 있는 필동으로 가까이 갈수록 더욱 강해졌다. 손님은 이미 사무실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남잘까? 여잘까?’
만남의 즐거음을 얻자는 생각도 결국 호기심을 누르지는 못했다. 성철은 택시 안에서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여자. 성철은 이제 그 사람이 누군지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사람마다 독특한 체취가 있고 정신의 사이클에도 지문과 같은 고유함이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고, 최소한 그의 경험상에서는 들어맞고 있었다.
성철은 새삼스레 백미러를 통해 옷매무새를 살피게 되었다.
멋대가리 없이 너무나 큰 머리통 때문에 목 아래는 보이지도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뒷자리의 손님이 몸을 좌우로 흔드는 것이 이상해 보였는지 택시기사가 물었다.
“아니,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철은 멋쩍게 웃었다. 택시기사는 자신을 택시강도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이른 아침부터 강도짓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성철이 기사의 불안을 덜어준답시고 질러 말을 했다.
“예?”

택시기사의 반문은 비명에 가까웠다. 기사는 자신의 짐작이 맞는 경우는 그것이 사실일 때라는 경험칙에 충실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초능력을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기사의 눈이 더욱 동그랗게 떠졌다.

“지금 기사 아저씨는 제가 택시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죠?”
“햐, 족집게네요. 아예 자리를 펴고 나서지요.”
“점장이가 아니고 초능력 연구가입니다.”
성철은 다시 강조해서 말했다.
“초능력이라고요? 눈에서 광선이 번쩍번쩍 나가는 그런 것 말인가요?”
“하하, 그건 만화에서나 있는 일입니다.”

성철은 가볍게 웃고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직 한창 젊어 보이는 사람이 맛이 갔구먼 하는 눈치로 택시기사가 자신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이래야 10평 남짓한 초라한 곳일 뿐이었다. 정식으로 학술단체 취급도 아직 해주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성철을 비롯한 사람들에게는 선각자로서의 자부심이 있었다. 이미 오래 전 유리겔라라는 초능력자가 방한하였을 때,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가 '한국초능력자연구회' 였다

이들은 유리겔라의 말대로 고장난 시계를 움직이는 데 성공 하거나 숟가락을 휘게 만들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초능력을 개발하고 키워나가는 것이 어쩐지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부여받은 사명인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

비록 생활이라는 무거움 짐이 그들의 어깨를 누르고 있었지만 그들은 초능력만이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다고 믿었고 사이킥 파워(Pdykich Power)가 머지 않아 가공할 무기로 등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에 대비하지 않으면 한민족은 정신의 식민지가 되고 만다는 데 그들의 의견이 일치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교회에 십일조 헌금을 바치듯이 연구회에 돈을 바쳤고 길을 다니면서도 한 어린이라도 무심히 지나치지 않았다. 어린시절부터 초능력을 개발하여야 우수한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돈이 벌리는 일이 아니었고 어떤 수익성 있는 일을 하기에는 능력들이 너무 모자라 상임위원은 회장인 박성철밖에 없었다. 성철 역시 받는 돈이 넉넉해서가 아니고 다른 일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상임위원이 된 것이었다.
집에서의 반대는 당연히 대단하였다. 서른을 훨씬 넘기고도 장가갈 생각도 안 하는 주제에 이제는 직장마저 때려치웠으니 앞날이 훤하다고 집안 어른들은 혀를 찼다. 그 중 아버니의 분노는 대단한 것이어서 아예 집에서 내쫓기기까지 했다. 성철도 큰 미련없이 담요 두 장만 말아서는 집을 나와 버렸다.

전생의 인연이 거기까지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보다 높은 영적인 단계에 그분들이 도착하면 자신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부끄러워할 것이 틀림 없다고도 생각했다. 
사무실에서 숙식한 지 보름 만에 어머니가 나타나 협박 반, 사정 반으로 그를 다시 집으로 끌고 갔다. 성철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며 이제는 카르마(業)에 의한 관계가 아니가 자신이 깨우침을 나눠줘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마음을 굳게 다졌다.

초능력이란 단순히 기술적인 능력이 남보다 앞서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면 손으로 꺾으면 1초도 안걸릴 숟가락을 3분, 5분씩 걸리며 노려볼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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