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1층 마루 한가운데 걸린 중악당 (中嶽堂) 이라는 현판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마루에 어울리지 않게 큰 현판이었다. 집 안에 들어서면 현관에서 바로 보이게 되어 있어서 그 현판 밑의 방이 집주인의 방이 아닐까 착각을 하게도 만들었지만 사실 그 방은 아란의 방이었다.

중악당, 그 현판에서도 요기가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집 안에 살기(殺氣)가 끼어 있어, 지아는 그렇게 단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비록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어느 누군가가 그 일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지아는 불행히도 그것이 외부에서 오는 것인지,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내일은 박 회장님이라도 만나야지.”
그녀는 자신에게 다짐을 하는 뜻에서 큰 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뱉어내었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어, 최 선생님.”
지아가 약간은 놀란 어조로 말했다.

현덕은 그 시간이라면 보통 자신의 방에서 그날 있을 공연에 대한 준비를 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꼬박 지켜지는 것으로, 가령 스승인 난승도사가 찾지만  않는다면 꼭 지켜지는 일이다. 이미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내려오면서 본 일이었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지아가 대뜸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도 무슨 뜻인지 서로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아니, 아니.”

현덕은 눈에 띄게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아무 일도 아니야. 그저 물을 마시러 나왔을 뿐이야.”
지아는 곧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그가 더욱 수상했지만 그에게서만은 아무런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순간적으로 가끔 느껴지는 느낌도 그에게는 없었다. 마치 교활한 늑대 로보를 잡기 위해 덫을 설치하며 모든  냄새를 지우는 사냥꾼처럼.
“한데 왜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놀라고 그래요?”
지아는 톡 쏘며 다시 싱긋 웃었다.
“나도 놀랐잖아요.”
현덕은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여전히 멍청한 표정으로 히죽 웃었다. 농담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런데 박 회장님이 누구야?”

둘은 서서히 자리를 옮기며 등나무로 짜여져 있는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돈 많고 명 짧은 남자라도 하나 꼬셨나 보지?”
“그런 사람 없어요.”
지아는 피식 웃었다.
“그보다 오늘 공연은 대수롭지 않은 모양이지요? 별 준비도 안 하네.”
“만날 그 타령인데 준비는 무슨 준비?”
이번에는 현덕이 피식 웃었다.

”그럼 그 속에서 뭐해요? 숨겨 놓은 애인이라도 있어요?”
“그렇게 물으니까 대답할 말이 없는데......”
현덕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왜요?”

“왜요는 일본 이불이 왜요지.”
“예?”
지아는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농담을 깨닫고 까르르 웃었다.
“마술사가 숨겨 놓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바로바로 대답을 하면 재미없잖아?”
현덕은 여전히 빙그레 웃음을 띄운 채 말했다.

지아는 기를 끌어올리려 노력을 했다. 지난 주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난 토요일에도 공연이 있었다. 그러나 단전에 힘이 모여지지를 않았다. 오늘 그녀는 과도하게 힘을 썼던 것이다.
이제 자연히 느껴지는 것들이 없다면 그녀로서는 더 손 쓸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나 자신의 능력은 전혀 늘지 않았어.”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난승도사의 제자가 된 지 이미 3년이 지났다. 그녀의 본래 목적은 벌써 달성되었지만 그녀는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그녀 자신을 돌볼 시간은 전혀 없었다.
온갖 일들이 그녀의 시간을 쪼개고 있었다. 박 회장님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였다.
“어이구, 그림 좋습니다.”
너스레를 떨며 들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또 다른 조수 김희수였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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