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미스디렉션의 세계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은 희수도 느끼고 있는 일이었다. '팀' 안에 흐르는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냉소적인 것이었다.
희수가 보기에 그 근본적인 원인은 난승도사와 현덕간의 불화에 있는 듯 하였다.
둘 사이에 언제부터 금이 갔는지 희수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아가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문제의 요점이 초능력이라는 것에 있다는 것도 분명한 것 같았다.
희수는 초능력이란 말을 되뇌며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초능력으로 물건을 공중으로 휙휙 날려 보낼 수 있으면 정말 근사한 일일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마술의 본령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희수의 꿈은 마술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영화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그만큼 자신의 얼굴에 자신이 있었다.

희수는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자신을 던졌다.
“이 자식아! 울긴 왜 울어!”
훌쩍대던 희수가 어머니의 모진 매에 퍼렇게 질려서 울음을 억지로 삼켰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그것이 모두일 만큼 맞고
또 맞은 것뿐이었다.

어머니는 술집 작부였다. 그러나 너무나 예뻤고 그 때문에 그는 맞으면서도 어머니의 고운 태를 바라보기를 즐겼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어머니한테는 한번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희수는 자기 기억이 4살 때부터 시작된다고 알고 있다. 그 첫 기억이 모진 매였다. 그 다음에는 낮에는 자고 저녁이면 집에서 없어지는 엄마에 대한 기억. 그러나 그것마저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10살이 되었을 때 엄마 역시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서야 그는 아버지가 어떤사람이었는지 어머니와 같은 술집 동료였던 아주머니들한테서 들을 수가 있었다.

아버지는 영화배우였다고 했다. 유명한 영화배우가 아닌 삼류 영화배우. 그러니까 늘 짐이나 나르던 엑스트라역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어느 날 위험한 촬영이 있었는데 대역 맡은 아버지는 그날 사고로 돌아가셨고 결국 사체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 그네들이 아는 모든 사실이었다.

10살 때 희수는 세상에 복수할 것을 다짐했다. 자기를 고아로 만드는 데 일조를 기한 모든이들을 다 죽일 거라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다. 그러나 그 결심은 열다섯이 되면서 허물어졌다. 엄마가 부잣집의 세컨드로 호위호식하면서 자신을 내팽개쳐 두었다는 것을 알았던 때였고, 영화배우인 아버지가 사고로 죽지 않았더라도 엄마와 결혼했을 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던 때였다.

덕분에 희수의 최종 학력은 중학교 중퇴였다. 그때부터 그는 동네 불량배가 되었다.
그가 자란 동네는 서울 외곽도시이었고 적당한 암흑 조직이 어수선하게 운영을 하고 있던 참이었기에 그는 타고난 독기와 매력으로 나름대로 작은 자기구역을 금방 꾸려나갈 수 있었다.

별명이 독불장군이었으니. 마술과의 인연은 그 당시에 마술처럼 일어났다.
그가 22세 되던 겨울이었다. 시민회관에서 마술 공연이 있었다. 시민회관 건립과 더불어 개발이 일어나 번화가로 변모하기 시작하자 기존의 파벌들이 손을 뻗쳐 오기 시작했다.

희수는 반발하고 싸움도 몇 차례 걸어 보았지만, 혈혈단신인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물러설 줄 모르는 것이 그의 장점이었다.
그는 여전히 그 구역을 자신의 영역으로 여기고 있었고 마음 내킬 때마다 발을 들여 놓았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마술 공연이라, 저런 사기극을 보러 다니는 게 난 이해가 되지 않는단 말야?”
희수는 그날의 파트너였던 오효미라는 여자에게 광고를 보며 말을 걸었다.
“왜요? 재미있잖아요?”

여자는 마술 공연에 흥미가 있는 듯했다.
“사기극이 재미는?”
희수가 심드렁하게 받았다.
“희수 씨는 마술에 나오는 트릭을 모두 알고 있어요?”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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