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썩! 철썩!”
신장을 삼십여 대나 맞았으나 그들은 비명만 지를 뿐 실토를 하지 않았다. 두 죄인의 엉덩판은 터져서 피범벅이 되었다. 피범벅 된 자리를 다시 치자 피가 사방으로 튀어 집장 사령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 정도였다.
“안 되겠다. 매질을 거두어라.”

위관 이직이 소리쳤다. 두 사령의 매질이 멈추어졌다.
“지독한 놈들. 신장으로는 안 되겠으니 주뢰를 틀어라.”
주뢰란 주리라고도 하는데 전도주뢰(剪刀周牢)의 약칭이다. 고신 중에는 무거운 형벌에 속하며 자칫하면 병신이 되기 쉬운 고문형이다.

이번에는 두 죄인을 형틀에서 풀어놓은 뒤, 순군부 사령 두 명이 주장(朱杖)을 들고 나왔다. 그들은 죄인들의 두 다리를 모아 결박하여 앉힌 뒤 가랑이 사이에 주장을 가위 모양으로 집어넣었다.
“이놈들, 이래도 실토를 않을 것이냐? 이제 주리를 틀게 되면 온전히 걸어다닐 수는 없게 될 것이다.”
위관이 마지막 경고를 했다.

“나으리, 제발 살려 주십시오. 쇤네는 절대로 궁녀를 죽인 일이 없습니다. 나으리!”
중근이 다시 사색이 되었다.
“그러면 겁간한 것은 자복한다는 말이냐?”
“나으리,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쇤네가 어디라고 감히…….”
“저놈들, 주리를 더 틀어라!”

위관 이직 대사헌이 다시 왼손으로 자신의 턱수염을 쥐어뜯었다.
순군부 사령들이 가랑이에 꽂은 주장을 다시 벌려서 힘을 주어 뒤틀었다.
“으아아악!”
두 죄인이 숨넘어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져 처참한 모습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모습이 있다면 주리당하는 일일 것이다.
김용세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졌다.

얼마 가지 않아 이수돌이 혼절하여 고개가 축 늘어졌다. 그 뒤에도 한참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던 중근도 정신을 놓고 말았다. 주리는 멈추고 바가지를 든 사령이 나와 두 죄인의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살려주시오!”
정신이 돌아온 그들은 아직도 자복을 하지 않았다.

“지독한 놈들이다.”
대사헌 이직이 혀를 차고 있을 때 승전색(承傳色) 한 사람이 뛰어와 밀봉된 봉투를 하나 대사헌에게 전해주고 갔다. 승전색은 주로 왕명을 전하는 일을 하는 승정원 내시이나 때로는 왕비나 대군들의 심부름도 했다.
이직이 봉투를 뜯고 서찰을 읽어 보았다.
그것은 회안군 방간이 보낸 서찰이었다. 이수돌은 기왕 죽을 놈이니까 너무 추달하여 엉뚱한 자복을 시킬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는 내용이었다.

서찰을 읽어 본 이직은 대단히 불쾌한 표정이었다. 무슨 뜻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으나, 아무리 대군일지라도 이런 무례한 짓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수돌이 회안군 방간의 심복이었기 때문에 그들만이 아는 비밀을 이놈이 엉뚱하게 터뜨릴까 봐 하는 수작 같았다. 그렇다면 더더군다나 추국을 심히 할 필요가 있었다. 이직은 본래 정도전과 가까운 사이인지라 대군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기미가 있었다.

“저놈들, 다시 주뢰를 틀어라! 정강이가 부서져 목숨이 끊어져도 괜찮으니 매우 틀어라!”

방간의 서찰 덕분에 이직 위관은 더욱 화가 치민 것 같았다. 왼손으로 수염을 뽑을 듯이 다시 쥐어뜯었다.
사령들이 덤벼들어 주장을 뒤틀기 시작했다. 두 죄인의 정강이에서는 선지피가 뿜어져 나왔다. 엉덩이와 무릎이 찢어진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졌다.
허연 살이 튈 적마다 지옥에서 들리는 듯한 비명이 추국청을 울렸다.

“나으리, 나으리! 사실대로 이실직고하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드디어 이수돌이 항복을 했다. 곧 주뢰 트는 일이 멈추어졌다.
반 실성한 듯이 보이는 이수돌이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추스려 땅바닥에 엎드렸다.
“쇤네가 나인을 겁탈하고 목졸라 죽였습니다. 죽여 주십시오.”
“자세히 그 경위를 일러라!”
이직은 아직도 화가 풀린 것 같지 않았다.

“쇤네가 중근을 데리고 태평방 신 상궁 마마님 댁에 들어갔을 때 궁복을 입은 여인이 나왔습니다. 쇤네들은 그 여인이 신 상궁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 다짜고짜 붙들어 마침 뒷마당에 있는 평상으로 끌고 가 눕혔습니다.”
“그때 여인이 반항하지 않던가?”
“고함을 지르며 반항을 했습니다만 주먹으로 쳐 혼절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옷을 벗기고…….”

“그리고?”
“그리고 쇤네가 먼저 짐승 같은 짓을 했습니다. 일이 끝나자 여인이 정신을 차려 다시 반항하는 지라 쇤네가 붙들고 있고 중근이가…….”
“천하에 무도한 놈!”
위관이 부르르 몸을 떨면서 소리쳤다.

“수심(獸心)을 채웠으면 그만이지 왜 무고한 목숨까지 빼앗았느냐?”
“예,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그 여인이 외람되게도 신 상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상궁 마마님, 상궁 마마님’ 하고 소리를 지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쇤네는 일이 실패한 것으로 알고 후환이 두려워 나인의 목을…….”
“가만 있자, 일이 실패한 것을 알고? 그러면 네 놈들이 처음부터 신홍아 상궁을 욕보일 획책을 가지고 그곳으로 갔단 말이냐?”
“그러하옵니다.”

“호오, 그건 무슨 연유에서인가? 바른 대로 불지 않으면…….”
“아이구, 나으리 바른 대로 여쭙겠습니다요. 신 상궁 마마님으로 말씀드리면 승하하신 신덕 황후 마마께서 가장 총애하던 상궁이 아닙니까. 그래서 신 상궁을 욕보여 신덕왕후 마마의…….”

“저런 발칙한 놈들. 감히 왕후 마마의…… 고얀 놈들!”
이직은 방간의 편지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필경, 네 놈들 생각은 아닐 것이고 신덕왕후 마마에게 감히 함원 품은 자들의 짓일 텐데 그 일을 시킨 놈이 누구냐? 다시 전도주뢰 맛을 보기 전에……”
주뢰란 말이 나오자 죄인들은 사지를 떨었다.

“아이구, 나으리, 사실대로 여쭙겠습니다. 쇤네를 꼬득인 것은 종 소근이옵니다.”
중근이가 대답했다.
“소근이? 소근이가 누구냐?”
“정안 대군 나으리의…….”
소근은 정안 대군 방원의 근수 노비로, 신분은 비록 종이나 그 권세가 대단한 자였다.
“어김없으렸다.”

이직 대사헌을 비롯한 추국청 참관원들이 모두 놀랐다. 뒤에 이 일은 정도전 일파의 정쟁거리가 되었으나 진실 여부는 밝히지 못했다. 정안군과 현비의 관계를 잘 아는 자들의 농단일 수도 있었다.
“오늘은 이만하고 며칠 뒤 추국을 계속할 것이다.”

이직 위관이 이렇게 말하고는 벌떡 일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 버렸다.
형조 관원들과 사헌부, 순군부 관원들까지 남아서 추안을 정리하기 바빴다. 추안이 끝난 문건은 추안궤에 담겨져 관인으로 봉인된 후 형조 승지를 거쳐 왕에게 직접 상주된다.
김용세는 쓴 입맛을 다시며 궁으로 돌아갔다. 암청색 당저고리를 입고 있던 유연분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무수리 겁간 살해 사건은 엉뚱한 곳으로 계속 번져갔다. 특히 정도전의 측근인 내시 김사행은 틈만 나면 이 일을 왕 앞에 들고 나와 왕의 진노를 사는 일이 많았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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