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수생파는 시신의 한삼을 벗겼다. 저고리 밑에는 치마 쪽과 달리 중의를 입지 않고 바로 살에 닿는 한삼만 입고 있었다. 흰 한삼을 벗기자 유백색의 상체가 드러났다. 시신이긴 하나 피부가 탄탄하고 부드럽게 보였다. 봉긋한 두 개의 유방에는 연자색의 유두가 작은 꽃망울처럼 달려 있었다.

수생파는 이어 중의 치마를 벗겼다. 단속곳이 나왔다. 흰 단속곳도 찢겨 가랑이가 너덜너덜하고 배설물이 묻어 있었다. 수생파가 여종의 도움을 받아 그것을 벗겼다. 이제 샅을 가린 속속곳만 남아 있었다.
“어험!”

김명률이 헛기침을 했다. 부녀자만 둘러서 있는 가운데 붓을 들고 서 있는 그는 비록 엄중한 공무이기는 하나 겸연쩍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생파는 천천히 시신의 속속곳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3. 피를 찾아서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니 권한을 남용하고 음행을 자행하는 일이 도처에서 일어나 인심은 흉흉해지고 살인과 겁간마저 여반장으로 일어나 늙은이들은 일찍 죽지 않았음을 한탄하였도다. - <무인록>

수생파가 속속곳을 벗겨내자 거뭇한 거웃과 함께 여자의 은밀한 곳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흠, 어흠.”
검험관은 뒤로 돌아서서 헛기침만 했다. 완전히 나신이 드러나자 수생파는 시체를 뒤척여 반듯이 눕혔다. 이미 사후 경직이 시작되어 사지가 산 사람처럼 움직이지는 않았다.
김주선 명률이 반듯이 누운 유연분의 시신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신 상궁은 민망하고 눈물이 나 줄곧 소매로 얼굴을 닦아냈다. 허드렛일 하는 여종이 먹을 계속 갈아댔다.

김명률은 다시 한 번 시체의 사지를 자세히 기록했다. 얼굴 몇 군데에 보이는 푸릇한 멍울을 수생파가 만져 보았다. 목은 졸린 흔적이 역력했다. 푸른 멍울과 짙은 자줏빛 흔적이 목 앞과 양 옆에 선명히 나 있었다. 입을 벌리고 있었으나 눈은 감겨 있었다.
“누가 이 시신의 눈을 감겨주었습니까? 아니면 처음부터 이렇게 있었나요?”
김주선 명률이 증험하기 위해 입조한 여자들을 보고 확인하듯 물었다.
“내가 감겼소. 원한이나 덜 품고 가라고…… 아이고 불쌍한…….”
신 상궁이 대답했다.

“살인이 일어난 뒤의 시신은 만지면 안 되는 법이오만…….”
그는 더는 시비를 걸지 않았다. 아무리 시체라고는 하나 처녀를 벌거벗겨 뭇사람 앞에 내놓고 여러 말을 한다는 것이 좀 뭣하다고 그도 생각한 모양이다.

수생파가 다시 시신의 양팔을 들어 보였다. 왼쪽 손등에 약간의 혈흔이 묻은 것 외에는 이렇다할 상흔은 없었다. 김명률은 다시 시신의 가슴을 살폈다.
희고 도톰한 유방 한 가운데 옅은 자두 빛 유두가 애처롭게 보였다. 유방의 아래위에도 짓눌린 것 같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반항하면서 생긴 멍울 같았다. 배와 등에는 이렇다 할 상처가 없었다.

두 다리와 둔부, 그리고 발에서도 특기할 만한 흔적은 없었다. 시체를 그대로 두고 하는 검험이 끝나자 이번에는 본격적인 험증 검험이 시작되었다.
“조협早莢 끓인 물 가져오너라.”
조협이란 쥐엄나무 열매 껍질을 말하는데 주로 약재로 쓰인다. 때로는 살충제로도 쓰이며 소독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비자가 미지근하게 데운 조협수를 가지고 왔다. 수생파가 그 물로 시체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 물로 닦자 신기하게도 피부가 맑아지고 상처부위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닦아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앞마당의 차일에 있는 대사헌으로부터는 몇 번이나 진행 상황을 묻는 전갈이 왔었다.

시신을 다 닦아낸 뒤 김주선 명률은 다시 한번 기록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김명률은 수생파를 시켜 푸르게 멍든 유방 세 군데에 물방울을 떨어뜨려 보도록 했다. 이상하게도 물방울이 잘 흘러가지 않았다.
“음, 이것은 분명히 가해당한 상흔이야.”

김명률이 혼자 중얼거렸다. <백헌총요>의 검험법에 의하면 상흔일 경우 물방울이 흐르지 않으며, 상흔이 아닐 경우는 물방울이 잘 흐른다고 기술되어 있었다.
다음에는 수생파가 미리 준비해 온 은비녀를 끄집어냈다. 그녀는 은비녀를 벌어져 있는 시신의 입에 꽂아 넣었다. 음독한 흔적이 있는가를 검험하는 일이었다.
힘센 두 남자에게 겁간당하고 죽은 것으로 추측되는 시신에 음독 여부를 검험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엄격한 절차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었다.
“시신이 굳어서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수생파가 은비녀를 시신의 목구멍 깊숙이 넣으려고 애를 쓰다가 멈추었다.
“딴 곳은 어떠냐?”
김명률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물었다. 그가 딴 곳이라고 한 것은 시신의 하체를 말함이다.
“딴 곳도 시신이 굳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찜질을 하는 수밖에…….”

수생파가 준비해온 초 찌꺼기를 시신의 온몸에 고루 발랐다. 찌꺼기이긴 하지만 입회한 사람들의 코를 자극하는 데는 충분했다. 여기저기서 재채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초 찌꺼기를 바른 후 짚자리로 시체를 덮었다. 그 위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거적을 얹었다. 거적이 식을 만하면 다시 뜨거운 거적을 덮었다.
이렇게 하기를 수삼 차례 하고 나서야 거적과 짚자리를 걷어냈다. 알몸의 시신은 살아 있는 살결처럼 부드럽게 보였다.

수생파는 다시 깨끗한 포로 시신을 말끔히 닦아냈다. 시신의 사지를 움직여 보았다.  아주 유연하게 움직였다. 살아 있는 듯 아름다운 여체였다.
수생파는 다시 시신의 목구멍에 은비녀를 넣었다가 빼서는 그 색깔을 살폈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았다.

수생파는 이번에는 허리를 굽혀 시신의 허리를 살폈다. 그리고는 시신의 두 다리를 양쪽으로 한껏 벌렸다. 그녀는 오른손을 펴들고 잠시 내려보다가 장지 손가락만 펴고 나머지 손가락들을 굽혔다.
그녀는 펴든 장지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시신의 산문(産門)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손가락을 꺼내 들고 묻어 나온 것을 유심히 살폈다.

이 검험법은 시신이 처녀냐 부인이냐 하는 것을 분별하기 위해 주로 쓰는 방법이었다. 시신이 처녀면 손가락에 흑갈색 혈이 묻어 나오고, 부인이면 그렇지 않다고 <백헌총요>에 적혀 있다. 그러나 이번 중지 검험은 산문에서 남자의 정수(精水)가 묻어 나오느냐 아니냐를 알기 위한 것이었다.
“어떠냐?”

김명률이 물었다. 수생파의 손가락이 거무죽죽한 색깔로 변해 있었다.
“이 시신은 본디 처녀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겁간을 당한 것이 분명합니다. 이 시신은 파과(破瓜)를 지나 성년이 된 지는 오래이나 남정과 교접한 사실이 처음인 것도 분명합니다.
수생파가 명률에게 보고했다. 명률은 부지런히 붓놀림을 하면서도 다져 물을 것은 묻는다.

“무엇으로 그렇게 단정하느냐?”
“장지에 묻어 나온 흑갈색의 혈은 이 시신이 파과를 지난 처녀임을 말합니다. 남정과 방사 경험이 있는 부인은 혈이 묻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혈에 섞여 정수가 엉겨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중요한 증거물이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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