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률은 붓을 놓고 잠시 임검장을 떠났다. 신홍아는 흰 저포를 가지고 나와 시신을 덮었다. 잠시나마 하늘 아래 알몸을 두기가 민망했기 때문이다.
앞마당 차일에 보고 겸 하명을 들으러 갔던 김명률이 임검하는 뒷마당으로 다시 돌아왔다.

“수고했소. 개복 검험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군. 목을 졸려 질식 절명한 증험이 분명하고 겁간당한 흔적도 분명하니 초검(初檢)으로 끝내도록 하라는 대사헌 나으리의 분부가 계셨소.”
김명률은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일이 잘못되면 시신을 개복해서 오장 육부를 다 검험하는 고역을 치러야 하고 그것으로 부족하면 2검, 3검, 심지어 5검까지 해야 하는데 일이 잘된 것 같소. 시신은 추국청의 하명이 있을 때까지 잘 보관될 것이오. 얘들아, 증험하신 부인들께도 수고하셨다고 말씀 여쭈어라.”

김주선 명률이 허리 굽혀 인사하는 시늉으로 예를 갖추고는 나갔다.
이렇게 해서 검험은 끝나고 시신은 언제라도 다시 검험할 수 있도록 가매장된다. 명률은 검험 결과를 상세히 적어 관계된 의생, 율생 등과 논의한 뒤 마지막 결론을 위관에게 제출한다.

이러한 절차가 끝난 뒤 범인 종 중근과 이수돌에 대한 논죄를 할 추국(推鞠)이 시작되었다.
그 동안에 의성군 남은을 비롯한 변중량, 심효생 등은 내시 김사행을 시켜 계속 두 대군의 사병 해산 불응을 규탄했다. 노비 중근이 회안군 방간의 수하였고, 이수돌이 정안군의 심복인 박포의 수하였다는 것은 좋은 구실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왕이 이 겁간 살인 사건에 대해 대단히 진노하고 있고, 그 유례가 없는 대사헌 위간이라는 파격적인 추달을 엄명한 사건이기 때문에 명분이 아주 그럴듯했다.
중대 국사범이나 강상 사건에나 해당되는 추국을 열도록 명한 것은 왕의 심기를 잘 반영하는 것이었다.

추국청은 건춘문 앞에 있는 순군부 마당에 설치되었다. 순군부 나장과 궁중 갑사들에 의해 엄중한 경계가 실시된 후에 추국 위관자리에 대사헌이 형조 당상관들을 거느리고 나왔다.
추국 현장에는 위관이 앉을 자리에 차일이 높직하게 쳐졌다. 단 좌우와 아래에는 여덟 명의 응참관원의 자리가 만들어지고 거기에는 형조 참찬을 비롯한 당상관들이 위엄 있게 앉았다.

앞에는 죄인 두 명이 산발한 상태로 양손에 추를 차조 있었다. 중죄인의 목에 씌우는 가伽나, 발을 묶는 철삭은 하지 않았다. 아마 추국 자리라서 특별히 가볍게 한 것 같았다.
원래 중죄인일 경우 왕이 직접 논죄를 하고 죄인을 심문하며, 때로는 고신拷訊을 하게 된다. 이것을 친국이라고 하는데 친국은 대개 궁정 뜰에서 행해진다.

중죄인이되 왕이나 세자가 직접 신문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정국(庭鞫)이라는 것을 하는데, 이때에도 고신 장소는 궁정 안의 뜰에 설치되고 왕의 초패를 받은 사헌부나 의금부 등의 판사 이상 당상관이 위관이 되어 신국을 실시한다. 이번에 열리는 추국은 세 번째 규모에 속하는 일이다.

뜰 가운데는 형틀이 설치되고 주변에 사령들이 읍하고 섰다. 그 옆으로는 기록과 집행을 맡을 형방 승지와 주서(注書), 문사랑청 등이 서고 앉고 했다.
그날 일찍 등청한 서운관의 김용세는 추국이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동궁을 돌아 건춘문 밖 추국장으로 구경을 갔다. 구경이라기보다는 신 상궁 집안의 일이라 궁금했던 때문이다. 거기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추국 마당을 삥 둘러서 있었다.

시위선 나장들이 길을 막고 있어서 더 이상 들어갈 수는 없었다. 김용세는 멀리서 여러 말직 관원들 사이에 섞여 추국장을 지켜보았다.
“준비가 다 되었느냐?”
형조 참찬이 큰 소리로 물었다.
형조 문사랑청이 죄인의 신원과 죄명을 기록한 문서를 형조 참찬에게 건네고 그가 그것을 대사헌 이직에게 바쳤다. 오늘의 위관인 이직 대사헌은 그것을 천천히 읽어본 뒤 입을 열었다.

“검험 결과와 순군부에서 만든 추안推案은 없느냐?”
추안이란 범죄 경위와 죄인의 신문 내용을 적은 문서를 말함이다.
다시 형조의 문사랑청이 문서를 가져다 놓았다. 그 문서들을 한참 훑어본 뒤 이직 위관이 입을 열었다.

“죄인 이수돌과 종 중근은 듣거라. 너희들은 아무리 못배운 종놈에다 천민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렇게 무도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한때는 왕실 어른의 거둠을 받아 그 그늘에서 숨을 쉬던 놈들이 감히 상감마마를 뫼시던 수사리(水賜里)를 탐하여 도척보다 못한 짓을 했도다. 그리고도 한 치의 뉘우침도 없이 죄를 숨기고 추단관들을 괴롭히고 있으니 더 물을 것도 없이 주상께 천벌을 상계함이 마땅하나, 내 다시 한번 묻겠으니 바른 대로 이르렸다.”

그가 수사리라고 한 것은 무수리 유연분을 말함이다. 두 죄인은 고개만 조아리고 있었다.
“죄인 이수돌! 죄인은 상궁 신홍아의 집에 대낮에 침범하여 종놈 중근과 함께 수사리 유연분을 강제로 겁간하고 목졸라 살해한 죄를 인정하느냐?”
“나리, 쇤네는 억울합니다요.”

산발한 머리 밑으로 푸릇푸릇하게 멍이 든 얼굴에 입술은 타서 새까맣게 된 이수돌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억울합니다요.”
중근도 바싹 탄 입술에 혀를 내밀어 침을 묻혔다.
“저놈들이 정신을 못 차렸군. 네 놈들이 그 집에 들어가 횡포를 부린 것을 목격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거짓말을 하는고…….”

“나으리, 쇤네가 신 상궁 마마님 집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고 유 궁인을 만나 실없는 장난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겁간을 했다든지 목숨을 빼앗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제발 이 누명을 좀 벗겨 주십시오.”
“쇤네도 그러하옵니다.”
“으음, 고얀지고.”

위관 이직이 왼손으로 자기 수염을 뽑을 듯이 움켜쥐었다. 그가 화가 났을 때 하는 버릇이다.
“여봐라, 저자들은 사람이 아니니라. 저 짐승들이 바로 짖도록 하여라.”
위관의 말을 받아 형조 참찬이 명을 내렸다.
“죄인을 형틀에 묶고 신장으로 다스려라.”

곧 신장고신(訊杖拷訊)이 시작되었다. 시령들이 길이 석자반, 굵기 4푼 정도의 가시나무 몽둥이를 들고 나왔다. 죄인들을 형틀에 엎드리게 했다.
“아이구, 나으리, 살려주십시오. 억울합니다.”
이수돌이 형틀에 묶이면서 발악을 했다. 사령들은 그들을 엎어놓고 두 팔을 벌리게 하고 그 팔을 오랏줄로 형틀에 매었다. 바지를 까서 허연 엉덩판이 다 드러나게 한 뒤 발목도 형틀에 단단히 묶었다.

집장 사령 두 사람이 가시나무 몽둥이로 죄인의 엉덩이를 슬슬 문질렀다. 신장의 촉감을 느낀 죄인들은 맞기도 전에 사색이 되었다. 그래도 덩치가 크고 얼굴이 두터운 중근은 덜했으나 몸이 가늘고 하관이 쭉 빠진 이수돌은 벌써 지옥에 간 형색이다.
“그놈들이 바른 말을 할 때까지 그치지 말고 매우 치랍신다. 죽어도 상관 없으니 사정을 보지 말아라.”

참찬의 명이 떨어지자 사령들이 사정없이 죄인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아이구, 종놈 죽는다!”
종근이 고함을 질렀다. 엄살이 반이다.
“철썩! 철썩!”
신장을 치는 소리가 따갑게 들렸다. 십여 대나 족히 맞았을 때 비명이 더 크게 들렸다.
“나으리, 정말 억울합니다. 나으리 나으리…….”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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