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준비 끝난 문래동 부지… 하루아침에 여의도?
영등포구청 공사현장 기습 철거 실패… 구청장, “묵묵무답”

철거될 뻔한 문래동 제2세종문화회관 예정지. [박정우 기자]
철거될 뻔한 문래동 제2세종문화회관 예정지. [박정우 기자]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지난 2019년 문래동 유치가 확정된 제2세종문화회관. 올해 3월 갑작스레 여의도로 예정지 변경이 발표되면서 주민 반발이 심한 가운데, 아무런 협의도 없이 지난 10일 새벽, 기습 철거 시도가 이뤄졌다. 이에 영등포구 구의원들이 저지에 나섰다. 10년 넘게 준비과정을 거친 문래동 예정지가 하루아침에 철거 위협에 놓였다. 일각에서는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그레이트 한강’ 사업에 편승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문래동 제2세종문화회관은 2012년부터 민·관 논의를 거쳐 체계적인 절차를 통해 추진돼왔다. 김영주 국회의원(영등포구 갑, 국회 부의장)과 영등포구의회의 구유지 무상사용 허가, 사업지원과 같은 노력으로, 서울시는 문래동 건립계획을 2019년 공식 발표했다.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를 비롯해 시·구의회가 필수 절차를 모두 통과시켜 확정됐으며, 설계비도 마련돼, 마지막 절차인 착공만 남은 상황이었다. 영등포구가 기부채납 부지를 제공하며 협의가 이뤄졌고, 경제적 생산유발·부가가치 효과 4500여억 원, 여기에다 2000여 명의 취업유발 효과까지 발생시키는 대규모 사업으로 높게 평가받았다.

문래동 제2세종문화회관 예정지 설명문. [박정우 기자]
문래동 제2세종문화회관 예정지 설명문. [박정우 기자]

특히 문래동 부지는 규모의 적절성, 위치의 적합성 등을 십수 년간 영등포구와 서울시, 정부 그리고 전문가의 다각적인 검토를 거쳐 검증받았다. 하지만 지난 3월 서울시의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문래동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 계획이 철회됐다.

이와 관련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에 대한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선거 당시 내건 공약을 주민공청회 등 어떤 소통과 협의 없이 파기했다는 것이다. 이에 영등포구 주민들과 구의회는 즉각 반발에 나섰고, ‘제2세종문화회관추진지연에관련된 행정조사특별위원회(특위)’가 구성됐다.

영등포구청장실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는 영등포 구의회 의원들. [영등포구의회]
영등포구청장실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는 영등포 구의회 의원들. [영등포구의회]

실패로 돌아간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의 공사현장 기습 철거

이런 가운데 지난 10일 새벽, 영등포구청이 주민 소통이나 구의회와의 협의 없이 기습적으로 공사현장 철거를 시도했다. 당시 구의원들의 저지로 철거는 이어지지 못했다. 다만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공사현장 철거 계획은 한 구청 직원이 관련 내용으로 대화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전해졌다.

비상회의 중인 영등포구의회 의원들. [박정우 기÷자]
비상회의 중인 영등포구의회 의원들. [박정우 기자]

구의원들은 지난 10일 새벽부터 아침까지 승용차로 현장을 지켰고, 영등포구청은 철거업체를 돌려보냈다. 현장의 구의원들은 “모든 법적·행정적 절차가 마무리됐는데, 발표 하나로 (예정지를)이전을 해버리겠다는 것”이라며 “(여의도 부지는 건립) 가능 여부와 같은 전문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인데, 철거를 시도하는 건 원칙적, 순서적으로 맞지 않는다”라고 입을 모았다.

구의원들은 문제 원인으로 최호권 구청장을 꼽으며, “구청장이 면피를 위해, 서울시의 결정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지만, 서울시 발표 전부터 여의도가 예정지가 될 것이라 얘기하고 다녔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제2세종문화회관 예정지 변경을 지난 11월 영등포구청에서 서울시 측에 먼저 건의한 것이 밝혀졌다”라며 “더욱 심각한 것은 십여 년 넘게 준비한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 승인까지 받은 영등포구 최대 사업에 관한 논의를 구두로 진행한 것”이라 덧붙였다.

이와 관련 구의원들은 “있을 수 없는 독단적인 행정이다. (문래동 제2세종문화회관은) 최호권 구청장이 공약으로 내걸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서전에 조감도까지 넣었다”라고 비판하며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건의해놓고, 서울시 사업이라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태도를 일관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 구의원은 “최호권 구청장에게 문래동 예정지가 구유지인지 시유지인지 몇 가지 질문을 해봤으나, 공약을 내걸 당시에도 자세히 몰랐다”라며 “구의원을 12년 동안 하면서, 이런 황당한 경험은 처음이다. 외부에서는 구의회와 협의해서 ‘(문래동 제2세종문화회관과 관련해) 사업을 잘 마무리하겠다.’라고 말만 하고 실제 협의한 건 하나도 없다”라고 일갈했다.

구의원 무기한 농성에 단식투쟁까지, 첨예한 갈등 예상

구의원들은 기습 철거 시도와 관련해서는 “최호권 구정창에게 왜 협의 없이 새벽에 (철거를) 강행했는가 질문했더니, 그저 웃음으로 무마했다”라며 “현재 서울시도 사태를 전혀 모른다”라고 밝혔다.

이어 구의회 측은 “지난해 12월 오세훈 시장과의 면담에서 기존 계획안의 추진 과정부터 현재까지를 모두 보여줬다. 이에 오세훈 시장이 놀란 반응으로 ‘이미 다 완료된 거네요?’라고 답변했다”라며 “최호권 구청장이 독단적으로 예정지 변경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철거하려 했던 것은 맞지만, 서울시 사업이고 시가 이미 여의도로 예정지를 발표해 확정된 사안이다”라며 “철거 소식을 전달하지 않은 것을 섭섭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행정청과 구의회가 하는 일은 다르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구의원들은 11일 새벽 4시부터 문래동 제2세종문화회관 부지 앞을 지키고, 오전에는 영등포구 구청장실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정선희 구의회 의장은 단식투쟁을 예고했다. 오전 11시경에도 철거업체와 충돌이 이어진 바. 제2세종문화회관 관련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영등포구 주민들은 명확한 소통과 협의, 행정에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철거업체를 막는 영등포구의회 의원들. [영등포구의회]
철거업체를 막는 영등포구의회 의원들. [영등포구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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