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실적용? 군공항 이전 찬‧반 법안 모두에 공동발의자 이름 턱하니

수원군공항 이전 예비 후보지로 화성시 화옹지구가 선정되며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20일 오후 경기 수원 공군 제10전투비행장에서 전투기가 훈련을 마친 뒤 착륙하고 있다. 2017.02.20. [뉴시스]
수원군공항 이전 예비 후보지로 화성시 화옹지구가 선정되며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20일 오후 경기 수원 공군 제10전투비행장에서 전투기가 훈련을 마친 뒤 착륙하고 있다. 2017.02.20.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경기권에서는 최근 수년간 수원 군공항 이전 및 경기남부통합국제공항 건설 이슈가 수원‧화성 지역사회 간 갈등을 부추기는 거대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원‧화성 지역구 의원들과 지역정가는 저마다 군공항 이전 필요성과 반대사유를 피력하며 힘싸움을 이어가고 있고, 지역 시민사회 사이에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군공항 이전과 관련한 중앙정치권의 입법 신경전도 첨예하다.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군공항 이전에 추진 동력을 불어넣는 취지의 특별법(백혜련 의원 대표발의)과 이에 제동을 거는 내용이 골자인 특별법 일부개정안(송옥주 의원 대표발의)이 각각 발의됐다. 이런 가운데, 찬반논리가 첨예한 관련법안에서 부실입법 정황이 포착됐다. 민주당 한민수‧민병덕 의원이 대척점에 서 있는 두 법안에 공동발의자로 떡하니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에 입법 취지나 지역사회 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입법실적을 채우기 위해 공동발의자 서명란에 사인만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국회의 부실입법 논란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입법 내용에 대한 이해나 고찰도 없이 같은 당 의원들이 품앗이 형태로 공동발의자에 이름을 올리며 발의건수를 부풀리거나, 전직 의원의 법안을 그대로 가져와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하는 수준으로 법안을 급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는 국회와 여야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혐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본지가 지난달 1일 보도한 <[단독] “실적 자랑하더니...” 민주당 이병진 의원, 17개 법안 ‘복붙’ 발의> 기사에 따르면 이병진 의원(초선‧경기 평택을)은 22대 국회 입성과 동시에 불과 보름여 만에 무려 17개 법안을 기계로 찍어내듯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본지 취재 결과, 이는 전대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폐기된 법안들을 고스란히 차용한 카피본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돼 충격파를 남겼다.  

지난 21대 국회도 입법이라는 제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본지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21대 국회의 처리의안 현황을 살펴본 결과, 전대 국회에서 처리된 총 2만5858건의 의안(정부안 포함) 중 가결된 것은 2973건(11.5%)에 불과한 반면 기존 법안과 유사한 내용으로 채워져 대안반영폐기 처리된 법안이 5947건(22.9%), 임기만료폐기 및 철회된 법안이 1만6936건(65.5%), 부결된 법안이 2건(0.1%)이었다. 지난 4년 동안 무려 2만5천여건의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10개 중 무려 9개 법안이 폐기 수순을 밟은 셈이다. 

하나의 법안이 국회 본회의 최종 문턱을 넘기까지 입법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지만, 입법 주체인 국회의원들이 과연 민생과 직결되는 입법에 진정성을 갖고 임했는지 의구심이 짙어지는 대목이다.  

입법계 한 관계자는 본지에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법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헌법상 개인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과 보좌진이 법안을 기획함에 있어 실증적 사전조사나 법리연구를 하는지조차 의문”이라며 “한 정당에서 10명 이상이 무더기로 상부상조하는 방식으로 품앗이 공동발의하는 방식을 비롯해 폐기된 안을 다시 들춰내 (입법)실적 부풀리기용으로 법안을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입법부가 직무태만, 직무유기에 준한 입법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민수 민주당 의원 [뉴시스]
한민수 민주당 의원 [뉴시스]

22대 국회 개원 불과 한 달 만에 민주당 부실입법 정황 

22대 국회에서도 부실입법 정황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본지는 최근 백혜련 의원(3선‧경기 수원을) 등 민주당 의원 10명이 지난 6월5일 공동발의한 <수원 군공항 이전 및 경기남부통합국제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과 그로부터 15일 뒤 같은 당 송옥주 의원(3선‧경기 화성갑) 등 10명이 공동발의한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살피던 중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우선 수원 군공항의 화성 이전 등을 추진하는 게 골자인 ‘백혜련표 특별법’에는 김승원(재선‧경기 수원갑)‧김영진(3선‧경기 수원병)‧김준혁(초선‧경기 수원정)‧김한규(재선‧제주시을)‧민병덕(재선‧안양 동안갑)‧박성준(재선‧서울 중성동을)‧염태영(초선‧경기 수원무)‧이재정(3선‧안양 동안을)‧한민수(초선‧서울 강북을) 의원 등 9명이 공동발의자로 동참했다. 

수원 군공항 이전 특별법(백혜련 의원 대표발의, 상단)과 특별법 일부개정안(송옥주 의원 대표발의, 하단)의 공동발의자 명단
수원 군공항 이전 특별법(백혜련 의원 대표발의, 상단)과 특별법 일부개정안(송옥주 의원 대표발의, 하단)의 공동발의자 명단

또 군공항 화성 이전에 극구 반발하고 있는 화성 지자체장의 사전동의 조항 등을 담은 송 의원의 특별법 일부개정안 공동발의자 명단을 살펴보면 박정(3선‧경기 파주을)‧백승아(초선‧비례대표)‧서삼석(3선‧전남 영암군·무안군·신안군)‧이병진(초선‧경기 평택을)‧이수진(재선‧성남 중원구)‧이원택(재선‧전북 군산김제부안군을)‧한정애(4선‧서울 강서병) 의원과 함께 불과 2주 전 백 의원 특별법을 공동발의한 한민수‧민병덕 의원이 재차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송 의원 개정안에 따르면 현행법(특별법 시행령)상 군공항 이전부지 선정위원회에는 예비이전후보지 관할 지자체장을 비롯해 종전부지‧이전주변지 관할 지자체장‧도지사, 기획재정부차관, 국토교통부차관, 국토부 장관 위촉위원 10명 등 다수 인원이 참여하게 된다. 이렇다 보니 정작 제1의 이해당사자인 화성 지자체장의 의견이 묵살될 수 있는 만큼, 군공항 이전 사업 시행에 앞서 예비이전후보지 지자체장의 사전 동의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는 조항을 특별법에 추가한 것이 송옥주표 개정안의 골자다. 경기‧수원 정가와 지자체가 주도하고 있는 군공항 이전에 제동을 거는 취지의 법안인 셈이다.

이렇듯 한민수‧민병덕 의원은 수원 군공항 이전에 대한 논리가 정면 배치되는 두 법안의 공동발의자 명단에 버젓이 이름을 올린 것이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 [뉴시스]
민병덕 민주당 의원 [뉴시스]

이를 두고 민주당 한민수‧민병덕 의원이 법안 내용이나 수원‧화성 지역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당내 친소관계에 입각한 ‘숟가락 얹기식’ 입법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아울러 두 의원이 품앗이성 공동발의에 나선 것이 사실이라면 입법이라는 엄중 사안을 다루는 국회의원이 자기모순에 빠진 의정활동으로 입법자원과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해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다만 한민수 의원실 관계자는 이같은 의혹 제기와 관련해 지난 8일 본지에 “백혜련 의원이 발의한 특별법과 송옥주 의원의 특별법 개정안의 취지는 큰 틀에서 크게 다르지 않고, 두 법안 모두 필요하다고 판단해 공발(공동발의)하게 된 것”이라며 “(수원-화성) 지역갈등과 같은 지엽적 이슈보다 수도권 지역균형발전 차원의 문제로 접근했다고 봐주시면 좋겠다. 두 법안의 충돌지점은 법안 소위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취재진은 이날 민병덕 의원실에도 해당 의혹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으나, 회신을 받지 못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