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가 스펙", 상대적 박탈함 호소…공채시스템 개선 필요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일요서울'은 창간 30주년을 맞아 '관행이 법과 충돌한다면'에 대해 세 편에 걸쳐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그 두 번째로 낙하산 취업 관행과 청년 실업자의 하소연을 들여다본다. 또 이런 채용 비리가 법적으로 어떠한 문제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예정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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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생들이 느끼는 취업 불평등이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3월 국무조정실(실장 방문규)이 발표한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이하 ‘실태조사’)에 따르면 거의 집에만 있는 은둔형 청년의 비율은 2.4%(임신·출산·장애 제외)로 은둔 이유는 취업 어려움 35.0%가 가장 높았다.

이들 중에는 `고위 간부 자제`, `노조 자녀`, '백' 등과 같은 단어들이 위화감으로 다가온다고 말하기도 한다. 채용 당시 자기소개서에 부모님의 재직 사실 등을 기재해 면접관들로부터 특혜를 받은 사례가 공공연히 알려져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는 취준생도 있다.

심지어 입사 이후에도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일부 사회초년생 사이에서는 낙하산으로 입사한 직원이 실제 회사 생활에서도 특혜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승진이나 인사평가, 업무 배치 등에서 유리하다는 것이 직장인들의 생각이다.

- '취업 한파' 속 불공정 채용 횡행

올해도 어김없이 채용 비리가 대거 적발됐다. 지난 5월 8일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유철환) 채용비리통합신고센터가 1400여개 공사·공단 등 전체 공직유관단체의 채용 실태 전수 조사 결과, 공정 채용 위반 사례 총 867건을 적발하고 채용 비리자 68명을 수사 의뢰 및 징계를 요구했다.

또한 불공정 채용 절차 탓에 탈락 처리된 14명의 피해자는 임용 또는 다음 채용 단계에 응시할 수 있도록 구제받도록 했다.

감사원도 최근 선거관리위원회 특혜 채용 비리에 가담한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고 지난 4월 30일 밝혔다. 이번에 검찰 수사에 회부된 27명은 직권남용을 비롯해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증거인멸과 청탁금지법·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해 5월 선관위 내 일부 고위직 자녀에 대한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지자 관련자 조사를 이어왔다.

이날 감사원은 그간 선관위 특혜 채용이 주로 지역 선관위 경력경쟁 채용에서 발생한 정황을 파악하고, 2013년 이후 167회 진행된 경력경쟁 채용 과정을 전수 조사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감사원은 선관위 친인척 채용을 포함해 조직·인사 운영 전반을 점검한 후 해당 사항을 적발했다고 덧붙였다.

적발 당사자 중 일부는 자기소개서에 부모님의 선관위 재직 사실 등을 기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파문을 불러오기도 했다.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인천선관위 간부 자녀 정모 씨는 2011년 10월 인천선관위 경력 채용에 지원하며 자기소개서에 "아버지가 선거 관련 공직에 계셔서 선관위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선거가 국회의원·대통령 선거 말고 다양하게 있다는 것도 알았다"고 적었다. 정 씨는 자기 아버지의 근무지인 인천선관위 경력직으로 채용됐다.

정 씨 외에 자기소개서에 부친이 선관위에 근무한다거나 공직 종사 사실을 기재한 직원이 더 있다. 경남선관위 소속 고위 관계의 딸은 자기소개서에 "공직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준법정신을 배웠다"고 적었다.

정부도 지난해 상반기 100인 이상 사업장 1057곳의 단체협약을 전수조사한 뒤 우선·특별채용 조항이 확인된 60곳(기간 만료·폐업 3곳 제외)에 8월부터 시정 조치에 나섰다. 이후 11월까지 32곳이 자율 개선을 하는 등 성과가 있었지만, 대규모 사업장에서는 시정명령이 지연되며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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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윤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말 화물연대 파업을 기점으로 ‘노동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규모 사업장에도 지방노동위원회의 시정명령 의결이 잇따르면서 고용세습 폐지가 탄력받기 시작했다.

단체협약에 고용세습 등 위법한 우선·특별채용 조항을 둔 60곳 중 57곳(95%)이 해당 조항을 자율로 없애거나 정부·지방자치단체로부터 시정명령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 고용세습 관행 뿌리 뽑겠다는 정부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노사 및 노조(勞勞) 관계의 공정성을 확립하고 근로 현장의 안전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노동 개혁의 출발점은 노사 법치주의"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도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관련 브리핑에서 "고용세습은 현대판 음서제와 다를 바 없다"며 "부모 찬스로부터 소외된 청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최근 KBS 방송에 출연해 "건설 현장에서 채용을 강요한다든가 그다음에 고용을 세습한다든가 뭐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이제 바로 잡았다"고 말했다.
앞서도 정부는 채용 비리 제도개선을 위해 전체 550개 행정기관을 대상으로 행정기관 비공무원에 대한 공정 채용 기준을 마련하도록 권고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공공기관운영법’, ‘지방공기업법’ 등 법률을 적용받지 않는 390개 기타 공직유관단체를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적용할 공정 채용 기준을 마련하고 통합채용을 통한 채용 투명성과 행정비용 절감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제도개선을 준비하고 있다.

정승윤 국민권익위 부패 방지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우리 청년세대가 공공부문에서 사회 첫발을 내디딜 때 공정한 도약의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더욱 촘촘한 관리 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노동계는 정부가 개혁을 명분으로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을 빌미로 노조에 '비리 집단'이라는 낙인을 찍고 있다는 것이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과거 산재 사고를 당한 조합원의 생계 문제를 위해 우대 채용하는 단체협상 조항이 있었지만 실제로 적용 중인 사업장은 거의 없다"며 "정부가 사문화돼 실효성이 없는 조항을 이용해 노조에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가하는 노동조합 전반에 대한 공세에 대해 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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