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엘 법무법인 박지양 변호사]
[로엘 법무법인 박지양 변호사]

2차 피해의 개념은 다소 정립이 안 된 편이다. 여러 주체의 각종의 정의가 있지만, 경찰청의 정의에 따르면 “범죄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파생적,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피해”를 의미한다(피해자 보호 ‧ 지원 매뉴얼 제11면). 본래 성범죄 사건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며, 가정 ‧ 아동 ‧ 학교폭력, 심지어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파생되는 피해까지 통칭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사건에서 널리 쓰이는 개념이기도 하다.

다만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성폭력 범죄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파생적 피해에 국한되는 측면이 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서는 제3조 제3호에서는 2차 피해의 유형도 세분화하고 있다.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2차 가해란 “특정한 피해 사실을 근거로 하여 반복적으로 피해자를 모욕 ‧ 배척 ‧ 소외 ‧ 공격하는 행위”를 총칭한다. 2차 피해와 2차 가해 모두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임이 분명하나, 그 개념과 범위가 다소 모호함은 부정할 수 없다. 시대적 한계라고 본다.

2차 가해로 2차 피해가 발생한 경우, 이를 형사 처벌하는 직접적인 규정은 아직 없다. 그 개념과 범위도 모호한데 처벌 규정 또한 없다 보니, 피고인 변호와 피해자 대리를 모두 수행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2차 피해와 2차 가해를 수시로 직면하곤 한다. 양자 모두 당연히 법률전문가의 조력을 받아야 할 대목이다. 2차 가해가 있을 경우 수사단계에서는 구속의 필요성이 대두되기도 하며, 재판단계에서는 양형에 불리한 조건으로 판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2차 피해를 고소보충사실로서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하고,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2차 가해에 해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필요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아무 민감하고 예민한 사안이며, 전문지식과 데이터 없이 일반 상식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다. 2차 가해를 할 고의가 없었음에도 뜻하지 않게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부지기수다.

특히 ‘합의 시도’를 할 때 2차 가해의 위험이 많이 발생하곤 한다. 범죄를 인정하는 피고인은 합의를 통해 피해자에게 사과의 뜻을 전달할 수 있고, 피해자의 용서는 성범죄 양형기준에서 특별양형인자 상 행위자/기타인자 내 감경요소로서 상당히 중요한 양형자료가 된다는 점은 (1)편에서 이미 제시한 바 있다.

따라서 성범죄 사건에서 합의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많은 경우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고인의 연락을 받는 것 자체를 또 하나의 피해로 여기곤 한다. 즉, 연락을 하는 것만으로도 2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스토킹처벌법이 신설되면서 합의를 위한 원치 않는 연락 시도를 스토킹의 한 종류로 보기도 한다. 간접적으로 형사처벌의 가능성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성범죄 사건에서 상호 모두를 위한 가장 바람직한 합의의 양상은 결국 변호사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직접적인 연락을 받지 않으면서 가해자의 사죄의 뜻과 금전적 위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고,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가장 피해자에게 더 이상의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용서를 구할 수 있다. 처벌불원서 또한 꽤 엄격한 요건을 구비 하여야 법적 효력이 있다는 점에서, 상호 변호사 간에 합의를 진행하는 것이 더더욱 바람직하다.

피해자에게는 국선변호사가 선임되는 것이 보통이나, 간혹 당사자가 원치 않거나 항소심인 경우에는 국선변호사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조차 피고인이 직접 연락하는 것보다는 변호인이 수사기관의 중재를 통해 피해자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편이 2차 피해의 우려를 최소화 할 수 있다. 그 외, 형사조정을 통하거나 판결전조사를 거쳐 합의를 진행하는 방법도 있다.

어떠한 경우이든 간에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을 하는 것은 가장 피해야 할 일 중 하나이며, 처벌규정이 없더라도 실무상 가장 금기시 되는 일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2차 가해와 피해는 쌍방 모두에게 좋지 않은 일이며, 때로는 1차 범죄보다 더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피고인이 합의를 원한다는 것은 결국, 상처를 준 쪽에서 상처를 입은 자에게 화해의 제스쳐를 취하는 것이다. 논어에 보면 “원한은 직(直)으로 갚고, 덕은 덕으로 갚는 것이다.”라는 설명이 있다. 원한을 덕으로 갚으라는 노자의 설명에 대한 일종의 반박이다. 다산 정약용은 이에 대해 “원한이 있는 자에게 자신이 받은 만큼만의 원한을 갚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라고 주석을 달았다.

즉, 용서는 당연한 일이 아니며, 대단히 복합적인 매커니즘을 통해 일어나는 하나의 기적적인 반전이다. 법률적인 차원에서 최근 대두되는 2차 피해의 문제까지 감안한다면 화해와 용서, 그리고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한 없이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 박지양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변호사시험 합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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