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재단, 74년 동안 4·3사건 생존자라는 사실을 숨겨온 이 발굴해 내기도
4‧3사건 추모공간 현주소 “매년 위령제 열려도 친인척 초청하지 않아”

4.3평화공원 전시관 마지막 문구. [박정우 기자]
4.3평화공원 전시관 마지막 문구. [박정우 기자]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1일부터 1948년 4월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좌익세력 척결이라는 이름 아래 제주도에서 민간인(약 3만 명 잠정)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현재까지도 희생자 유가족은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 진보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 반감을 가지는 극단적 반공주의)에 시달리고 있다. 이로 인해 4·3특별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불이익을 당할까 봐 희생자 신고를 기피하거나 피해 사실을 숨기는 유족이 적지 않다.

1947년 3월1일 3·1절 기념행사 시가행진을 구경하던 군중들에게 경찰이 총을 발사했고, 민간인 6명이 숨졌다. 이에 남로당은 조직적인 반경찰 활동을 전개했고,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민·관 총파업이 이어졌다.

미군정은 경찰의 발포보다는 남로당의 선동에 비중을 두고 강공정책을 추진했다. 1948년 4월3일 무장봉기가 발발했고, 미군정은 군대의 진압출동 명령을 내렸다. 11월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됐고, 진압군은 제주도 중산간 지대와 해안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상했다. 

4개월 동안 진행된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중산간 마을 95% 이상이 방화됐고, 이재민 1만5200여 세대가 발생했다. 이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민간인 집단 학살이 잇따랐고, 전국 형무소에 수감됐던 4·3사건 관련자들도 즉결처분됐다.

‘빨간 낙인은’ 지워지지 않았다

미군정은 제주도를 ‘붉은 섬(Red Island)’으로 지목했다. 제주의 모든 군·경 지휘권을 부여받은 브라운 대령은 취임사로 “원인은 흥미 없다, 나의 사명은 오직 진압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미군정은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낙인을 찍었다.

1954년 4·3사건이 종료되고, 마을 복구사업이 본격화됐으나, 후유증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의 연좌제, 고문 피해, 레드 콤플렉스가 남아 주민들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부모형제의 제사를 지낼 때도 빨갱이, 폭도의 가족이라는 낙인과 당국이 두려워 친척 간의 기별도 없이 진행됐다.

75년이 흐른 4·3사건의 장소와 추모공간은 현재 어떻게 보존되고 관리될까.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해 몇 곳을 찾았다. 

서귀포시 안덕평화공원. [박정우 기자]
서귀포시 안덕평화공원. [박정우 기자]

1. 안덕평화공원
제주 4·3 안덕평화공원은 희생자유족회 안덕지회가 2009년 조성한 추모공간이다. 서귀포시 안덕면 희생자 667명을 넋을 위로하기 위해 건립됐다. 이곳에서는 매년 4월3일 위령제가 실시된다. 이곳 지역 주민 이 모(50대, 남)씨는 “추모제든 위령제든 뭐라 불러도 좋지만, 누구도 이를 위해 친인척을 부르거나, 지인을 초청하지 않는다”며 씁쓸해했다. 

공원 내부나 주변에는 어떤 시설물도 없었다. 길가에 덩그러니 추모공간만 존재했다. 인터넷 지도에도 잘 검색되지 않으며, 현지인도 알지 못했다. 추모비에는 국가상징을 대표하는 태극기와 무궁화가 강조돼 있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어느 곳도 이곳의 관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는 않다. 

2017년 9월 제주에서 열린 ‘한국문화인류학회’에서는 ‘4·3사건의 진정한 기억과 추모에 대해’라는 학술발표회가 개최됐다. 당시 학술회에서는 “안덕평화공원은 전혀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며 “공공기관과 정치권력의 행사로만 언론에 집중 조명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서귀포시 섯알오름 추모공간 안내판. [박정우 기자]
서귀포시 섯알오름 추모공간 안내판. [박정우 기자]

2. 섯알오름 추모공간
섯알오름은 한국전쟁 직후 경찰의 ‘예비검속’에 의해 연행된 주민 250여 명이 집단 학살당한 장소다. 역시 추모비가 세워져 있으며, 당시의 모습대로 학살터가 구현돼 있다.

현장 주변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알뜨르비행장과 함께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에서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 관광지로 소개돼 있다. 앞서 방문했던 안덕평화공원과 마찬가지로 태극기와 무궁화가 강조돼 있다.

학술발표에서는 섯알오름에 대해 “추모공간은 희생자 중심에서 서술돼야 한다”며 “국가 상징물이, 좌익세력으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당한 희생자 추모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방문 현장에서 만난 제주도민 이 모(36, 남) 씨는 “종종 추모를 하러 오지만, 매번 부자연스러움을 느낀다, (태극기와 무궁화 등) 구성이 과한 것 같다”고 밝혔다.

제주4.3평화공원 기념관. [박정우 기자]
제주4.3평화공원 기념관. [박정우 기자]

3. 제주4·3평화공원
제주도는 1995년 위령공원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1997년 김대중 대통령 후보자는 4·3사건 진상규명과 위령사업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2003년에 제주4·3평화공원 기공식, 2008년에는 평화기념관이 개관해 현재의 모습이 됐다. 희생자 중 행불자 총 1만4114위의 위패도 조성돼 있다.

이와 관련 한국문화인류학회는 “4·3사건에 대한 공동체적 보상임과 동시에 50여 년간 민간 중심의 유족들이 요구한 바를 공적 권력이 움직이자 4년 만에 실현됐다”며 “4·3사건의 공론화는 긍정적이지만, 희생자에 대한 기억과 추모가 정치적 맥락에서 행해지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제주시 관덕정. [박정우 기자]
제주시 관덕정. [박정우 기자]

4. 관덕정
제주시 관덕정은 조선 중기(1448) 제주도 행정의 중심인 제주목 관아가 있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4·3사건의 도화선이 됐던 3.1절 발포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관덕정에서는 관련 안내판도, 당시 흔적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더욱이 관덕정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4·3사건과는 관련 없는 곳이다”라며 “터가 좋으니 행사를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아픔의 기억이 숨겨진 장소다. 해마다 이곳에서는 추모 행사가 열린다. 

레드 콤플렉스. 즉, 4·3 추모공간에 보이지 않는 빨간 낙인이 존재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당시 피해를 입은 희생자나 피해자 그리고 유가족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다. 

지난해에는 74년 동안 4·3사건 생존자라는 사실을 숨겨온 박화춘 할머니(96)를 4·3평화재단이 진상조사 과정에서 확인했다. 박 할머니는 1948년 군경에 붙잡혀 고문 끝에 거짓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고 1년여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됐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큰 용기를 내어주신 박화춘 어르신께 고마운 말씀을 드린다”라며 “아직 늦지 않았다, 4·3 피해 신고를 못한 도민이 계신다면 추가 신고를 부탁드린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재임 시절 “유족 신고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주저하지 말고 정부의 문들 두드려 달라”고 청하는 등 여전히 빨간 낙인에 의해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주민들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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