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국방부 등 중앙정부 ‘역사의식 부재’ 논란
자위대 버젓이 ‘역사왜곡’ 공식 SNS ‘대동아전쟁’

일본 육군 자위대 SNS 갈무리. [서경덕 교수]
일본 육군 자위대 SNS 갈무리. [서경덕 교수]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침략’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두고 일본의 왜곡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 정부의 ‘역사의식’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행정안전부는 3·1운동을 두고 오기를 범했고, 국방부는 장병 기본교재에서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해석할 만한 소지를 남겼다.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 흉상 이전도 논란이 됐다. 이런 가운데 일본 육상 자위대가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침략전쟁을 정당화할 때 쓰는 ‘대동아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비판에 휩싸였다. 이에 역사왜곡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대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 육상자위대 소속 부대가 공식 SNS(현 X, 구 트위터)에서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이라고 표현해 논란이 일었다. 대동아전쟁은 일본이 서구 식민 지배로부터 아시아 국가들을 해방하기 위해 벌인 전쟁이라는 의미로 자신들의 침략을 합리화하는 용어다.

지난 7일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육상 자위대 제32 보통과 연대는 태평양전쟁의 격전지였던 유황도(도쿄도 남쪽 해상 화산섬)에서 미일 합동으로 개최된 전몰자 추도식 참가 소식을 전했다.

문제는 이와 함께 ‘대동아전쟁 최대의 격전지 유황도, 조국을 위해 숭고한 생명을 바친 미일 양측 영령의 명복을 기원한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대동아전쟁은 일본 정부조차 공식 문서에서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

이어 미국과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교전국이었기에 ‘조국을 위해’라는 표현도 맞지 않는다. 일본은 1940년 ‘대동아공영권의 확립을 도모한다’를 외교 방침으로 내걸었고, 1941년 12월 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부르도록 결정했으나, 패전 이후 미 점령군이 해당 용어의 사용을 금지시켰다. 

육상 자위대는 한국과 일본 매체 보도 이후 비판이 일자 사흘만인 지난 8일 게시글을 삭제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육상자위대 측에 항의 메일을 보내 “지난 5일 공식 SNS 계정에 침략전쟁인 ‘태평양전쟁’을 미화하는 단어인 ‘대동아전쟁’을 사용한 건 잘못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지난 9일 취재진에게 “침략전쟁에 대한 꾸준한 사죄는커녕 전쟁을 미화하는 단어를 또 사용하는 건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겠다는 의도”라며 “일본 육상 자위대의 행보를 앞으로 유심히 지켜볼 예정이며 잘못된 부분은 계속해서 항의하도록 하겠다”라고 전해왔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 논란 일으키는 일본

일본 정부는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두고도 계속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22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통해 사회과 교과서를 확정했는데 교과서 18종 중 15종은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역사 교과서도 마찬가지로 8종에서 1940년대 조선인 강제동원을 두고 ‘강제연행’ 표현을 쓰지 않거나 삭제했다. 나아가 2종에서는 ‘종군 위안부’ 표현을 지웠다. 특히 1종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배상은 한국 정부 책임이라고 기술했다.

시민단체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와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는 즉각 반발하며 “최근 일본 정부는 식민지 피해 배·보상에 대한 모든 책임을 한국 정부에 떠넘기고 있다”라며 “모든 과거사는 청산됐다는 입장을 여러 곳에서 표출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대한민국독도협회는 취재진에게 “명백한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과 조선인 강제동원, 일본군 ‘위안부’ 등 전쟁 범죄를 축소·은폐한 일본 교과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즉각적인 시정을 촉구했다”라고 전했다.

행정안전부의 SNS 3·1운동 오기(誤記)

시민단체들은 일본의 역사 왜곡을 두고 정부의 강력한 조치를 촉구했지만, 항상 대사 초치에 머물며 소극적 태도를 지적받아왔다. 이와 더불어 행정안전부와 국방부의 ‘역사의식’ 논란이 일며 국내에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월29일 SNS 공식 계정에 게재한 카드뉴스에서 3·1운동을 “1919년 3월1일 만주 하얼빈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선언과 동시에 만주, 한국, 일본 등에서 일어난 대규모 항일 독립운동”이라고 소개했다.

하얼빈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곳이며, 임시정부와는 무관하다. 3·1운동은 1919년 3월1일 서울 종로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 중 29명이 기미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행안부는 “역사적 사실에 일부 오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삭제했다”라며 “앞으로 철저한 검수를 통해 유사한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 깊게 확인하겠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국방부 ‘독도부터 홍범도 장군까지’

지난해 12월 말에는 국방부가 5년 만에 개편·발간한 장병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가 논란이 됐다. 교재 198페이지 상단에는 “동아시아 각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군사력을 해외로 투사하거나,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쿠릴열도, 독도 문제 등 영토분쟁도 진행 중에 있어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기술됐다.

교재의 ‘독도 문제 등 영토분쟁도 진행 중’이라는 표기가 논란이 됐는데 이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한국의 영토이며, 영유권 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과도 배치된다. 

국방부는 해당 교재를 즉시 회수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이어 입장문을 통해 “독도 영유권 분쟁에 대한 표현은 일본이 영토분쟁을 시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기술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밖에도 육군사관학교에 세워진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흉상을 두고 “소련 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여러 논란이 있는 분(홍범도)을 육사에서 기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발표하며 논란이 됐다. 이후 국방부는 “독립군, 광복군 영웅 흉상 이전이 독립군과 광복군의 역사를 국군의 뿌리에서 배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역사왜곡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의 일본 대사 초치 등을 두고 ‘소극적 대응’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역사의식 부재가 왜곡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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