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의 시체를 너엄고 넘어⋯
갑자기 추 경감이 강을 향해 목청껏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낙동강아 자알 있거라, 우리는 저언진한다아⋯

강 형사도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행군하는 시늉을 냈다.
 우리 사일구 때 데모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지. 그때 내가 대학생이었거든. 우리 데모 학생의 주제가였지⋯

추 경감이 노래를 다 부른 뒤 중얼거렸다.
 그때 패기는 다 죽었어, 다 죽어.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 늙어⋯ 

강 형사가 갑자기 선구자의 노래를 불러댔다. 음치에 가까운 그의 노래는 멜로디라기보다는 악을 쓰는 목청이라고 하는 것이 옳았다.
노래를 다 부르고 난 강 형사가 강변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건 제가 대학 다닐 때 데모가였습니다. 끄윽. 그땐⋯

요즘은 데모 주제가가 무엇이지? 
추 경감도 노래를 따라 부른 뒤 속이 좀 후련한지 강가에 널브러져 앉으면서 말했다.
요즘은 진군가, 광야에서 뭐 그런 거랍니다. 끄윽. 자, 일어나세 총칼을 들고, 착취와 억압을 뚫고 어쩌구 저쩌구⋯

강 형사의 음치는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추 경감의 팔을 붙들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29. 오명자의 고백

두 정치인의 피살 사건은 그 다음부터 엄중한 검찰의 지휘하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검찰의 지휘를 받은 것은 물론이지만 수사는 거의 경찰 자율적으로 해 왔다. 그러나 이제부터 매일 수사 보고를 하고 지휘를 받아 행동하게 했다. 그뿐 아니라 대외적인 발표는 일절 경찰에서 하지 못하게 했다. 특히 신문 기자들에게 어떤 정보도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엄명이 내려졌다.

소주 한잔 마신 김에 이까짓 수사관 생활 집어치우면 되지 않느냐고 객기를 부리던 추 경감과 강 형사는 우리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자기 일에 충실해졌다.
“반장님, 오명자의 집을 수색 하라구요? 영장을 받았나요?”
강 형사가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이다.

“검찰의 지시야. 오명자가 방태산을 살해했다면 어딘가에 흔적이 있을 것이란 이야기야. 피 묻은 옷 같은 것이 있는지 몰라. 현장의 정황이나 여러 가지 객관적 증거로 보아 오명자 범인설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야.”
“근거는 무엇입니까?”

“오명자는 방태산의 비위를 조사하고 다녔어. 그의 과거 행적까지 여기저기 다니며 캐고 있었단 말야. 둘째, 그녀는 방태산과 정사를 벌였어. 사무실이나 근처 여관 등에서. 방태산은 그녀에게 놀고 있는 남편을 취직시켜 준다고 꼬였던 것이지. 그러나 취직을 시켜 줄 것 같지도 않고, 돈도 넉넉히 주지도 않았어. 비겁한 수작에 걸려 성적인 노리개가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지. 그뿐 아니야. 정필대의 아내 송희로부터 방태산에게 원수를 갚게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 송희는 방태산이 정필대를 죽였다고 믿고 있거든.”

“저도 그것이 가장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태산 아니면 차주호가 정필대를 죽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차주호가 죽였다면 자기 측근인 남봉철의 조직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방태산도 차주호의 짓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하나 유력한 용의자는 신지혜라는 여자입니다. 그녀는 정필대나 방태산을 죽일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으니까요.”

“어쨌든 오명자를 제1의 용의자로 보고 집이나 측근을 좀더 수사해 봐.”
강 형사는 쓴 입맛을 두어 번 다시며 마지못해 밖으로 나갔다.
강 형사는 상부에서 관심을 갖지 말라는 차주호에 관해 꼭 무엇이 있는 것 같은 육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퇴근하는 길에 차주호의 임시 선거사무실 부근을 가 보았다. 선거사무실로 올라가는 뒷계단이 잘 보이는 맞은편 생맥주집에 앉아 맥주 1천 씨씨를 시켜 놓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추 경감이나 검찰에서 하지 말라는 짓을 하고 있는 자신이 우스워서 강 형사는 혼자 피식 웃었다.

‘난 천생 형사로 늙어 죽으란 것인가 보아. 이게 무슨 청승이람.’
그가 찬 맥주잔을 단숨에 비우고 일어나려고 생각했다.
계단에는 이제 전혀 인기척이 없었다. 차주호나 진유선이 벌써 퇴근하고 없는지도 몰랐다. 강 형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호프집을 나왔다.

강 형사는 그 이튿날도 그 호프집에 다시 갔다. 그곳을 출입하는 자들의 꼬투리를 잡고 싶었다. 그가 은근히 바란 것은 정부의 고위층이나 경찰의 고위 간부, 검찰 간부 등이 그곳을 출입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차주호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계단을 걸어 나오는 고위층은 아무도 없었다.

하기야 높은 사람들이 은밀한 장소에서 약속하고 만나지 이런 선거 사무소에 찾아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것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강 형사가 나흘째 호프집에서 1천 씨씨를 마시던 날이었다.
‘아니 저건⋯’

모두가 퇴근하고 없을 법한 무렵에 계단을 내려오는 여인은 뜻밖에도 오명자였다.
나지막한 키에 동그란 얼굴, 붉은 줄무늬의 브라우스와 블루 진 치마가 부지런한 인상을 그대로 풍겼다.
‘오명자가? 그렇다면⋯’

강 형사는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서 그녀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녀는 큰길로 한참 걷다가 지하절 정거장으로 들어갔다. 고물 프레스토를 몰고 가던 강 형사는 길옆 아무 곳에나 차를 세우고 지하도로 급히 뛰어갔다.
‘제길헐. 또 견인료 물게 생겼네’

그는 혼자 욕설을 퍼부었다. 수사비로 정차 위반한 견인료나 과태료를 내 줄 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오명자는 밀물처럼 쏟아지는 인파에 섞여 어디로 가 버렸는지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다.
강 형사는 닭 쫓던 개가 되어 포기하고 말았다.

“반장님, 분명히 오명자였습니다. 그 여자가 무엇 때문에 차주호의 사무실을 들랑거릴까요?”
“자네는 왜 쓸데 없는 짓을 하나? 차주호 위원장에 관한 일은 싹 잊어버리라고 내가 하지 않았나? 그런데 무엇 때문에 다시 차주호 사무실을 감시했단 말인가?”
추 경감이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은 대단히 흥미가 있어 한다고 강형사는 판단하고 말을 계속했다.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방태산이 죽어 직장을 잃자 할 수 있는 일이 표 줍는 것이니, 차주호를 찾아가 선거 운동원으로 취직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차주호의 운동원이었는데 방태산에게 위장 취업해서 그곳의 정보를 빼내 주었거나⋯”
“방태산을 죽일 수도 있지.”

추 경감이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렇다면 빨리 오명자의 집이나 수색을 해봐.”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가보죠.”
강 형사는 갑자기 신이 나서 뛰다시피 사무실을 나갔다.

<악녀시대용>
이상우;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학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