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특단의 카드를 내밀었다. 지난 연찬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책임질 혁신위원회 위원장에 홍준표 의원을 내정한 것이다. 박 대표는 홍 의원 내정 직후 그의 경륜과 개혁의지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표를 중심으로 한나라당 계파간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문제를 다룰 혁신위 위원장에 홍 의원을 내정한 것은 다소 의외라는게 당 안팎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홍 의원이 누구인가. 일찌감치 ‘박근혜 필패론’을 쏘아 올리며 박 대표를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던 인사다. 때문에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박 대표가 이명박 시장을 염두에 두고 홍 의원을 혁신위원장에 임명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즉 총체적인 위기국면에 처한 박 대표가 라이벌인 이 시장측과의 전략적 연대를 통해 정면돌파를 시도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지난해 7월 전당대회를 통해 대표에 재추대된 이후 박 대표는 ‘당명개정’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해왔다.

‘사당(私黨)화’라는 각 계파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 대표는 2월 초 연찬회에서 당명 개정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박 대표의 이러한 의지는 계파간 이해관계로 끝내 무산됐고 당명 개정건은 혁신위로 넘겨졌다. 결국 박 대표는 리더십 부재라는 꼬리표만 남긴 채 연찬회를 마감해야 했다. 연찬회 직후 반박근혜그룹에선 박 대표가 혁신위 구성에 늑장대응한다며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열흘을 고심한 박 대표는 ‘박근혜 체제’에 비우호적인 ‘홍준표 카드’를 전격 꺼내들었다. 홍 의원을 혁신위원장에 내정한 직후 박 대표는 “홍준표 의원은 3선 의원으로 풍부한 경륜을 갖췄고 당 개혁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 온 점 때문에 적임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혁신위는 특위 형태이기 때문에 별도의 인사위원회 없이 의원총회와 운영위, 상임위의 추인을 거쳐 정식으로 임명되는 자리라는 점에서 당내에서는 ‘파격인사’라는 반응이다. 홍 의원의 정치적 성향과 맞물려 혁신위가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연찬회서 제기됐던 당권-대권 분리 및 조기 전당대회 등 갈길 먼 대권가도에 가속페달도 밟기 전에 리더십 위기에까지 처한 박 대표에 있어 혁신위의 결정은 조기낙마냐 재도약이냐를 좌우할 수 있는 실험무대인 셈이다. 연찬회 직후 박 대표는 스스로 혁신위원장을 맡겠다는 의지를 흘렸다가 향후 파장을 고려,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는 사실에서 혁신위의 역할과 위원장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실제로 혁신위는 한나라당 혁신론과 맞물려 상당한 역할과 권한이 부여된 상태다. 혁신위는 재·보궐선거 이전인 4월 중순까지 당명개정, 당조직 전면개편, 노선 재정립, 당권 및 대권후보 분리, 진성 당원제도입 등 연찬회에서 논의된 모든 사항을 수렴, 재보선 공천문제까지 당 개혁의 기본 틀을 다잡는 역할을 맡게 된다. 홍 의원 역시 “혁신위원회가 아닌 혁명위원회를 이끄는 계엄사령관의 심정으로 당이 2007년 대권을 탈환하는데 최적의 여건을 만들겠다”며 혁신위원장을 계엄사령관에 비유했을 정도다. 그는 혁신위의 주요 활동방향에 대해 “정책 혁신, 홍보 혁신, 당헌·당규 혁신”이라며 “이를 통해 대권 가도의 전투력을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의원은 구체적으로 “박근혜 대표만이 아니라 강재섭 의원, 이명박 서울시장,손학규 경기지사 등 ‘빅4’를 묶어서 원형경기장에 넣은 뒤 2007년 7월까지 혼전을 벌이다가 살아남은 자를 ‘글래디에이터’로 만들 것”과 “혁신위가 이 과정을 시스템으로 구축할 용광로가 될 것”임을 제시했다. 여기에 ‘전권 위임’을 약속한 박 대표나 이를 보장받은 홍 의원이나 혁신위의 ‘성공적 운영’에는 상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표측은 홍 의원 내정에 낙관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박그룹 대표격인 홍 의원을 요직에 기용함으로써 당의 쇄신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박 대표의 개혁의지와 자신감이 드러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한나라당 안팎의 시각은 여전히 이들의 어울리지 않는 ‘동주(同舟)’에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대권주자로서 코너에 몰린 박 대표의 위기돌파 플랜과 차기 서울시장을 노리고 있는 홍 의원의 정치적 야망, 여기에 박 대표와 대권 경쟁을 펼치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당세 확장 전략 등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선 대권 경쟁자인 박 대표와 이 시장이 전략적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박 대표는 반박그룹 대표격인 홍 의원에게 중책을 맡김으로써 반박 노선에 제동을 걸 수 있고, 이 시장은 당세 확장과 박 대표에 대한 공식적인 견제 창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상호 윈윈 전략이 내포돼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러한 관측 배경에는 이 시장과 홍 의원의 막역한 관계가 자리잡고 있다. 이 시장과 고대 동문인 홍 의원은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홍보위원장을 맡아 이 시장 당선에 공헌했다. 두 사람 모두 야인시절이었던 99년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재기 결의’를 다지기도 했고, 이 시장이 홍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홍 의원이 박 대표를 견제하고 있는 것은 박 대표와 치열한 대권경쟁을 펼치고 있는 이 시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두 사람의 이러한 각별한 관계에서 기인한다.실제로 홍 의원은 지난 1월23일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과 박 대표가 일체일 수 없다”고 강조했고, 연찬회에선 “박근혜 대표가 당당하게 박정희 시대의 공과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 대처해야 한다”며 박 대표를 정면으로 공격해왔다.특히 홍 의원이 핵심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가발전전략연구소(발전연)는 그동안 일정 거리를 유지해 왔던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과 연찬회를 계기로 반박연대를 구축하려는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당내 반박그룹으로서 독자노선을 걸어왔던 이들은 연찬회에서 연대 움직임을 보이며 대표 퇴진론까지 들먹이는가 하면 박 대표의 사당화에 대한 비판을 맹렬히 쏟아냈다.

이러한 정황에 비춰볼 때 박 대표가 홍 의원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는 ‘반박연대’ 구축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가 어느정도 내포돼 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홍 의원이 혁신위원장에 내정됨으로써 향후 반박연대 흐름에는 제동이 걸릴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홍 의원이 반박그룹의 큰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박연대의 연결고리가 다소 헐거워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그동안 비주류에서 제기해왔던 사당화 논란은 당분간 명분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홍 의원을 매개로 한 박 대표와 이 시장의 ‘동주’는 분명 시간적 한계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차기 대권까지는 아직도 2년10개월이란 기간이 남아 있는 만큼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에 공감한 두 사람이 당 이미지 쇄신 등을 위해 당분간 의기투합할 수 있으나 대권경쟁이 본격화될 경우 상호 대립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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