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국부론을 통해 우리가 매일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고려와 행동 때문이라며 인간의 이기심이 결국 경제(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스미스는 국부론을 쓰기 17년 전 쓴 도덕 감정론에서 사회의 질서 유지가 가능한 것은 인간의 양심이라는 내면 윤리가 있기 때문이며,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공감, 이것이 관습화되고 제도화되어 행동 규범으로 자리잡으면 이기심의 집합체인 사회에서 남을 생각하는 이타심으로 사회가 운영된다고도 했다.

아담 스미스 그 스스로 인간의 본성이 이타심인지 이기심인지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스미스의 인간 본성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논쟁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그의 생각을 정리해보면, 첫째, 인간의 이기심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과도한 이기심은 사회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고, 둘째, 인간에게는 이기심 말고도 이타심과 공감 능력이라는 본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두 인간 본성이 우리 사회 속에서 공존하며 지금까지 우리가 살았다는 점에서 그의 통찰은 이론을 뛰어넘는 시사점이 있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한가위가 온다. 그런데 국민들은 의료 대란이라는 사회적 참사에 불안해 하고 있다. 실제로 응급실 뺑뺑이로 생명을 잃었다는 소식들도 들린다. 스미스식 이타심으로 병원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들도 이제 한계가 왔다는 신호가 온다. 시험 잘 봐라, 취직해라, 결혼해라, 애 낳아라 같이 청년들을 아프게 하는 일종의 이기적 덕담(?) 대신에, 아프지 마라는 이타적, 진심어린 말이 이번 명절의 가장 좋은 덕담으로 기록될 명절의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이 의료대란을 만든 것은 단언코 누군가()의 이기심이다. 그럼 누구()의 이기심인가?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93일 국회에서 중증환자와 난치병 환자를 떠나버린 전공의가 제일 먼저 잘못한 것이라며 의료대란의 원인은 전공의들의 이기심으로 환자를 떠난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전공의 단체와 의사협회는 헌법 제15조의 직업의 자유까지 거론하며 "타협하지 않는 정부"를 탓하고 있다. 양측 모두 국민을 생각하는 이타심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 누가 이기적이고, 누가 이타적인가? 정부는 시간을 끌면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의료계 역시 같은 생각이다. 시간을 끌어서 국민들이 더 힘들어지면 그 덕분에 정부건, 의료계건 누군가가 승리할 것이라고 양쪽 모두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간이 지나면 누가 승리할까? 정부일까? 의료계일까? 승리를 점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데 누가 패배할 것인지는 분명해 보인다. 시간 끄는 사이 뺑뺑이로 안타까운 생명을 잃을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들, 힘겨루기로 버티다 국민 생명권을 포기했다고 비판받을 정부와 여당, 더 넓게는 정치권 전체, 그 과정에서 이기적인 의사들로 낙인찍힐 의료계, 모두가 패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누가 봐도 뻔한 결과를 받아들일 것인가? 그렇게 되지 않기위해, 상대인 우리가 타인들이 이번 사태에 어떻게 생각할지 정말 고민하지 않을 것인가?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공감, 이것이 관습화되고 제도화되어 행동 규범으로 자리잡으면 이기심의 집합체인 사회에서 남을 생각하는 이타심으로 사회가 운영된다'는 아담 스미스의 통찰을 흘려들을 것인가?

하루라도 빨리, 안되면 한가위 전이라도 의정 대립, 의료 대란이 수습된다면 국민들은 정말 기쁠 것 같다. 명절 앞두고 가장 큰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간절히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해결이 된다해도, ‘아프지 마라가 가장 큰 명절 덕담이 되는 사회가 되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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