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여야의 방송장악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MBC(문화방송) 경영진 교체를 둘러싼 정부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온갖 파열음을 노출하고 있다. 그야말로 혈투다. 특히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선임 권한을 방송통신위원회가 쥐고 있다는 점에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말그대로 전쟁터였다. 낯 뜨거운 인신공격이 사흘 내내 이어지면서 수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총공세에 나서며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적극적인 방어에 나서며 이진숙 위원장을 옹호했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보통 여야 격돌의 장이지만 방통위원장 인사청문회는 유독 심했다. 사생결단 그 자체였다. MBC 장악을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 내막을 파헤쳤다.

"임명하자마자 거야 탄핵소추안 제출...결과는?"  윤 대통령이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임명을 강행했다. 뉴시스
"임명하자마자 거야 탄핵소추안 제출...결과는?" 윤 대통령이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임명을 강행했다. 뉴시스

광우병 보도부터 피의 숙청까지정권교체 때마다 MBC 논란
 이진숙 인사청문회 여야 극한대치사흘 내내 법인카드 인신공격
- 탄핵·사퇴 반복 방통위 식물상태 와해본질은 ‘MBC장악논란

공영방송을 둘러싼 여야의 파워게임은 역대 정권 때마다 반복돼왔다. 특히 경영진 교체를 둘라싼 논란은 거센 잡음을 만들어내왔다. 현 여야 갈등의 본질은 MBC. MBC는 지난 대선을 시작으로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불편한 동거를 이어왔다. 주요 사안과 관련해 정권 핵심부와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왔다. 정부여당은 노조가 완벽 장악해 대통령 탄핵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MBC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야당은 윤석열정부의 노골적인 방송장악 음모라며 거세게 반발해왔다. 문제는 여야 갈등에 기자협회와 언론노조는 물론 시민단체마저 가세하면서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광우병 촛불시위 촉발 MBC, 정부 출범 이후 탄핵방송주도

MBC는 유독 보수정부와 불편한 동거를 이어왔다. 시발점은 2008년 이명박정부 출범 초기 전국을 뒤흔든 광우병 촛불시위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한 광우병 촛불시위를 촉발한 것은 바로 MBC 피디수첩의 광우병 관련 기획 보도였다. 이후 보수정권과 MBC의 관계는 날로 악화돼갔다. 특히 김재철 사장 체제 하에서 장기간 파업사태를 거치면서 보수정권과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양측의 불편한 동거는 MB정부에 이어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역전된 것은 201719대 대선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승리하면서 상황은 180도 역전됐다. MBC는 최승호 사장 체제가 출범하면서 피의 숙청이 시작됐다. MBC는 진보 색채를 보다 명확히 하면서 보수진영과의 끝없는 갈등을 이어갔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도 대표적인 사례다. MBC 최장수 여성 앵커를 역임했던 배현진 의원은 파업불참을 이유로 보복성 징계를 받았고 이후 MBC를 떠나 정치권에 입문한 바 있다.

문재인정부 시절에는 정권과 찰떡호흡을 과시했지만 윤석열정부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상황은 또다시 악화됐다. MBC의 주요 보도는 현 정권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의 7시간 통화 녹취록 보도가 대표적이다. 정권 출범 이후에도 해외순방 민간인 동행 의혹 보도 바이든날리면 사태 김건희 여사 디올백 수수 의혹 채상병 사망 수사의압 의혹 등의 보도를 주도해왔다. MBC의 노골적인 정권비판성 보도에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위한 여론조성용이라고 맹비난했다.

용산 대통령실 입장에서 본다면 MBC는 그야말로 눈엣가시였다. MBC에 대한 용산 대통령실의 인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는 황상수 전 시민사회수석의 실언이었다. 황 전 수석은 22대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MBC는 잘 들어라면서 내가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에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린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로 기사 쓰고 했던 게 문제가 됐다는 취지라고 언급했다. 황 전 수석은 이후 농담성이라는 해명했지만 파문은 일파만파로 확산됐고 결과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후에도 정권과 MBC의 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극한대치가 지속됐다.

보수우파 여전사 vs 방송장악 앞잡이이진숙 청문회 대혼란 지속

"이번에는 장수할까?" 이진숙 네번째 방송통신위원장 후보 인사청문회 장면. 뉴시스
"이번에는 장수할까?" 이진숙 네번째 방송통신위원장 후보 인사청문회 장면. 뉴시스

MBC 사장 교체를 위해서는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진 개편이 필수적이다. 정부여당은 MBC 정상화를 명분으로 이진숙 위원장을 방통위원장에 낙점했다. 언론노조가 장악한 MBC가 사사건건 정권비판성 보도로 윤석열정부를 탄핵으로 내몰고 있는 것에 대한 방어 차원인 셈이다. 반대로 야권은 현 정권의 노골적인 방송장악 음모라며 강력 반발해왔다. 정권 출범 이후 TBS, YTN, KBS 장악에 이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MBC까지 접수하기 위한 것이라는 맹공을 가했다.

이슈의 주인공인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물러서지 않는 보수우파의 여전사라는 찬사가 있는가 하면 방송장악의 앞잡이라는 혹평도 뒤따른다. 이진숙 위원장은 국내 최초 여성 종군기자로 유명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지난 1990년 걸프전쟁과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사선을 넘나드는 취재로 기자 커리어의 정점에 올랐다. 1992MBC노조 파업 당시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기점은 2012년 김재철 사장 체제의 MBC였다. MBC홍보국장으로 재직했던 이 위원장은 크고작은 갈등으로 MBC기자회로부터 제명되는 치욕을 겪기도 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시절 대전MBC 사장으로 재직하다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물러났다. 이후 보다 선명한 보수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202021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자유한국당 영입인재로 총선 출마를 준비했지만 좌절됐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캠프에 합류해 대선승리에 기여했으며 정권 출범 이후에는 방통위원장 후보군으로 여러 차례 거론됐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보수우파의 여전사라는 애칭이 생겨났다.

여야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치열하게 대립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그야말로 목불인견이었다. 장관 인사청문회는 보통 하루에 그치지만 수적 우위를 앞세운 민주당은 사흘 내내 청문회를 열고 맹공에 나섰다. 특히 법인카드 사용 문제를 놓고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청문회 질의 과정에서 고성과 모욕이 빈발했다. ‘빵진숙’, ‘빵통위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큼 민주당의 공세는 거셌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 후보자의 법인카드 사용 문제는 정상적인 업무수행과 경영활동을 위한 것인데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희화화한다고 강력 반발했다.

다소 이상한 점은 이진숙 위원장이 대전 MBC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문재인정부 시절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을 거치면서 무차별적인 의혹 제기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과도한 정치공세에 대해 과거 MBC 경영진의 반발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MBC 전직 계열사 및 지역사 경영진들은 지난달 29일 성명서에서 문재인정부 시절 MBC에서 적폐인 이진숙 후보자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이미 낱낱이 조사됐다. 어떠한 부정 사용이 발견됐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과거 대전MBC 사장 재직 시절) 법인카드 사용 내역에 대한 부당한 추궁과 모욕을 그만두라고 촉구할 정도였다.

아울러 이진숙 위원장의 신상과 방송장악 논란으로 청문회가 흐르면서 보다 중요한 사안들이 간과됐다. 특히 구글 인앱결제 과징금 부과와 네이버 알고리즘 실태조사 결과 등 방송을 제외한 통신 분야의 현안은 묻히고 말았다.

정권교체 때마다 방송장악 논란BBC·NHK 모델 도입 시급

"이준석 개혁신당은 빠졌네~" 용혜인(왼쪽부터) 기본소득당 대표,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 김현 더불어민주당 과방위 간사, 윤종오 진보당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을 제출하고 있다. 2024.08.01. 뉴시스
"이준석 개혁신당은 빠졌네~" 용혜인(왼쪽부터) 기본소득당 대표,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 김현 더불어민주당 과방위 간사, 윤종오 진보당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을 제출하고 있다. 2024.08.01. 뉴시스

청문회 이후 상황은 속전속결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후 방통위는 전체회의를 통해 공영방송 이사 추천·선임안을 의결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2인 체제의 방통위가 공영방송 이사 선임안을 의결한 것은 위법이라며 이진숙 위원장 취임 하루 만에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공직 부적격자이자 수사 대상인 이진숙이 위원장으로 임명되자마자 불법적 2인 구성 상황에서 이사 선임을 강행했다명백한 불법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라고 맹비난했다. 국민의힘은 이에 국정 테러이자 무고 탄핵이라면서 민주당의 습관성 탄핵 중독증은 단 하루도 탄핵을 끊지 못할 만큼 금단현상이 극에 달했다고 꼬집었다.

이진숙 위원장은 임명과 동시에 탄핵 위협에 내몰렸다. 전임 이동관·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마찬가지의 행보다. 이동관 전 위원장은 임명 3개월만에, 김홍일 전 위원장은 6개월 만에 각각 야당의 탄핵 위협에 물러났다. 방통위원장의 법적 임기가 3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극단적인 비정상이다. 절대 과반을 확보한 야당은 이진숙 위원장 탄핵안 단독처리가 가능하다. 다만 이진숙 위원장은 탄핵안 표결 이전에 자진사퇴한 전임자들과 달리 탄핵안 통과 이후에도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과거 민주당이 주도했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안이 헌재에서 부결된 것처럼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탄핵안이 기각될 경우 이진숙 위원장은 오히려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다. 방통위 업무 추진이 힘을 받으면서 이진숙 체제가 공고해질 수 있다.

그래도 MBC의 문제는 여전하다. 향후 여야 모두 MBC를 본인에게 유리한 체제로 개편 또는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은 MBC를 민주노총이 장악한 노영방송으로 보고 있다. 공영방송은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은 물론 노동단체의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는데 현 MBC는 그야말로 민주노총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진보진영은 윤석열정부가 정권비판에 앞장서온 MBC의 언론자유를 부당하게 탄압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언론계 안팎에서는 MBC의 경우 경영진 교체가 현실화될 경우 과거와 같은 장기파업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방통위의 파행 운영이다. 방통위는 수개월산 식물상태의 국가기관이 돼버렸다. 야당의 탄핵안 발의를 시작으로 방통위원장 사퇴 대통령의 후보자 지명과 인사청문회 임명 강행과 더불어 야당의 탄핵안 발의가 반복되는 무한 파행이 지속돼왔다. 만일 이진숙 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되면 방통위는 김태규 부위원장의 직무대행 체제로 방통위는 또다시 1인 체제가 된다. 게다가 민주당이 방송장악 국정조사공세를 예고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야당의 정략적 공세로 방통위의 정상운영은 하반기에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역대 정권 때마다 반복돼온 방송장악 논란은 우리 정치사의 부끄러운 한 페이지라면서 여야 모두 예외가 아니다. 여당일 때는 방송장악, 야당일 때는 결사반대를 외치는 ‘180도 내로남불의 모습을 보여왔다. 무엇보다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존중하는 최우선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내외적인 경제위기로 민생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여야의 지나친 정쟁은 국민 모두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면서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독립적이고 공정한 방송환경을 만들 수 있는 여야의 대타협이 필수적이다. 글로벌 표준인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 모델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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