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군자의 ‘인생삼락(人生三樂)’으로 부모 생존과 형제 무고, 부끄럽지 않게 사는 당당함, 인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을 꼽았다. 천하의 왕 노릇도 이 세 가지 즐거움에 미치지 못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북송의 대 유학자 정이(程頤)는 ‘인생삼불행론(人生三不幸論)’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어린 시절 과거에 급제하는 소년등과(少年登科), 부모 형제의 권세가 높은 것, 뛰어난 재주와 문장력이다. 일찍 출세하면 교만해질 수 있고, 부모형제 잘 만나 노력을 게을리할 수 있으며, 재주와 문장이 출중하면 안일함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그리하여 ‘소년등과 한 사람치고 좋게 죽은 사람이 없다(少年登科不得好死·소년등과부득호사)’는 말이 나왔다.

한국 정치사에서 보수진영 인물 중 큰 실패자의 한 사람이 이회창 전 총재이다. 문민정부 출범 후 이회창은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서 감사원장-국무총리에 발탁된 후 내로라하는 중진들을 제치고 집권당 대표로 정치권에 진입했다. 그러나 그는 대선에서 김대중-노무현에게 연거푸 패배하였다.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게 싸워서 졌다’는 말이 회자하였다. 그 결과 보수우파는 ‘10년 야당’의 길을 걸어야 했다.

이회창 총재의 패인은 첫째, 적을 얕보면 반드시 패한다는 ‘경적필패(輕敵必敗)’에 있으며, ‘DJT(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합’을 막지 못한 데 있다. 둘째, YS와의 결별로 인한 이인제 후보 출마(보수표 분산)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셋째, 경기고·서울대 출신 중심의 7인회가 인의 장막을 쳐서 소통의 단절을 가져왔다. 5년 후 이 총재는 자신을 도와준 김윤환·이기택 등 중진들을 토사구팽시킨 후 실패한 진용과 방식을 답습, 권토중래(捲土重來)에 실패했다.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후보가 당 대표에 선출되었다. 당원과 국민은 세대교체를 선택했고, ‘반(反)윤석열’ 노선에 힘을 실어줬다. 필자는 지난 6월 13일 자 ‘집권여당 대표와 형극(荊棘)의 길’ 제하의 칼럼에서 “대선에 뜻을 둔 사람은 1년 1개월짜리 당 대표 선거에 불출마하는 게 옳다”는 논지(論旨)를 편 바 있다.

전당대회가 ‘자폭(自爆)’으로 흘러 ‘분당’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소년등과로 인한 재승박덕(材勝薄德)의 전형이 된 한 대표는 이회창 총재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당시의 이회창 총재보다 10살 어린 한 대표가 이끄는 집권당이 또다시 ‘10년 야당’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보수우파의 미래가 우려된다.

먼저, 한동훈 대표는 자신이 법무부장관 시절 “제 검사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 황금기)는 문재인 정권 초반”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보수우파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

7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후 대법원·검찰·경찰 같은 국가기관을 ‘권력의 개’로 만들었고, 좌파 방송·언론을 ‘친위대’로 만들었다. 문 대통령은 5년 내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보수세력을 ‘적폐청산’으로 몰아쳤다. 한동훈 검사는 좌익정치 권력의 충견 노릇을 했고, 박근혜 정부 인사들 1,000명 이상을 조사하고 200명 넘게 구속했다. 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보수 대통령 두 분이 구속되는 ‘현대판 사화(史禍)’를 만드는데 앞장선 한 대표는 그 시절의 활약(?)을 자랑한 것을 사과해야 한다.

다음은, 한 대표 주위의 ‘좌익꾼들’을 정리해야 한다. 사회주의자 진중권, 삼성 저격수 김경률 등을 비롯한 주변의 좌익 참모진을 해체해야 한다. 4.10 총선 공천 과정에서 좌파 인사들을 검증 없이 공천하면서 정통 우파들을 탈락시킨 것은 사천(私薦)이며 정체성이 없는 본말전도(本末顚倒)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적통을 이어받은 보수우파 집권당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보수의 가치 실현과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한 대표의 ‘패스트트랙 공소 취소 요구’ 폭로는 당의 역린을 건드렸으며, 보수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방기한 이율배반(二律背反)이기 때문이다.

한 대표의 정치력은 미지수이며, 앞길에는 수많은 난제와 거야의 폭주가 도사리고 있다. 가장 큰 과제는 당의 결속과 당정 일체 회복을 위한 ‘통 큰 리더십’ 발휘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며 당권주자들과의 반목도 풀어야 할 과제다. 한 대표는 당장 대권행보보다는 보수재건에 진력해야 한다. 전당대회 이후 집권 여당의 앞날이 심히 우려된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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