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권력행사는 정파와 이념 계층 신분에 상관없이 공정해야”
‘인품 중시하면 조직 망하고 능력 중시하면 조직 흥한다’는 조직원리 좋아해

김병현 전 부산동부지청장
김병현 전 부산동부지청장

[일요서울ㅣ장휘경 기자] 10·20대 청소년들은 장래 직업에 대한 원대한 꿈이 있지만, 자신의 진로 설계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확신을 얻지 못해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일요서울이 다양한 직업군의 멘토를 만나 그 직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알아봄으로써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직업관을 심어주고 진로를 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번에는 ‘검사’를 꿈꾸는 10·20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로 김병현 전 부산동부지청장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병현 전 부산동부지청장은 시골 출신이라서인지 어릴 적부터 소위 관직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당연하듯 법대에 진학해서 고시를 준비했고 판사보다는 역동적인 느낌의 검사가 좋아 보여 검찰 쪽으로 진로를 정했다.

김 전 지청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 1996년부터 검사생활을 시작해 23년간 봉직했다. 검사 시절 청와대와 감사원에서 파견근무를 한 이력이 있으며 현재는 법무법인 평산의 공동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 검찰 재직 당시 어느 언론에 의해 ‘한국의 검사 1호’라는 타이틀이 붙었는데, 이와 같은 타이틀을 얻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당시 노무현정부가 들어서면서 검찰이 권위적인 모습을 버리고 국민과 친근해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었어요. 그래서 검찰 지휘부가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언론매체와 상의해 검찰 각 분야에서 일하는 검사들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직접 소개하겠다고 결정했는데요. 마침 제가 공안검사로서는 이례적으로 노동계와 소통이 잘되었기 때문에 종전의 검사와는 다른 모습이라는 관점에서 제일 먼저 선정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검찰 내 검사들 사이에서 소수 검사들의 그릇된 우월의식과 파당주의에서 비롯된 갈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검사 시절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검사들 사이에서 일부의 우월주의 내지 파당주의가 거론되는 것은 단순히 검찰만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 전체의 고민거리입니다. 민주화된 시대에는 검경이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므로 그 권력행사는 정파와 이념 계층과 신분에 상관없이 공정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과거 군부내 하나회의 폐해처럼 일부가 선민의식을 가진다면 그 권력행사 역시 독점적 애국심을 내세운 착시현상에 의해 사회통념이나 상식을 벗어나게 되잖아요.

저는 이런 문제점을 현직 시절부터 많이 지적해왔고 그래서 제가 소규모 조직이지만 보직 인사권을 행사할 때에는 형사부검사들과 공안특수부 검사들이 서로 순환하도록 강조했어요. 공안을 해본 사람만 공안검사가 되거나 특수를 해본 사람만 계속 특수검사를 하게 되면 비록 지엽적 효율성은 증가하겠지만 그들만의 안목으로 세상을 움직이려고 해서 더 큰 폐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 과거 검사들은 선후배 간 도제교육을 통해 굳건한 일체감을 지니면서 성장했던 반면 요즘은 검사 인원이 대폭 증원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극소수 검사들이 무리를 지어 끌어주고 밀어주는 현상을 빚고 있는데요, 과거와 현재의 이 두 현상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조직원리는 ‘인품을 중시하면 조직이 망하고 능력을 중시하면 조직이 흥한다’라는 말이에요. 내심 친소를 중시하는 지휘관이 형식적으로는 인품을 내세우는 일이 많기 때문이죠.

과거 검사들이 소수일 경우에는 능력이나 품성 등이 바로 판별됐기에 친소로 사람을 이끌어도 어느 정도 기준을 만족시키는 인재만 발탁되었어요. 그런데 수가 늘어나면서 무차별적으로 자기가 아는 사람만 등용하는 풍조가 생겼습니다.

이 부분은 지금의 후배들을 탓하기보다 조직에서 붕당을 만들고 보스처럼 행세한 몇몇 고위직 선배들이 반성해야 해요. 그들은 자신들이 한 짓을 모르고 있어요. 역대 총장이나 장관들도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 국민에게 존경받고 신뢰받는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이나 역량, 소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항상 법조인이 지향할 바는 법가사상이 아니라 유가사상이라고 말해요. 진시황제 시절의 엄격한 법기술자들이 얼마나 많은 인명을 해쳤습니까. 나찌 시절에 치안질서유지법으로 얼마나 비이성적인 상황이 발생했습니까.

황당하게 들리시겠지만 ‘법과 원칙에 따른다’는 말이야말로 인간사에 대한 철학적 기초가 결여된 편협함을 내포합니다. 법조인은 ‘법과 원칙보다 사회통념과 상식’을 중시해야 해요. 법은 바뀔 수 있지만 인간의 보편적 가치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후배들에게 웃으면서 “앞만 보고 간다는 말도 틀렸다. 좌고우면하면서 가라”고 농담조로 말하곤 했어요. 앞만 보고 가다 보면 그들만의 애국심으로 뭉치게 되고 나중에는 방향성을 잃게 돼 국가적 재앙이 되거든요. 옆에 있는 국민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평균인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국민을 계몽대상으로 보는 관료나 언론, 정치인들 때문에 이 나라가 갈등과 반목이 심해진다고 생각해요.

- 검사시절 별명이 활검(活檢)이셨으며 범죄자를 단죄하는 것보다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상생을 꾀하는 검사이셨던 것으로 유명한데, 이러한 삶의 방식은 어떤 직업적 가치를 파생시켰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검사 시절부터 변호사가 된 지금까지 극단적 쟁송이나 국가권력을 통한 해결이 안타까웠어요. 특히 지인들끼리의 분쟁은 국가가 나서서 영원한 단절을 가져올 경우가 많기에 모든 힘을 다해서 화해시키려고 노력했죠.

제가 불교계 내부의 분쟁을 종식시키거나 노사분규가 심한 업체의 화해를 이룬 일들은 지금도 다행이라고 여겨요. 최소의 희생으로 사태를 종결시킨다는 마음의 근저에는 모든 인생이 다 어렵고 힘들다는 관점, 즉 긍휼함 때문이었어요.

주제넘게 말씀드린다면 제가 스탠포드대학에 잠시 연수를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저는 아시아인들의 공통적 가치가 긍휼함 내지 자비심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마음으로 국가간 연대를 이룬다면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서방세계보다 훨씬 안정된 세상이 될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현재는 검사직을 떠나 변호사로 활동 중이신데, 현 직무에 검사경력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도움이 되나요.

▲이 부분은 조심스러운데 저는 제 현직 경험이 변호사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인간에 대한 이해와 그를 바탕으로 한 대응에 있어 지난 세월과 경험을 무시할 순 없지요. 그리고 의뢰인들도 일단 심정적 안정을 많이 느끼시는 것 같아요.

물론 전관예우를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고위직 출신이 검찰에 찾아간다고 해서 결론이 바뀌지는 않고 요즘 후배들이 선배를 존경하는 것 같지도 않아요. 그러나 실무를 잘 알기에 대화가 좀 수월하기는 하죠.

- 법조인으로서 어떤 사건을 맡을 때가 가장 신나고 보람되며 반대로 가장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사건은 어떤 부류인가요.

▲저는 형사사건보다 기업사건 예컨대 경영권 분쟁 같은 사건을 처리할 때 기분이 좋았어요. 형사사건을 하다 보면 의뢰인과 감정동화가 돼 너무 힘들어요. 의뢰인이 불안하면 저도 불안하고 의뢰인이 괴로우면 저도 괴롭기 때문이에요.

특히 언론에서 비난하는 사건은 아무래도 선임을 거절하지요. 살인, 강도, 강간 같은 비인륜적 범죄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이 부분은 회의가 들어요. 문명국가에서는 누구든지 변호 받을 권리가 있는데 언론이 나서서 변호권을 압박하면서 비난하는 것을 보면 이게 정상적 태도인가 싶기도 하고 그런 추세에 순응하는 저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 마지막으로 법조인을 꿈꾸는 10·20 청소년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검사의 길과 변호사의 길을 걸을 것 같아요. 특히 집안이 어느 정도 유복해서 돈에 큰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다면 변호사처럼 보람된 직업은 없을 거예요.

감옥에 있는 사람은 변호사가 찾아오면 도망갔던 애인이 돌아온 것보다 더 반갑다고 해요. 개인적 시간도 많이 활용할 수 있어 삶의 질도 보장되는 편이죠. 사람에 대해 긍휼함을 가지고 계신다면 가장 좋은 직업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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