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고립 청년 34만 명…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
보건복지부, 고립·은둔 청년 정책 없어… 실태조사뿐

고립은둔청년. [박정우 기자]
고립은둔청년. [박정우 기자]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불거지며, 관련 대책 마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실태조사 외 어떤 사업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취재를 통해 밝혀냈다. 정부 관련 부처 등의 발표를 종합해보면, 은둔형 청년은 전국에서 약 3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연간 7조 원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통합위)’는 고립 관련 정책을 제안하는 등 전에 없던 움직임을 보이며, 사태의 시급함을 피력했다. 

최근 몇몇 ‘고립·은둔 청년’이 흉악범죄 가해자로 이어지며, 사회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흉악범죄로 신상이 공개된 최윤종과 최원종, 조선 모두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립’이란 타인과 유의미한 교류가 없고, 곤란한 일이 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지체계가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사회적 고립이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여지가 남은 상황. 정부가 적극적으로 ‘고립·은둔 청년’ 혹은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지만, 현재 관련 대책은 미흡한 상황이다.

서울 신림동 성폭행 살인범 최윤종은 무직 상태로 PC방을 전전하며 사실상 은둔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흉기 난동을 벌인 최원종과 조선 또한 상당 기간을 다른 사람과 교류하지 않은 채 홀로 지냈다.

흉악범죄 가해자 세 명에게서 공통으로 ‘은둔형’ 생활이 포착되자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사회를 향한 불만이 해소되지 못한 채 분노가 왜곡돼 표출되면, 범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은둔형 청년 34만 명? 사회적 비용 7조 예상

재단법인 청년재단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은둔형 청년은 약 34만 명이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비용은 연간 7조 원을 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년재단은 이번 연구를 통해 사회적 관계, 사회적 지지체계 등 사회적 자본이 모두 결핍된 청년을 ‘고립청년’으로 정의했다.

그중 외출 없이 제한된 공간에서 단절된 채 살아가는 청년은 ‘은둔형 청년’으로 세분화했다. 청년재단은 사회적 고립이 계속되면 개인적 차원에서 건강이 악화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밝혔다.

이런 비경제활동과 건강 악화는 결근·이직으로 이어져 사회적 비용을 높이고, 관계 단절로 고립이 일상화되면 저출생이 강화되는 등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봤다. 즉, 은둔형 청년이 많아질수록 사회가 감당해야 할 사회·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청년재단이 고립청년을 약 34만 명으로 추산한 것은 2019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집계된 고립청년 비율인 3.1%를 인구총조사에서 나타난 청년인구에 적용한 것이다. 

청년재단이 예상한 소요될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을 살펴보면 ‘경제비용(비경제활동·직무성과 저하·비출산)’이 7조2000억 원으로 가장 컸다. 이어 ‘정책비용(국민기초생활보장·실업급여 등)’이 2000억 원, ‘건강비용(질병·조기사망·작업손실)’이 최소 293억 원(최대 435억 원) 순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지난 1월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서울의 고립·은둔 청년 비율은 4.5%로, 통계청이 밝힌 전국 평균 3.1%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서울시 기준으로는 청년재단의 연구 결과보다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는 의미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난해 10월31일 기준으로 ‘청년정책 기본법’에 따른 청년 연령 기준인 19세부터 34세까지 해당하는 인구 총 1024만 명 기준으로 보면 청년 30명당 1명이 고립된 상태에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청년재단에 따르면 고립청년 비율이 3.1%에서 7%대로 증가할 시 연간 약 16조9000억 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2%로 감소하면, 사회적 비용은 4조8000억 원까지 줄어든다. 

은둔형 청년 탈출 시, 사회적 자본 1인당 2200만 원 아낀다

청년재단은 고립청년을 대상으로 사회서비스 등 지원사업 시행 시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결과가 나온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원사업을 시행해 청년 고립이 해소될 경우 1인당 연간 약 2200만 원의 사회적 비용을 예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에 1인당 300만 원을 쓴다고 가정했을 때 7만 명에게 정책비용 2100억 원이 투자된다. 이 경우 1조5000억 원의 사회적 비용이 절감되고, 18만 명에게 5400억 원을 투자하면, 4조 원이 절감된다고 나타났다.

청년재단은 “청년의 고립 해소를 위해 정책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더 많은 청년을 행복하게 하는 길일뿐 아니라, 미래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투자”라며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할 정책전달체계와 법적근거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은둔형 청년, 직접적 도움은?

지난 7월 전국적으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가 진행됐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에서 개별적·자체적으로 진행되던 고립 청년에 대한 첫 움직임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보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부임 직후 청년정책을 국정과제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청년의 고립·은둔 실태조사;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는 이름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 대상은 19~39세 청년이며, 조사 내용은 고립·은둔 청년의 삶 실태, 복지욕구 등을 파악한다. 

하지만 이밖에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복지정책은 없는 것으로 취재결과 밝혀졌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일요서울 취재진의 ‘고립·은둔 청년을 위해 시행되는 정책은 무엇이 있는가’ 질의에 “현재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만 진행되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재차 ‘지금 시행되는 정책이 있는가’ 질의했으나, “지금 복지부가 예산이 전혀 연구비 이외에는 없어서, 실질적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는 못하다”라고 설명했다. 

방문석 국민통합위원회 위원. [뉴시스]
방문석 국민통합위원회 위원. [뉴시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직접 나서나?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통합위)’가 지난 6일 고립·은둔 인구 규모와 원인, 지속기간 등을 파악하는 주기적 전 국민 실태조사 도입을 제안했다. 통합위는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사회적 고립에서 일상으로’ 정책 제안을 발표했다.

통합위는 “전국적으로 고립 인구 규모가 약 280만 명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라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1년 추정치를 제시했다.

이어 “사회적 고립자는 일반인보다 우울증세나 자살 충동이 약 4배에 달하는 등 정신건강 악화 문제로 연결돼 사회적 비용도 매우 큰 상황이다”라며 “특히 코로나 이후 고립·은둔 청년 등 사회적 고립 문제가 우리 사회 새로운 취약성으로 부각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통합위는 20세 이상은 통계청에서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통해 실시 중인 사회조사를 활용하고, 19세 이하 청소년은 여성가족부에서 실태파악을 위해 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아동·청소년기 조기 발굴 및 종합지원, 청년기 일상 복귀를 위한 단계별 지원, 중장년기 사각지대 발굴 및 사례 관리 지원, 노년기 문화와 여가활동 환경 조성 등 생애주기별 고립 예방 대책 수립도 제안했다.

생애주기와 별도로 고립·은둔자 발굴 및 상담 강화, 종교단체 연계 프로그램 개발, 소규모 회복 모임장소 제공, 고립·은둔 가족 가이드북 제작 등도 제의했다. 이대로 계획이 진행될 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고립·은둔 대응 정책 총괄을 맡아 사회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관리하게 된다. 

김한길 통합위원장은 “사회적 고립·은둔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라며 “국민통합위원회와 정부가 고립·은둔의 진단과 체계적 지원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은둔 생활을 시작하면, 3년 안에 벗어나야 중장기적으로 고립이 심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급히 정부 차원에서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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