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아파트 2년 전 가격이라고?…서민이 갈 곳은 없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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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경기도 군포시에 사는 A씨는 “언론에서 무엇을 근거로 주택가격이 하락했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언론이나 정부가 어떤 기준과 예시로 주택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서민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연일 언론에서 주택 가격 하락이 보도되고 있지만 A씨는 신문이나 방송 등 뉴스 보도에 동의하기가 힘들다. 주택 가격 언급이 나올 때마다 찾아보는 부동산 정보에서 공감할만한 결과를 볼 수 없어서다. A씨가 수년전부터 구입하고 싶어 했던 한강 북쪽에 위치한 중·저가형 아파트의 가격은 여전히 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그 이유다. 

13년 만에 최대 폭 부동산 가격 하락…지방에서는 서울로는 못 간다
고가 주택 기준 하락세 형성돼…중·저가 서민형 아파트 가격 ‘제자리’

지난 15일 언론들은 일제히 “13년 만에 최대 폭의 주택 가격 하락이 있었다”라며 한국부동산원의 조사에 따른 전국의 주택 매매가격을 보도했다. 서울 기준 아파트 가격도 9년 만에 최대의 하락폭을 나타낸 것으로 언론이 다루고 있지만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4년 전만 하더라도 A씨는 서울 관악구 한 오피스텔에 월세로 살고 있었다. 2019년 그는 그간 모아둔 돈과 은행 대출을 끼고 아파트를 구입하고자 서울에서 작은 부담으로 매매가 가능한 아파트를 찾아봤다. 지방에서 올라와 월급쟁이로 일하는 A씨가 매달 대출 금액과 이자를 갚아나가면서도 구입할 수 있을만한 아파트는 그리 많지 않았다. 

미래를 생각해 대출을 갚으면서도 조금씩 저축도 해야 했던 A씨는 처음부터 강남은 제외하고 강북으로 눈을 돌렸다. 서울 시청을 중심으로 볼 때 좌우로 조금씩 멀어질수록 구매 가능성은 높았다. 종로구와 중구를 벗어나 강서구, 서대문구, 은평구, 성북구, 강북구, 노원구 등 점차 눈을 멀리 들어야만 했다.

일부 관악구나 영등포구, 구로구, 동작구 등도 살펴봤지만 마음에 드는 매물은 있어도, A씨가 대출까지 끼고 부담 없이 구매할 만한 매물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2020년 정부가 ‘주택 가격 안정화’를 이유로 주택 정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언론의 비판 세례를 받았고, 야당의 반발도 거셌으나, 정부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A씨는 성북구 돈암동 소재의 4500세대 대규모 아파트인 한신한진아파트 81㎡(약 24평)형 매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2019년 말부터 2020년 초까지 해당 아파트 24평형은 4억 원내외에 거래가 이뤄졌고, 3억 원대 매물도 종종 올라와 A씨는 이를 살폈다. 하지만 3억 원대 매물은 2020년 6월20일을 끝으로 사라졌고, 그 해 11~12월 기준 평균 6억 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각 언론이 서울 아파트 가격이 9년 만에 최대의 하락폭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는 현재는 어떨까. 지난 16일 기준 돈암동 한신한진아파트 24평형은 7억 원에 매물이 올라와 있었다. 한국 부동산원이 밝힌 최근의 매매시세 평균 역시 6억7250만 원이었다. 결국 A씨는 2020년 이후 2년간 주택 구입 자금을 더 모았지만, 서울의 원하는 아파트로 갈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文 전 대통령 사과했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 몫

이렇게 정부마저 예상치 못했던 아파트 가격의 급등에 당시 정부는 온갖 이름과 이유를 달아 추가적인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급기야 임대차3법으로 불리는 임대차 관련법도 가동이 됐다. 하지만 이는 집주인들이 월세로 넘어가는 역효과까지 불러일으키며 세입자들이 오히려 피해를 입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를 두고 “인위적 시장 거래가격에 직접 규제가 들어가면서 수급에 의해 조정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임대차 시장의 불확실성 불안요인을 더 키웠다”라며 “전·월세 가격이 많이 올랐을 뿐 아니라 월세로 많은 전이가 이뤄지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부동산 사태의 시작은 2020년 6.17 부동산 정책이었다. 당시 시장을 잠시 지켜보는 듯했던 정부는 야권이나 현장에서 부작용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7.10 정책을 추가로 내놨다. 임대차 3법은 그 이후에 이어졌고, 이를 포함해 수십 가지의 부동산 정책이 쏟아졌다.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했지만 부동산 가격은 그 반대로 날아올랐다.

2021년에도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일방통행은 여전했다. 자유 시장 경쟁체제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전문가들의 주장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본 원칙이 깨진 뒤 매매 가격이 급등했고, 이는 전세 가격 상승을 불러오고 전세 가격은 다시 월세 가격까지 끌어올리며 서민경제는 무너져갔다. 금융권에서는 사상 최대의 가계대출 규모를 분기별로 경신했다. 

급기야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그간의 주택 가격 상승 등 부동산 시장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폭등한 것’을 두고 사과하며 “정권을 마치기 전까지 정상궤도는 아니라도 제 가격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되돌리겠다”는 다짐을 밝히기도 했다. 

저가형 아파트 가격 ‘그대로’ 하방 경직성의 ‘덫’

그로부터 약 1년에 이르는 동안 정권이 바뀌었고, 부동산 정책에 대한 완화책에 대한 기대도 컸다. 하지만 새로 들어선 정부라도 당장 모든 정책을 되돌리거나 다시 바꿔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를테면 2020년 9월에 아파트를 9억 원 주고 매입한 사람이 정권과 정책이 바뀌고 기본 보유 기간이 지나 매매할 수 있다 하더라도 6~7억 원에 집을 내놓을 리는 만무하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일요서울에 “(전 정권에서) 원칙적으로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억누르기 위해 정책을 내다보니 오히려 관심이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하며 가격이 올랐던 것으로 볼 수 있다”라면서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운 가격 흐름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방경직성으로 인해 가격 하락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라면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고가형 아파트에 비해 중·저가형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지방아파트 가격과도 비교될 수 있는데 현재 기준에서 큰 폭으로 내려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언론에 노출되는 아파트 가격 하락의 예시는 20억 원을 넘어서는 강남권 아파트나 비싼 고가형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27억 원에 달하는 강남의 아파트나 경기도 각 도시의 최고급 아파트는 평균 하락세를 큰 폭으로 내릴 수 있으니, 최근의 ‘주택 가격 하락 2년 전 평균가’ 등의 언급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대기업 연구소에 근무하며 15년째 경남 창원에 거주하는 B씨는 최근 회사로부터 서울 본사로 이전하라는 권고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서울 주택 가격을 확인하고는 포기했다. B씨는 취재진에게 “애들 학교나 생활 여건을 고려해 ‘서울로 갈까’ 잠시 생각해 봤다”라면서 “맞벌이지만 본사 근처도 아닌 서울 변두리 아파트 가격도 감당하기 힘들더라”고 토로했다. 

그가 살고 있는 창원의 고급형 아파트는 34평형으로 2020년 6.17 부동산 정책 시행 전까지는 3억 원대에 거래되다가 정책 시행 이후 4억 원대로 올랐다. 하지만 가장 최근 거래인 지난 2일 거래 매물은 3억9700만 원에 거래됐고 현재 4억2000만~4억5000만 원에 매물이 올라와 있다. 부동산원이 밝힌 매매 시세 평균은 4억2000만 원이다. 

B씨가 2019년에 회사로부터 본사로 이전해 올 것을 권유받았더라면,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이사하는 것은 좀 더 수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 B씨가 가족들과 34평 규모의 서울시 중·저가형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 위해서는 부담이 훨씬 더 큰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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