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남성표 이끈 이준석…‘공천 개혁’ 이슈 띄웠다가 친윤계와 갈등
2030 여성표 끌어온 박지현…‘586 용퇴론’ 꺼냈다가 당내서 뭇매
‘윤리위 징계’로 정치생명 위기 맞은 李…전당대회 출마 불허된 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뉴시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뉴시스]

[일요서울 l 이하은 기자] 지난 20대 대선과 6.1 지방선거에서 각 당을 이끌었던 두 청년 리더들이 나란히 여야에서 내쳐지는 모양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8일 윤리위원회에서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 결정이 내려지며 위기를 맞았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6.1 지방선거 패배로 지도부가 총사퇴한 이후 최근 정치 행보를 재개하며 8.28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으나, 지도부가 자격요건을 문제삼으며 출마 자체가 불허됐다. 두 번의 선거를 치르며 2030 세대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한 두 청년 리더들이 선거 이후 잇따라 당의 결정으로 곤경에 처하면서, 정치권이 청년들을 선거에 ‘쓰고 버렸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정치권에서 청년 정치가 위기를 맞고 있다. 거대 양당의 리더로 활동했던 두 청년 정치인이 연이어 당에 의해 ‘쫓겨나는’ 모습이 연출되면서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이준석 당 대표와 제 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의 리더 자리에 오르게 된 과정은 각자 달랐으나, 젊은 나이의 청년 정치인으로서 선거에서 각 당에 청년 표를 끌어오는 역할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두 청년 정치인이 당에서 밀려나는 흐름이 나타나면서, 여야의 청년 정치도 기로에 서게 됐다.

‘이준석 돌풍’으로 당대표 선출된 이준석…‘이재명 영입’으로 정치 진입한 박지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해 ‘이준석 돌풍’을 일으키며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됐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보수 정당 당수의 자리에 오른 이 대표는 이후 약 1년 간 당을 이끌며 PPAT(공직후보자기초자격시험), 당 대변인을 선발하는 토론배틀 ‘나는 국대다(나는 국민의힘 대변인이다)’ 등을 도입, 보수 정당 특유의 낡은 이미지를 떨쳐내고 젊은 층을 보수 정당으로 유입시켰다.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경우 자신의 힘으로 당수 자리를 차지했던 이준석 대표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는 ‘추적단 불꽃’의 활동가였던 박 전 위원장은 지난 20대 대선 당시 이재명 의원(당시 대선 후보)에 의해 민주당에 영입됐다. 대선 이후에는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의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의 자리에 추대되며 6.1 지방선거까지 약 3개월의 기간 동안 당을 이끌게 된다.

2030 남성·여성 표심 이끈 청년 리더들

각자 다른 경로로 거대 양당의 리더를 맡게 된 두 청년 정치인은 공통적으로 지난 20대 대선 당시 젊은 층의 표심을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준석 대표는 ‘보수’의 이미지를 바꿔 청년 지지층을 형성한 데 이어 대선 시기에는 ‘59초 쇼츠 공약’, ‘SNS 한줄 공약’ 등 젊은 층에 어필하는 선거운동 방식을 주도해 나갔다. 청년층을 공략하는 공약들도 등장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군 장병 월급 200만원’ 등의 공약들은 젠더 이슈나 공정 이슈에 민감한 2030세대 남성층으로부터 특히 환영을 받으며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박지현 전 위원장은 성범죄를 쫓던 활동가 출신으로서 2030세대 여성표를 끌어내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민주당은 박원순‧오거돈 두 명의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 성범죄를 저지르고, 이후 당의 대처도 논란을 일으켰던 탓에 여성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상태였다. 이재명 의원 역시 여배우 스캔들과 형수 욕설 논란 등으로 여성층 표는 좀처럼 가져오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위원장의 영입은 여성층이 민주당을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하며 2030세대 여성 표심을 끌어오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대선 당시부터 누적된 李-친윤 갈등 ‘재점화’…李 윤리위 중징계로 ‘강제 종료’

선거에서 청년 표심을 끌어모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두 청년 정치인은 그러나 기성 정치권의 민감한 문제들을 건드리며 당의 구성원들과 삐걱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준석 대표는 대선 과정에서 선거 조직 구성과 선거운동 방식, 논란 대처 방식 등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당시 대선 후보)와 그 측근들과 수차례 충돌했다.

내홍 끝에 선거 조직 개편과 선거운동 방식 변화가 이루어지고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갈등은 수면 아래로 내려앉았으나, 그 앙금은 완전히 사라지지 못했다.

양측 사이의 갈등은 6.1 지방선거 이후 재점화됐다. 두 번의 선거를 승리한 이후 2년 후 총선까지는 큰 선거가 없는 상황에서, 선거 승리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억눌러져 있던 갈등이 다시 떠오르며 당내 권력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이 대표가 6.1 지방선거 직후 띄운 혁신위원회가 불씨가 됐다. 이 대표가 혁신위에서 공천 시스템 개편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이 총선 공천에 민감한 국회의원들을 자극한 것이다.

2년 후 총선 공천권을 쥐게 될 차기 당권을 노리는 친윤(친윤석열)계의 견제 움직임은 특히나 거셌다. 친윤계 중진인 정진석 의원은 혁신위를 저격했다가 이 대표와 설전을 벌였다. 배현진 의원은 혁신위에 대해 “이 대표의 자잘한 사조직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가 이 대표와 충돌을 빚었다.

여당의 내홍은 지난 8일 윤리위원회가 이 대표에 대해 ‘증거인멸교사의혹’ 관련 품위유지위반 사유로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결정하고, 이에 따라 이 대표의 당대표 직무 수행이 어려워지면서 반강제적으로 종료됐다. 이 대표는 윤리위의 결정으로 대표직 유지가 불투명해지며 정치 생명에도 위기를 맞게 됐다. 정치권에서는 윤리위가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징계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친윤계와의 갈등이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나타났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野 지도부 갈등의 중심에 선 朴…새 비대위는 朴 전당대회 출마 불허

박지현 전 위원장은 초반에는 당으로부터 환영을 받았으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등의 문제에서 당의 주류와 다른 입장을 보이고, 당내 문제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며 당과 엇갈리기 시작했다. 특히 성비위 문제에 대해 엄정 대처를 강조하며 ‘성희롱 논란’을 일으킨 최강욱 의원의 징계를 강하게 주장했다가 지지층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다. 그가 ‘팬덤 정치’를 강하게 비판한 것 역시 이재명 의원의 지지자들인 ‘개딸’들과 지지층의 눈치를 살피는 당내 인사들의 반발을 불렀다.

특히 6.1 지방선거 당시 선거일을 코앞에 두고 박 위원장이 돌연 대국민 사과에 나서고, 여기서 그가 ‘586 용퇴론’을 꺼내들며 당내 갈등은 정점을 찍었다. 당 지도부가 모인 합동회의에서는 지도부 간 고성이 오갔고, 당시 공동비대위원장이던 윤호중 의원은 박 위원장의 주장에 거듭 선을 그으며 그와 엇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6.1 지방선거 참패로 민주당 지도부가 총사퇴하며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났던 박 전 위원장은 최근 정치 활동을 재개하며 8.28 전당대회에서의 당권 도전을 선언했으나, 새롭게 들어선 비대위와 당무위원회에서는 그의 입당 시기를 문제삼아 출마 자격이 없다며 불허 결정을 내렸다.

‘청년 표’는 환영, ‘청년 목소리’는 외면하는 與野

양당이 선거에서 젊은 층 표심을 이끈 두 리더를 밀어내는 모양새가 되면서, 정치권 안팎에서 비판적인 여론이 나타나고 있다.

두 청년 정치인은 모두 메시지 전달 방식 등과 관련해 당내의 불만 어린 시선을 마주해야 했다. 거침없고 직설적인 그들의 표현 방식이 기성 정치권에서는 불편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특히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으로 당내 문제를 지적하면서, 두 청년 정치인은 당 구성원들로부터 감당 못할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야 했다.

청년 정치인 특유의 패기와 열정을 원하면서도 그들의 방식에는 불만족스러워하며 수용하지 못하는 모습에, 정치권이 청년층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거나 그 방식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지지만을 원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두 사람이 당내 문제를 지적했다가 반발에 부딪히고, 사지로 내몰리고 있는 점도 여러 추측을 낳는다. 이 대표의 경우 친윤계 인사들과 충돌하고 ‘공천 문제’를 건드린 것이 화근이 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박 전 위원장의 경우 지지층의 요구에 반하고 당의 주류인 ‘586(50대, 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 세대’의 퇴진론을 꺼내든 것이 당의 외면을 받은 것이라는 평가가 나타난다. 결국 당내의 ‘불편한’ 문제를 건드린 것이 두 청년 정치인을 몰아내려는 움직임의 원인이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젊은 세대의 지지를 끌어올 때는 환영하다가, 청년들의 방식을 들이밀거나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을 때는 외면하는 행태에, 여야가 청년 정치인들을 선거 시즌 지지를 끌어올 때만 장식품처럼 세워두고 선거가 끝나니 내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뉴시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뉴시스]

위기 맞고도 꺾이지 않는 李·朴…‘청년 정치’ 지속 가능할까

여전히, 두 청년 정치인의 ‘토사구팽’이 청년 정치의 종식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 대표는 윤리위의 징계에도 불구하고 당 대표의 자리에서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징계 결정 이후 그는 광주를 찾아 무등산에 오른 모습을 SNS에 올리며 자신이 추진해 온 ‘서진 정책’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징계에 대한 2030세대의 반발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이 대표는 당원 가입을 촉구하는 SNS 글을 올리며 ‘우군 모집’에 나서고 있다. 이에 이 대표를 지지하는 청년층이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정치를 외면하는 대신 당에서 버티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타난다. 2030 제대의 움직임이 차기 당권 구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이번 사태가 오히려 청년층이 더욱 적극적으로 당 문제에 나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은 민주당 지도부의 출마 불허 결정에도 굴하지 않고 당권 도전 강행을 선언했다. 그는 SNS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을 영입했던 이재명 의원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당의 주요 인사들과 회동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이며 정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또 민주당 내에선 86그룹(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과 친문(친문재인)계 의원들이 97그룹(1990년대 학번, 1970년대생)에 길을 터주며 차기 당권을 두고 친명(친이재명)계와 97그룹이 맞붙는 대결 구도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당내 세대교체 가능성이 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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