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경유 2000원 시대…“유류세 인하 못 느껴”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중에도 GS와 SK에너지 및 에쓰오일 등 정유사들의 정제마진에 따른 역대급 실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창환 기자]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중에도 GS와 SK에너지 및 에쓰오일 등 정유사들의 정제마진에 따른 역대급 실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직접 운전해서 출퇴근하는 직장인에게 요즘처럼 차타는 일이 힘 빠지는 일이 됐던 경우도 있었을까. 경유와 휘발유 가격의 역전 현상은 그렇다 쳐도 정말 상상을 넘어서는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은 코로나19를 겨우 벗어날 길목에 서있는 서민들이 다시 한 번 울상 짓게 만드는 일이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를 지속하고, 7월말로 종료하기로 했던 유가 보조금 지급을 9월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실제 주유소를 방문해 차량 연료를 채우는 경우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한국석유공사는 실제 지난 4월 휘발유 소비량이 전년 동월 대비 21%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정제 마진 확대에 대한 기대 심리로 국내 정유사들을 중심으로 주가가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어 정유사들은 울고 웃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게 됐다는 풀이가 나온다. 

고유가 시대 진입…경유 가격 10년 내 최고가 및 휘발유 사상 최고가
GS와 SK에너지, S오일 등 정유사 역대급 정제마진 기대 주가 상승세

정부가 지난해 11월부터 이어오던 유류세 인하의 폭을 추가 확대 하는 등 서민 경제 안정과 소비심리 위축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큰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유류세 20% 인하 정책을 시행하다 올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국제유가가 치솟자 인하폭을 확대해 유류세 30% 인하를 시행하고 있지만 서민들의 석유제품 사용량은 날마다 줄어들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이 밝히고 있는 지난 2년간 국제유가 상승 상황을 확인해보면 상상이 힘들 정도다. 2020년 6월 첫째 주 국제유가 경유가격은 배럴당 43.25달러를 나타내고 있었다. 올해 1주차의 국제유가 경유가격이 배럴당 165.07달러 인 것과 비교하면 눈으로도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무려 3.8배나 상승한 가격이다. 

휘발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0년 6월 1주차의 국제유가 휘발유 가격은 배럴당 42.14달러였다. 하지만 2년이 흐른 올해 6월 휘발유 가격은 무려 154.29달러에 이른다. 이 역시 지난 2년간 무려 3.6배가 넘는 상승세다. 

2년 전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의 영향력이 가장 확대되던 시기로 전년대비 20~30%의 하락을 보이고 있었으나, 이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국제유가는 단순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역시 경유 가격의 휘발유 가격 추월이다. 국제유가는 그간 휘발유가 경유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도 거의 비슷한 가격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산 경유와 천연가스 등이 유럽으로 들어가지 못하면서 유류 시장이 혼돈을 겪기 시작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러시아산 경유를 지속 사용하겠다는 뜻을 비추기도 했으나, 미국을 중심으로 러시아 경제 제재에 나서면서 이마저도 힘들어진 상황. 

[이창환 기자]
[이창환 기자]

마음 다급해진 새 정부, 정유사에 협조 요청까지

정부에서는 국제유가 고공행진이 주춤한 틈을 타 정유사에 가격 선반영 요청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민생안정을 위한 석유시장 점검회의’를 열어 국내 유통되는 휘발유 경유 가격의 안정을 위해 정유사들이 나서서 국제유가 하락분 반영을 선조치 해줄 것을 당부했다.

통상적으로 2주에서 4주 정도의 간격을 두고 국제유가가 국내 석유제품 유통 가격에 반영되지만 국제유가가 잠시 상승세를 멈추고 하락하자 정부가 정유사에 협조를 요청한 것. 하지만 이는 잠깐의 해프닝처럼 끝났다. 미국과 영국이 지난달 31일을 기점으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 전면 금지를 선언했기 때문. 

외신들은 국제유가 휘발유 가격이 1995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인 배럴당 151.13달러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산업부가 개최한 ‘민생안전 점검회의’의 이름이 무색한 상황이 됐다. 국제유가 흐름에 오히려 유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서민들이다. 

석유공사는 지난해 12월 유류 소비량 집계가 시작된 1997년 이래 25년 만에 가장 높은 소비량을 보인 휘발유 소비량이 급감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812.2만 배럴에 비해 지난 4월은 563.9만 배럴로 사용량이 4개월 만에 무려 30% 줄었다.  

정부 대책보다 한걸음 앞서 나가는 소비심리

유가가 폭등하고 소비량은 4개월 만에 30%나 급감했으나 서민들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실제로도 코로나19의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등 방역조치 완화에 따른 소비심리는 살아나는 분위기다. 시간제한이나 인원제한이 풀리고 5월 가정의 달을 맞는 등 사회적 분위기가 ‘못 다 했던 모임’에 대한 보상을 요하는 선물 소비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G마켓과 옥션 등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쇼핑 계획에 대한 설문을 진행했다. 지난달 소비자들은 대체로 소비가 늘었다고 체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5320명 가운데 51%가 5월 쇼핑을 위한 지출액 변화에 대해 ‘늘었다’고 답했고, 26%가 ‘크게 늘었다’고 답했다. 78%, 10명 중 8명이 5월 중 ‘소비가 늘고 있다’고 밝힌 셈이다. 

이런 소비 확대에 대한 이유로는 ‘모임 확대에 따른 지인 선물’이 40%로 가장 많았고, ‘집콕을 이겨낸 보상’이 20%, ‘일상회복에 기분 좋아서’가 17%, ‘힘들었던 소상공인 돈쭐로 응원’이 3% 등으로 뒤를 이었다. 

국제유가 고공행진에 정유사에 몰리는 투자자

이런 가운데 투자자들이 유례없는 정제마진을 기대하며 정유사로 몰리고 있다. 업계에서도 역대급 정제마진을 예측하고 있다. 이미 1분기 실적에서도 정제마진을 중심으로 정유사들이 호실적을 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GS는 자회사 GS칼텍스 호실적에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1.2조 원을 넘어서면서 실적 개선을 이뤄냈다. GS칼텍스 자체만으로도 1조800억 원의 분기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SK에너지 역시 석유 사업에서만 1.5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 실현해, 최근 3000억 원 모집을 계획했던 공모채에 1조 원이 넘는 투자금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에쓰오일은 지난 1분기 1조3320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분기 기준 최대치를 경신했다. 덩달아 S&P 국제 신용등급이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상향 조정되는 쾌거까지 이뤄냈다. 

오르는 고유가에 정부는 대책이 없고, 소비자는 소비량을 최저로 줄이는 가운데 정유사들은 배를 불리고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유사들의 정제마진을 통한 수익 확대가 지속될지 여부는 불분명하다고 봤다. 코로나19 방역조치 해제 이후 일상 회복에 따른 소비심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고 물가 고공행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역시 5월 이후 물가상승률은 지속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는 가운데 현대경제연구원은 “글로벌 시장 불확실성에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스태그플레이션 또는 슬로우플레이션 우려가 높은 가운데 경제성장률 제고와 물가 안정’ 이라는 두 마리 토끼 중 어느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국제유가가 지칠 기색 없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유사는 2분기에도 정제마진 극대화로 역대급 실적이 예상된다. 다만 하반기 들어 고유가로 급감이 예정된 유류 소비량 앞에서 언제까지 웃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정부보다 똑똑한 소비자들의 고유가 앞 소비 방향 전환에 정유사들이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이미 휘발유과 경유 가격의 역전 현상은 흔한 일이 됐다. [이창환 기자]
이미 휘발유과 경유 가격의 역전 현상은 흔한 일이 됐다. [이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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