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상무위원회 모습. [뉴시스]
정의당 상무위원회 모습. [뉴시스]

- 국힘-민주 양강 구도 속 좁아진 정의당 입지…‘반토막 지지율’ 결과로
- ‘소수정당 정체성 상실’ 지적받던 정의당…대선 완주로 ‘정체성 지켰다’ 자평
- 선거비용 등 난관 여전…갑질 의혹 제기로 다시 혼란 속으로

[일요서울 l 이하은 기자] 대선에서 저조한 성적을 받아든 정의당이 고심에 빠진 모습이다. 정의당은 이번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가 2%대 초반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지난 19대 대선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이번 대선이 막판까지 양강 접전 구도가 이어지며 두 후보로 표가 결집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가운데, 정의당이 소수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간 점도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당의 핵심 어젠다부터 선거 전략까지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보전받지 못한 선거비용 등 현실적인 문제도 정의당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런 와중에 청년정의당 대표가 갑질 의혹에 휩싸이는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정의당의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20대 대선에서, 심상정 전 정의당 대선 후보는 2.3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지난 19대 대선 당시 얻었던 6.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충격적인 대선 성적에, 정의당 역시 당혹감과 위기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정의당의 고전은 대선 중반부부터 그 징조가 드러났다. 지난 1월 중순부터 심 후보의 지지율은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3%대로 내려앉았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한동안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보다도 낮은 지지율이 나타나며 온라인 상에서는 ‘허밑심(허경영 밑 심상정)’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에 심 후보가 돌연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잠적했다 5일만에 복귀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당시 심 후보는 과거 정의당의 행보를 성찰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것을 약속했으나, 지지율에 있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지는 못했다.

심 후보는 선거 이후 개표가 한창이던 지난 10일 자정을 약간 넘긴 시각에 일찌감치 입장 발표를 하며 패배를 승복했다. 그는 “저조한 성적표가 솔직히 아쉽지만, 저와 정의당에 대한 국민의 평가인만큼 겸허히 받들겠다”고 했다. 이어 “이미 각오를 하고 시작한 선거였다. 지지율이나 유불리에 연연하지 않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 정의당의 역할에 대해 소신과 책임을 갖고 말씀드렸다”며 “그 가치를 바탕으로 정의당 다시 뛰겠다”고 했다.

심상정 전 정의당 대선 후보. [뉴시스]
심상정 전 정의당 대선 후보. [뉴시스]

尹-李 박빙 지지율 주요 이유…방향 수정 필요성 대두

정의당이 지난 대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낮은 득표율을 보인 데는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후보 간 양강 박빙 구도가 대선 막판까지 유지됐던 상황이 핵심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던 19대 대선 당시와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개표 후반까지도 아슬아슬한 접전이 이어졌다. 양당의 후보는 불과 0.7%라는 역대 최소 표차로 승패가 갈렸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정의당을 찍었던 범여권 지지층이 이번에는 정의당 대신 민주당 후보에 표를 몰아주는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정의당이 ‘페미니즘’을 자처하면서 집중 공략했던 여성계 표심이 정의당을 이탈해 이 후보에 몰린 점이 치명타로 지목된다. 이 후보가 선거 막판 ‘여시 인증’ 등을 통해 여성계 표심 공략에 나서고, n번방 추적단 불꽃 활동가 박지현 씨가 이 후보 측에 합류하면서, 여성층의 표심이 이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의 핵심 어젠다를 ‘친여성’으로 잡아 가면서까지 오랜 기간 여성계에 공을 들였던 정의당으로서는 뼈아픈 결과라 할 수 있다. 

정의당의 여성계 공략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서, 당의 주요 방향성과 전략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 역시 제기되고 있다. 확장성과 대중성이 강한 노동 이슈보다도 성별 이슈에 치중해 온 정의당의 전략이 세력 축소의 한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정치권 일각에는 존재한다.

지난 대선 이후, 21대 총선을 거치며 정의당이 소수정당으로서의 가치와 색채가 약해졌다는 평을 받는 점도 당이 위기에 몰린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정의당은 염원하던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법 통과를 맞바꾸는 민주당과의 거래로 세력 확대를 꿈꿨다. 그러나 민주당이 선거 직전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며 정의당의 ‘뒷통수’를 치면서, 정의당은 개정된 선거법의 성과를 보지 못하고 명분만 잃어버리는 결과를 맞이했다.

민주당과의 협력 기조 속에 조국 사태에도 침묵하면서, ‘민주당 2중대’라는 비아냥 섞인 별명마저 붙었다. 거대 여당에 붙어 이득을 보려는 모습으로, 소수정당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 때문인지 정의당은 이번 대선에서 이 후보 측이 선거 막바지에 ‘정치개혁’을 내세우며 회유를 거듭하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완주했다. 이에 이 후보가 선거에서 패한 직후 정의당에 책임을 묻는 민주당 지지층의 목소리가 나타나기도 했다.

정의당은 선거 결과에 아쉬워하면서도, 소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켰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지난 11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지난번에 조국 사태 때부터 최고로 듣기 싫은 소리가 2중대 소리”라고 언급했다. 

향후 당의 진로에 대해서는 “당대표로 올라와서 당의 독자적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에 주력해왔다”며 “이제 정의당이 진보 정당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독자적으로 분명하게 더 채워나가야 한다. 아직은 부족하다”고 했다.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 [뉴시스]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 [뉴시스]

현실 문제도 산적한데…‘갑질 논란’ 발생으로 이미지에도 타격

여 대표의 의미 부여와 방향 설정에도, 정의당이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들은 여전하다. 그간 여러 선거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톡톡히 했던 정의당은 이번 대선에서 지지율이 2%대로 내려앉으며 존재감과 입지가 위태로워졌다. 또 선거비용 보전을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선거를 치르며 생긴 막대한 비용이 빚으로 남게 된 문제도 존재한다. 

저조한 대선 성적과 이어지는 현실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또 하나의 악재가 불거지며 당이 또다시 흔들리고 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에 대한 ‘갑질 의혹’이 당내 폭로를 통해 제기된 것. 강 대표는 책임을 통감한다며 즉각 대표직에서 사퇴했으나, ‘친노동’을 내세워 온 정의당으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했다. 대외적인 비판에 내부적인 충격까지 더해지면서, 대선 패배 이후 충격을 수습해 가던 정의당은 당분간 혼란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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