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이란 녀석 어때?”
느닷없는 그 말에 아란은 얼굴색이 변할 만큼 놀랐다.
“뭐, 뭐가요.”
놀란 나머지 숨을 크게 들이쉬느라 탐스러운 가슴이 출렁거렸다. 난승도사는 부드럽게 손을 가져가 유두를 살그머니 쓰다듬었다. 아란은 견디기 어려워 몸을 비비꼬았다.
“마술에 대한 전망 말이지.”

난승도사는 그녀가 쾌락을 다 흡수해 내지 못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말했다.
“그, 그건 또 무슨 말씀이에요?”
숨이 탁탁 끊어지는 것을 느끼며 아란이 안간힘을 쓰며 물었다.
“아무 재주도 없는 친구를 이런 불경기에 계속 둘 수는 없단말야. 자기 밥값은 해야 되는데 그치는 영 노력하는 태가 안보여.”

어쩌면 이것이 잘 된 일인지도 몰라. 아란은 속으로 열심히 계산을 해보았다.
두 남자를 한 집 안에서 상대하고 있다는 것은 비도덕적인 일일 뿐만 아니라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남의 눈도 많았고 그러나 형준이 이곳을 떠나면 무엇을 그가 할 수 있을런지를  잘 알 수가 없었다.

현덕의 말에 따르면 옛날에도 형준처럼 재주가 없어서 내보내게 되었는데, 훗날 다시 돌아와 제발 관객 역할이라도 맡겨 달라고 사정한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형준 역시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박 선배도 열심히 하는 눈치예요.”
아란은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내뱉았다.
“그래? 그렇다면 좀더 두고 봐야겠군.”

난승도사의 말에 아란은 부르르 몸을 떨고는 안심하고 쾌락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내려오자마자 형준을 찾았다.
“어, 웬일이야?”
형준은 반갑게 아란을 맞았다. 뻔히 어디 다녀오는지 알면서 질투심도 일으키지 않았다. 물론 그쪽이 아란에게도 편했다.

“당신이 재주가 없다고 쫓아낼 궁리를 하고 있어요.”
아란은 한숨 돌리며 말했다.
“누가?”
“누군 누구예요? 스승님이 뻔하잖아요?”
뻔한 사실을 질문하는 형준이 너무 답답했다. 지나치게 꼼꼼한 것인지, 정말 멍청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사실 공밥을 축내는 거나 다름없으니.....”
형준은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했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공밥을 축내긴 무슨 공밥을 축낸다고 그래요?”
아란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게 사실이니까.”
형준이 시큰둥해졌다.

“그렇게 말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 봐요. 뭔가 할 게 있을거예요. 형준 씨 잘하는 걸 생각해 봐요. 나도 생각을 해볼 테니까.”
아란이 그를 토닥거렸다. 등 뒤로부터 다가가 그를 안았다. 그 순간 번개 같은 영감이 스쳐 지나갔다.

“할 게 있어요!”
아란이 소리를 쳤다.
“픽 포켓(Pick-pocket) 쇼는 할 수 있어요.”
“픽 포켓?"
형준이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예, 픽 포켓 쇼요. 남의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을 알아내기예요. 형준 씨 손놀림이 빨라 정말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아란은 순식간에 기분이 들떠서 형준을 꼭 안았다. 형준이 고개를 돌려 아란의 입술을 찾았고 둘은 달디단 긴 키스를 하였다.
그 이후로 형준은 픽 포켓 쇼를 담당하게 되었고 상당한 실력으로 사람들을 경탄하게 하였다. 특히 희수가 섭외해 놓은 사람들은 어쩌다 쓸 뿐이고, 그는 실제 무대에서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만큼의 박진감이 그곳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형준이라는 사람 자체가 야심이 있다든가 해서 무대를 멋지게 연출해 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그 첫번째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가치를 인정받음으로써 형준의 지위는 굳어질 수 있었고 난승도사 밑에서 안정된 생활의 기틀이 구축되어졌다.

아란은 피곤한 몸을 일으켰다. 샤워라도 해서 찌뿌드한 기운을 몰아내지 않으면 오늘 공연에 지장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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