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제8호 헌법(유신헌법) 59조는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9호 헌법(5공화국 헌법) 57조제1항 역시 대통령은 국가의 안정 또는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할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국회의장의 자문 및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친 후 그 사유를 명시하여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 다만, 국회가 구성된 후 1년 이내에는 해산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국회는 딱 세 번 해산되었는데, 19615.16 군사혁명, 1972년의 10월 유신, 19805.17 내란에 따른 신군부의 헌법 개정에 의한 것이다. 모두 쿠데타나 독재 정부 등 타의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한 사례다. 의외로 프랑스의 의회 해산 사례도 다섯차례나 된다. 드골 대통령이 1962년과 1968년으로 두 번, 미테랑 전 대통령도 초선과 재선이던 1981년과 1988년 의회를 해산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1997년 자크 시라크가 대통령이 당선 2년 만에 의회를 해산했었다.

현재의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권만 있고, 대통령에 의한 국회해산권은 없다. 의회와 정부의 균형추가 무너져 있는 셈이다. 이러니 다수당에 의한 횡포가 도를 넘고 툭하면 탄핵운운한다. 근본적으로는 입법 권력을 남용하는 국회의 낮은 수준이 문제겠지만, 이런 행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을 헌법 개정을 통해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회 독단, 세부적으로는 다수당의 폭력적 행태를 견제하는 수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현재의 대통령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승자독식 구조가 진영간 대결 정치를 조장하는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윤석열과 이재명의 2022년 대선 득표율 차이는 고작 0.73%였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차관급 자리만 2천여 개에 이른다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총선과 지방선거도 만만치 않다. 이번 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총 득표율 차이는 고작 5.4% 포인트다. 국민의 절반은 더불어민주당에 표를 던졌고, 그보다 조금 못 미치는 약 45%의 국민은 국민의힘을 뽑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역구 의석수는 71석이나 차이가 났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자가 지방 공공기관장 자리를 떡 나눠주듯 하는 사례도 이재명의 경기도에서 충분히 확인된 바 있다. 선거결과에 담긴 민심과 달리, 선거결과로 권한과 권력이 극명하게 갈리는 비상식적 구도다.

그래서 차라리 의원내각제를 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적어도 의원내각제는 행정부와 의회가 서로 견제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회가 정부를 불신임하면 정부가 해체되고, 정부 수반인 총리가 의회를 해산할 수도 있다. 결국 새로운 선거를 통해 새로운 권력구조가 형성된다. 국민의 의지대로 정부와 의회를 새로 만드는 것이다. 스위스, 대만, 독일, 싱가포르, 헝가리 같은 나라들이 의원내각제를 하지만, 이들이 우리보다 못한 정치시스템을 가졌다고 할 수 있나. 오히려 그 반대로 보는 시각이 더 많다.

우리의 경우 유독 다수당에 의한 횡포가 심한 나라로 볼 수 있다. 과거 조선시대의 당쟁(黨爭)에서 비롯된 사화(士禍) 역시 극단적 배척과 대결의 정치가 낳은 비극적 산물이다. 숱한 인재들이 정적(政敵)들에 의해 하루아침에 불귀의 객이 됐다. 이러니 나라 꼴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가 과거의 그것과 다르다고 볼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식의 자기파괴적 정치로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핵이 공포의 균형으로 다툼을 막는 수단으로 작용하듯, 행정부와 의회가 서로 자신들의 생존을 걱정하는 균형추라도 만들자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국회는 한번 뽑으면 4년 동안 아무 견제도 받지 않고 그대로 간다. 법 같지도 않은 법을 남발하며 3권분립이라는 헌법 체계를 대놓고 부정한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국회 운영의 오래된 관행들을 깡그리 부정한다. 그런데 4년 동안 이렇게 분탕질을 쳐도 말릴 방법이 없다는게 말이 되는가. 만약 저질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의 다수를 차지할 경우 국민은 꼼짝없이 오물통이 뱉어내는 결과물을 4년 내내 수용해야만 하는 꼴이 된다. 대통령의 의회해산권 부활과 더불어 국민에 의한 국회의원 소환제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자치단체장의 주민소환제를 운영하면서, 국회만 예외란 사실이 부끄럽지도 않나. 의원내각제를 도입하건, 대통령의 의회해산권을 부활하든, 국회의원 소환제를 하든, 탈선이 예정된 폭주기관차를 이제 국민의 이름으로 멈춰 세울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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