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가 된 대한민국, 민간인 18만 명 모금한 돈으로 변호인 선임?

법무부와 국방부가 대응하고 있는 베트남전 당시 우리 국군의 '양민학살'을 주장하는 국가소송에, 관계행정청으로 포함되지 않은 보훈부 산하 단체인 월남전참전자회가 법무부에 변호인을 지원하고 비용까지 지급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미 해당 단체는 보훈부 내부 감사를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이창환 기자]
법무부와 국방부가 대응하고 있는 베트남전 당시 우리 국군의 '양민학살'을 주장하는 국가소송에, 관계행정청으로 포함되지 않은 보훈부 산하 단체인 월남전참전자회가 법무부에 변호인을 지원하고 비용까지 지급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미 해당 단체는 보훈부 내부 감사를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법무부와 국방부가 대응해야 할 소송에 외부 단체가 지원한 변호인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 및 그 시행령에 따르면 법무부와 국방부의 소속 직원 및 검사, 공익법무관 등이 대한민국의 수행자로서 소송에 임하도록 돼 있다. 문제는 변호인 지원에 나선 단체가 관련법에 기재된 관계행정청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 특히 이 과정에서 변호인 선임 비용을 해당 단체가 18만 회원으로부터 모금해 지출한 것으로 확인돼 법무부가 소송대리인단을 어떻게 꾸려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가소송법 상 법무부·국방부 등 정부부처 외엔 수행 자격 無
법무부, 월남전참전자회 추천 변호인 3명 소송 수행자로 지정

대한민국이 소송을 당했다. 과연 누가 이 소송에 당사자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 이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소송법)’ 또는 그 시행령에 명확히 하고 있다. 바로 법무부의 직원, 검사, 공익법무관 등이며 해당 소송과 관련 있는 관계행정청이 그 당사자가 될 수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부터 베트남전에 참전한 우리 국군의 양민학살을 주장하는 베트남인의 소송에 대응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국가소송’ 관련법을 토대로 협조하고 있는 관계행정청은 국방부다. 즉 법무부와 국방부 소속 직원들이 대한민국의 수행자다.

본지는 법무부와 국방부 외에 보훈부나 그 산하 단체인 월남전참전자회 등이 법적 대응 자격이 있는지 법무부에 물었다. 앞서 월남전참전자회(참전자회)가 보훈부에 ‘양민학살’ 음해소송 대응 이라는 제목으로 업무보고를 한 바 있어서다. 

이와 관련 법무부는 지난 5월10일 취재진에게 “2심 진행 중인 베트남전쟁 관련 국가소송의 경우, 정부에서 법무부와 국방부 소속 직원들이 대한민국의 수행자로 지정돼 소송을 수행하고 있다”라면서 “국가소송 수행에 있어 필요한 경우 법령에 따라 보훈부 등 관계행정청의 협조를 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참전자회가 법무부에 소송대리인 지원?

지난해 법무부와 국방부가 1심에서 패소하자 참전자회는 소속 회원 18만 명으로부터 ‘양민학살’ 음해소송에 대한 대응에 나서겠다며, 변호임 선임을 위한 모금을 진행했다. 참전자회는 법률자문계약 및 법무법인의 소송 대리인 지정을 통해 2심 지원에 나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국가소송법 및 시행령 어디에도 참전자회 등 외부 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해석되는 곳은 없다. 심지어 참전자회는 타부처(보훈부) 산하 단체다. 법무부 답변에서도 언급된 바 없다. 즉 국가소송법상 참전자회는 어떤 자격도 없다.

그런데도 지난해 7월 참전자회는 소송대리인 지정 여부 확인 절차 진행 중이라고 업무 보고를 올렸다. 3개의 법무법인으로부터 각 1인씩 총 3인에 대해 자문이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최종 6000만 원의 자문 계약 및 비용 지급이 보고됐다.

문제는 변호사 선임, 즉 소송대리인(변호인) 선임 자격이 참전자회에 없는 데다, 이를 18만 명 회원으로부터 모금했다는 데 있다. 이런 중에 자문을 진행한 3인의 변호인이 실제로 법무부 대응 소송에 동참한 것으로 보이는 근거가 드러났다. 

보훈부는 지난 5월14일 해당 소송 관련 “국가보훈부는 ‘정부조직법’ 제2조제2항 및 제35조에 따른 중앙행정기관으로, 법무부장관이 해당 사건을 국가보훈부의 소관사무나 감독사무라고 판단하는 경우 보훈부 소속 직원을 소송수행자로 지정해 소송을 대응하게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즉 보훈부는 국가소송법상 행정청에 속하므로, 법무부가 관계행정청으로 판단해 참여를 요청하면 해당 소송 관련 당사자 또는 대한민국의 수행자 자격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참전자회는 국가소송법 상 그 어떤 요건도 만족시킬 수 없다. 

이에 대해 보훈부는 “원고(응우옌 티탄, 64세)는 대한민국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므로 참전자회가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법원에 참가신청 후 허가를 받아야 한다”라며 “참전자회의 대응 권한 존부는 법원 판단 사안”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세 가지 문제제기, 법무부와 참전자회의 관계는?

첫째, 법무부는 보훈부에 소송수행자로 합류를 요청했나. 법무부는 보훈부에 관련행정청 및 소송수행자로 합류를 요청한 바 없다. 법무부는 답변에서 소송수행자가 법무부와 국방부임을 명확히 했다. 보훈부도 행정청으로서 법무부가 협조를 요청할 수는 있으나, 그 협조 대상은 국방부에 한해서 이뤄졌다.

둘째, 보훈부가 소송에 합류했나. 참전자회는 보훈부 요청에 변호사비 모금했나. 보훈부가 합류하지 않았다는 양 부처의 답변은 나왔다. 또 변호사비 모금은 보훈부 요청도 아니다. 보훈부는 “변호사비 모금은 단체 자율로 결정한 회원 성금”이라며 “보훈부 보고 또는 승인사항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월남전참전자회 변호사비 모금 및 지급(6000만 원)과 관련해 민원이 제기돼 그간의 경위를 공유받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셋째, 참전자회는 법원에 소송 참가신청을 했나. 지난 5월31일 참전자회 관계자에 따르면 참전자회는 소송 참가신청을 한 바 없다. 지난해 1심 패소 후 취재진이 직접 만난 참전자회 회장단은 2심 참여 관련 질의에 “참가 자격은 없으나, 양민학살 아니라는 근거는 찾을 수 있다”라며 “당시 소속 부대원을 수소문하는 중”이라고 답했다.

법무부 소송대리인 추천은 참전자회, 비용은 18만 회원이?

더욱이 보훈부가 관계행정청으로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산하 단체 스스로 법원에 소송참가를 신청하는 것도 조심스러울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참전자회가 법무부에 변호인 지원을 한 정황이 확인됐다. 참전자회의 변호인 지원 과정 파악도 중요하지만, 해당 소송에 참전자회가 변호인 비용 지급 여부 역시 중요하다. 

이는 보훈부가 참전자회 내부 감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보훈부는 “월남전 민간인피해 국가배상소송은 피고가 대한민국으로, 국방부에서 소송을 수행하고 있다”라면서 “참전자회와 법무부가 협의해 참전자회에서 추천한 변호사 3명을 소송수행자로 지정하고 이에 따라 변호사 자문료를 지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와 국방부가 대한민국 수행자로 대응하고 있는 국가소송에 참전자회가 전우라 부르는 회원 18만 명으로부터 성금을 모금해 변호인 비용을 냈으며, 법무부는 이를 참전자회와 협의해 해당 변호인 3명을 국가소송 수행자로 참여시켰다는 말이다.

참전자회 내부에서는 변호인 선임 비용 2억 원이 모금됐고, 6000만 원 지출은 보고 내용이 있으나, 나머지 비용을 포함한 회계보고는 이뤄지지 않아 고소·고발조치됐다. 이런 내용으로 내부자 제보가 보훈부에 전달돼 감사가 진행됐고, 수사기관의 수사도 진행 중이다. 법무부는 참전자회가 추천한 변호인 비용을 참전자회 회원 18만 명의 성금으로 모금된 사실을 알고도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했을까.

다만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해당 변호사 3명은 법령과 절차에 따라 국가 예산으로 선임된 소송대리인이고, 월남전참전자회의 모금이나 금전 지급 등에 관하여는 법무부가 별도로 알고 있거나 관여한 바 없다”라고 반박했다.

대한민국이 피소당한 국가소송을 두고, 법무부와 보훈부 그리고 참전자회가 내놓은 소송대리인 선임 과정 및 비용지급에 대한 설명과 입장이 서로 다른 상황.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또 누가 거짓을 주장하고 있는지 대한민국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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