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일 어린이날 대체휴일이다. 효창공원역(6호선, 경의중앙선)에 내렸다. 효창공원에 가는 길이다. 몇 번 출구를 나가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역사 주변 지도를 봤다. 멀지 않은 거리에 당고개 순교성지가 눈에 띄었다. 계획에 없던 성지순례에 나섰다.

당고개순교성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당고개순교성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기해박해 1839(헌종 5) 천주교 신자 10명이 순교한 곳
- 여성 순교자 3명이 시성(諡聖), ‘어머니의 성지라고 불려

비가 내리고 있다. 봄비치고는 빗살이 거세다. 바람도 차다. 원효로의 고층 건물을 뒤로하고 한참을 걸었다. 보도블록에는 서울도보관광이라는 이정표가 새겨져 있다. 이정표를 따라갔다. 경부선 철로 따라 이어지는 낡은 잿빛 공장이 낯설다. 잊어버린 추억이 살아나는 듯하다. 그것도 잠깐이다. 초고층 아파트 숲(용산 대림e편한세상)이다. 나지막한 언덕(문배산) 위에 아파트단지 내 공원으로 보이는 녹지가 나타났다. ‘신계역사공원이다. 당고개순교성지는 이 공원과 이어져 있다. ‘일상적 공간 속의 성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다. ‘성지가 우리의 삶 속에 있다는 의미를 되새긴다.

일상적 공간 속의 성지’? 신계역사공원

공원의 산책길(?)을 따라갔다. ‘18 당고개순교성지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당고개순교성지는 기해박해가 일어난 1839(헌종 5) 천주교 신자 10명이 순교한 곳이다. 뒤집어 말하면 처형의 형장인 셈이다. 순교자 중에 사제나 수도자는 없었다. 모두 평신도다. 그중에 가장 잘 알려지신 분은 복자(하나님의 종), 이성례 마리아다. 우리나라 제2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이다. 그의 남편, 최경환 성인 역시 순교자다.

그럼 ‘18’의 의미는 무엇일까. 천주교 정착 과정에서 사제와 신도의 순교지를 비롯한 서울 시내 유적지 24곳을 잇는 성지순례길 중에 18번째라는 의미란다. 서울에 그렇게 많은 순교 현장이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

사실 필자는 성지탐방은 처음이다. ‘성지오래된 유물로 여겼다.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당고개순교성지의 첫인상은 신선함이었다. 본당과 전시실이 있는 새 건물은 흔한 성당의 건축양식과 달랐다. 로마네스크나 바로크 혹은 비잔틴 양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옥의 담장을 연상시키는 벽을 가진 양옥이다. 수많은 깨진 항아리와 도자기가 만들어낸 다양한 무늬는 성스러움을 드러낸다. 성당 내부는 한옥의 창호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멋을 냈다. 참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한국 순교자의 피로 세운 성당이니깐 당연히 그런 것이 아닐까.

순교 본당, 한옥 연상시키 벽을 가진 양옥

​순교성지 본당,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순교성지 본당,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당고개순교성지 본당.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당고개순교성지 본당.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건물 2층은 그 자체가 한국의 정원이다. 넓은 잔디마당에 단아한 한옥 한 채뿐이다. 담장을 따라 십자가의 길 14처가 정원을 둘러싸고 있다. 이 건물은 아파트 재개발과 함께 2010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순례자의 걸음이 닿는 곳마다 가슴 아픈 역사가 배어 있다. 한복을 입은 채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상,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는 이성례 마리아의 삶을 묘사한 십자가의 길 14, 순교현양탑과 기념 제대, 이성례 마리아의 순교 피가 한국천주교의 씨앗이 되는 과정을 전시한 기념전시관, 그리고 이해인 수녀의 시비……. 이 모든 게 그대 이름은 순교자라는 외침처럼 느껴진다.

당고개순교성지는 여성 순교자 3명이 시성(諡聖)된 곳이다. 이 때문에 어머니의 성지로 불린다. ‘어머니의 성지는 탄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원래 신자 10명은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 성지에서 형이 집행될 예정이었다. (구정)을 앞두고 있었다. 서소문 시장 상인이 처형을 반대했다. 그래서 형 집행 장소를 당고개로 옮겼다. 당고개 성지는 남새터성지, 서소문 밖 네거리, 양화진 옆 절두산과 더불어 서울의 4대 순교 성지로 꼽힌다.

우리나라 최소의 신학교 용산예수성심

계획했던 행로를 바꿨다. ‘성지순례를 이어가기로 했다. 효창공원에 앞서 원효로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용산예수성심 신학교를 먼저 들러보기로 했다. 원효로를 따라 원효대교 북단 입구까지 걸었다. 여기서부터는 고불고불한 효창로 뒷골목이다. 오르막을 한참 올랐다. 막상 핸드폰 네비는 성심여자중·고등학교로 안내했다.

교사의 문은 닫혀있다. 정문 기둥에 ‘22 용산예수성심 신학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국 최초의 신학교 신학당이라는 설명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용산 신학당이 가톨릭신학대학교의 전신이라는 얘기인가. 그렇다. ‘용산 신학당은 충북 제천에 있는 베론 성지에서 성 요셉 신학교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용산예수성심성당.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용산예수성심성당.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함벽정.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함벽정.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하지만 10년 만에 폐교해야 했다. 병인박해(1866) 때문이다. 신학교를 이끌던 프랑스 외방 선교회 선교사 2(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 희생됐다. 새남터에서 형장의 이슬이 됐다.

20년 뒤인 1886년 프랑스 외방 선교회는 다시 경기도 여주 부엉골(부엉이 울음소리만 들리는 깊은 산골이라고 붙여진 이름) 초가집에서 사제 육성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이때 신학교 이름이 예수성심 신학교. 2년 뒤 아름답기로 유명한 함벽정(涵碧亭)이 있던 용산으로 교사를 이전했다. ‘함벽푸른 강물을 머금고 있다라는 뜻이다.

프랑스 외방 선교회는 용산에 자리하게 된 중요한 이유가 있단다. 이촌동 새남터에서 순교한 두 사제와 조금이라도 가까이하기 위해서란다. 신학교는 1945년 다시 종로구 혜화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뒤에 카톨릭신학대학교가 됐다.

예수상심성당 우리나라 세번째 서양식 성당

카메라 렌즈를 정문 문틈으로 집어넣었다. 겨우 예수상과 성당(원효로 예수성심성당)만 찍을 수 있었다. 비탈길에 세워진 이 성당은 아래서 보면 3, 옆에서 보면 2, 뒤에서 보면 1층인 비대칭 구조란다. 전체적으로 명동성당의 주교당과 비슷한 분위기다.

초기 서양식 건물 양식이 그랬던 모양이다. 원효로 예수성심성당은 명동성당과 약현성당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서양식 성당이다. 성당은 신학교 교사의 부속 건물이다. 정작 신학교 교사는 보이지 않았다. 교사는 성심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단다. 한 언론에는 이 두 건물을 평생에 한 번은 꼭 봐야 할 건물로 소개했다.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못지않게 유명한 게 있다. 성심여자중·고교에서 멀지 않은 용산문화원 근처 주택가에 있는 느티나무다. 용산의 19개 보호수 중 최고령 나무다. 630년 됐다. 밑동의 길이는 660cm나 된다. 비에 젖은 나뭇잎은 투명해 보일 정도로 싱싱하다. 하늘로 솟구친 가지는 여전히 위풍당당한 기세다. 그래도 세월의 흔적은 지울 수 없다. 밑동 줄기는 패여 있다. 거친 주름살이 울퉁불퉁하다. 줄기에는 보호수 원격 건강검진 장치가 매달려 있다. 이 노거수 앞에 얼마나 많은 역사적 사건이 있었을까.

느티나무.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느티나무.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630년 된 느티나무, 관내 최고령 수령

그렇다. 옛날 느티나무 근처에는 심원정(心遠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심원정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심유경과 왜군의 고니시 유키나가가 강화를 교섭한 장소다. 그 증거로 느티나무 뒤에 왜명강화지처비란 기념비가 서 있다. 강화를 기념하기 위해 백송도 심었다. 백송은 지난 2003년에 고사했다고 한다.

드디어 효창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왔던 길을 거의 1.5km를 되돌아가야 한다. 효창공원으로 가는 길은 마치 작은 산을 오르는 듯하다. 효창공원역에서 동그란 원형으로 난 교차로를 따라 500m를 걸었다. 생각해보니 이런 도로 구조는 당연할지도 모른다.

효창공원은 본래 왕릉이었다. 효창원이었다. 정조의 맏이인 문효세자와 문효세자의 어머니인 의빈 성씨가 모셔진 묘원이다. 왕릉이 있던 산 언저리를 따라 길을 낸 것일지도 모른다. 오르막길의 끄트머리에 효창운동장과 효창공원이 나왔다. 효창운동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규격 축구장이다. 반대표에 효창공원의 정문, 창열문(彰烈文)이 보였다.

정조의 맏이 문효세자와 그의 어머니 모신 묘원

효창공원 창열문.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효창공원 창열문.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공원 연못 주변 안중근 무궁화.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공원 연못 주변 안중근 무궁화.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공원내 조형물 점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공원내 조형물 점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봄비 내리는 효창공원을 들어섰다. 수목이 울창하다. 공원 입구에 있는 연못의 분수와 하늘을 향해 상징조형물, ‘점지(點指)’가 방문객을 반갑게 맞는다. 점지는 원반 모양의 구조체 위에 가늘고 긴 횃불 모양의 조형물이다. 점지는 선열의 정기가 이곳에 깃들어 있는 성스러운 장소를 의미한단다.

연못의 둘레에는 무궁화가 심어 있다. 삼의사(윤봉길·이봉창·백정기)와 안중근 의사 그리고 김구 선생의 무궁화다. 나라꽃, 무궁화로 삼의사와 안중근 의사, 김구 선생의 애국심을 표현한 듯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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