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환 충북지사·이범석 청주시장 중대재해처벌법 등 엄중 책임 물어야

- 지방 재해재난 광역·기초단체장 책임...대통령·중앙정부 뒤에 숨어서야

국민적 충격을 몰고 오는 대형 재해 재난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제기되는 중앙정부·대통령 책임론을 보면서 30년이 다 되어도 지방자치·지방분권은 참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에 난감하다. 이번 장마는 기상관측 이례 가장 많은 비를 쏟아내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전국 곳곳이 무너지고 끊어지고 넘쳐났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9일 오전 6시 기준 44명 사망, 6명 실종, 도로유실 912, 침수 주택 274, 전국 12천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공주시 공산성의 누각 만하루는 지붕만 남긴 채 물에 잠겼다. 백제 왕릉과 왕릉급 무덤이 모여 있는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부여 왕릉원’ ‘익산 왕궁리 유적등도 물에 잠기거나 훼손됐다.

특히 충격적인 청주 궁평지하차도 참사 보도에 국민들은 망연자실했다. 다른 저개발국 국가 연안에서나 벌어질 만 사고가 한국에서 벌어진 것에 대해 참담했다. 두 눈으로 물로 꽉 찬 지하차도를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야 바다 한 가운데서 벌어졌으니 어쩔 수 없었다지만 솔직히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태원 참사나 쭉쭉 뻗은 4차선도로 한 복판에서 벌어진 지하차도 참사는 믿기지 않았다.

이런 경악스런 사태로 연일 보도가 계속됐으나 정작 관할 책임이 있는 이범석 청주시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언론과 정치권은 윤석열 대통령이 수해가 났는데 우크라이나를 왜 갔냐며 개싸움만 했다. 언론은 재난관리시스템이 어떻고 관련 법안이 정쟁으로 미뤄지고 있었다는, 그리고 뒤늦게 호들갑 떤다는, 말 그대로 사후약방문식 보도 일색이다.

14명이 목숨을 잃은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참사는 발생 2시간 30분 전부터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등 관계기관에 미호강 범람 위험을 알리며 주민 대피와 교통 통제 요청 보고 및 신고가 최소 24차례 접수됐다.

그러나 도로통제와 재난 예방 지휘권을 갖고 있는 이범석 청주시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 모두 사고 발생 직전까지도 지하차도 침수 위험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청주시와 충북도가 위기 상황 연락을 받고서도 아무런 선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청주시는 금강홍수통제소의 범람 위기 통보를 받은 흥덕구의 보고를 받고서도 정작 지하도로 통제권을 갖고 있는 충북도에는 보고도 않고 통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청주 미호강 물이 무너진 제방을 넘어 궁평2지하차도를 덮친 시간은 지난 15일 오전 840분쯤. 미호강 범람이 시작된 오전 758112 신고전화만 제대로 챙겼어도, 오전 803분 소방대원들의 제방 둑이 무너져 미호강이 범람하고 있다는 보고에 차단지시만 내렸어도 그 생때같은 목숨들이 지금도 거짓말같이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겠나. 사건 발생 나흘째인 19일까지 김영환 충북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은 사과 성명하나 내지 않고 있다.

이범석 청주시장은 지난 17일 사과 한마디 없이 시민들에게 "교통 통제와 시민 행동 지침 등을 반드시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그럼 이번 사고로 죽은 시민들이 교통 통제와 안전 지침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했다는 말인가.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더니 기가 막히다.

김영환 도지사 처신은 더 황당하다. 지역 재난이 발생하면 1차적으로 해당 기초단체장이 통제하고 대응해야 하지만 도지사는 관할 구역의 재난안전본부 최고 사령탑으로서 경보 발령과 동원 명령, 대피 명령, 위험구역 설정 등의 역할과 책임이 있다.

그러나 생목숨이 지하차도 물속에서 죽어가는 시간에 괴산군 수해현장과 농작물 침수현장을 둘러보고 사고 현장에 온 것은 무려 4시간이 지난 뒤였다. 사과도 도민과 피해자들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에게 했다. 김영환 도지사는 지난 17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 주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영상회의에 참석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도지사로 안타깝고 국민들께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사과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뜬금없이 대미. 대북 SNS질은 잘만하더구만 정작 도민에게는 제대로 된 사과나 책임진다는 말 한마디가 없다.

지방자치제 이후 서울시를 비롯해 지방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 특히 재해의 경우 1차적으로 지자체와 단체장 관할이고 책임이다.

18년 전 16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서부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했을 때나 2020년 한국 면적의 20%가량을 태운 초대형 산불이 났을 때도 언제나 마이크를 잡고 브리핑을 한 것은 해당 지역 시장이다. 주지사는 재난 총괄 관리로 주 방위군 투입 등 사전·사후 지원을 담당한다. 대통령은 비상사태 또는 재난지역 선포를 통해 중앙정부 차원의 재정·행정적 지원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인재든 자연재해든 대형 사고만 터지면 단체장들은 대통령과 중앙정부 뒤에 숨는다. 피해지역 주민이나 피해자, 그 가족들도 왜 대통령이 안오냐고 따진다. 정치권에서는 그 시간에 대통령이 뭐했냐, 어딨었냐고 다그친다. 국민 한명 한명 모두의 목숨이 소중하다. 갑작스런 재해와 사고로 유명을 달리할 경우 그 가족이 겪는 상실감을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 피해인 경우 더더욱 그렇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언론에서는 국가균형발전을 주장할 때 꼭 이어 쓰는 것이 지방자치제, 지방분권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사건사고만 터지면 대통령과 중앙정부 뒤에 숨는다. 이런 지방자치제라면 선출이 아니라 차라리 임명직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 임명직이면 적어도 책임을 지워 해임·징계라도 시킬 수 있지 않나.

2년 후면 지자체 30주년이다. 공자는 30이면 이립(而立)이라고 했다. 스스로 일어나 독립단계라는 것이다. 허나 우리 지자체들은 언제나 홀로서기에 나설지 모르겠다. 과감하게 권역별 행정개편에 나서야 할 때다. <편집위원>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