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여의도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는 칼잡이윤석열이 열공중이다. 지난 3월 검찰총장 퇴임 이후 야권 유력 차기주자로 우뚝 선 윤석열 전 총장은 별다른 공개행보없이 잠행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언론에서는 연일 윤 전 총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루고 있지만 윤 전 총장은 요지부동이다. 이러한 현상은 4.7 재보궐선거 이후 정계입문과 대선도전을 공식 선언할 것이라는 정치권의 관측을 여지없이 깨트린 것이다. 특히 4.7 재보선이 더불어민주당의 참패와 국민의힘의 압승으로 막을 내리면서 윤 전 총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정계입문을 노크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윤 전 총장은 재보선 이후 한달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공개행보에는 소극적이다. 실제 재보선을 전후로 윤 전 총장이 대중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부친과 함께 사전투표에 나선 게 유일하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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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전문가그룹 접촉하며 고3수험생 열공모드 지속
- 국민의힘 전대 이후 이르면 6월 중순 대권등판 관측


소리소문 없이 잠행을 이어가던 윤 전 총장의 선택은 대권수업이다. 윤 전 총장은 언론노출을 극도로 피하면서 각 분야 전문가들과 접촉해 내공을 키우고 있다. 이러한 소식조차도 윤 전 총장 측보다는 윤 전 총장과 접촉했던 전문가들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윤 전 총장이 공개행보보다는 대권수업에 올인하는 것은 충분한 준비 없이 대권가도에 뛰어들었다가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과 후폭풍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고건 전 국무총리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유력 대권주자로 떠올랐다가 한순간에 몰락하거나 중도 낙마했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다. 아울러 여야의 정치지형이 여전히 유동적인 점과 섣불리 정계입문을 선택할 경우 여권의 검증공세에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강골검사로 평생을 살아온 윤 전 총장의 차분하고 전략적인 행보가 돋보인다는 대목이다.

쏟아지는 러브콜 먼저 매맞을 필요 없다잠행

윤 전 총장의 정치적 파워는 여전히 상한가다. 지난 3월초 검찰총장 퇴임을 전후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면서 여야를 통틀어 가장 유력한 차기주자로 우뚝 섰다. 이후 두달여가 흐르는 동안 주목할만한 정치적 언행은 없었지만 윤 전 총장은 차기 지지율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와 더불어 앞서거니뒤서거니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홍준표 무소속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 오세훈 서울시장,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 등 야권 잠룡들과는 사실상 비교불가 수준이다.

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잘 드러난다. 여야 전체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윤 전 총장은 이 지사와 오차범위 안 초박빙 승부를 펼치면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더구나 여론조사 지표를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더 유의미한 성적표다. 차기대선 최대 승부처인 서울은 물론 보수의 텃밭인 영남, 역대 대선 캐스팅보트였던 충청에서 상대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 양자대결도 우위구도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1112일 조사한 여야 유력주자 가상대결에서 윤 전 총장은 이 지사에게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윤 전 총장은 45.7%, 이 지사는 35.5%로 각각 집계됐다.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811일 실시한 대선 가상 양자대결에서도 윤 전 총장은 40.2%로 얻으면서 37.4%에 그친 이 지사를 앞섰다.

이 때문에 야권의 러브콜이 쏟아지는 건 당연지사다. 6.11 전당대회를 앞둔 국민의힘 당권주자들은 너도나도 윤석열 마케팅에 나선 상황이다. 윤 전 총장과의 인연을 과시하거나 영입 의지를 분명히 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유력 당권주자인 주호영 전 원내대표는 “"본인에게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채널이 있다당 대표가 되면 윤 전 총장을 최단 시간에 만나 최단 시간에 입당시키겠다고 공언할 정도였다.

초선 돌풍의 선두주자인 김웅 의원도 우리 당내 강력한 지지 기반층에서 윤 전 총장에 대한 기대가 아주 높다당 대표가 되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영입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밖에도 국민의힘 전대에 나선 거의 대부분의 주자들이 윤 전 총장과의 직간접적인 친분을 과시할 정도다.

다만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야권 안팎의 러브콜 제의에 공개적인 화답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침묵은 먼저 매맞을 필요가 없다는 말로 요약된다. 실제 범여권 일각에서는 윤석열이 야권 대선후보로 나서면 땡큐라는 의미의 이른바 윤나땡이라는 표현이 나돌 정도로 네거티브 공세에 자신감을 피력하는 상황이다. 정치권 입문은 곧바로 범여권의 융단폭격식 검증공세로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다 차분하게 준비의 시간을 갖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더구나 재보선 이후 여야 정치지형의 유동성이 커지면서 섣불리 몸을 움직이기보다는 부족한 내공을 채우는 것에 보다 집중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뉴시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뉴시스

비밀리에 각계 전문가 접촉내공 다지기 집중

윤 전 총장은 지난 3월초 앞으로도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언급하며 검찰을 떠났다. 이후 두 달여가 흘렀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4년간 일하면서 격무에 시달린 것은 물론 이른바 조국사태추미애·윤석열 갈등을 겪었다. 이 때문에 즉각적인 정치권 입문은 이뤄지지 않았다.

공개 행보보다 기나긴 잠행을 이어가고 있는 윤 전 총장의 선택은 대권수업이다. 두주불사로 유명했던 윤 전 총장이 술도 자제하면서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각종 자료와 보고서를 탐독하면서 고3수험생처럼 공부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대선과정에서 TV토론이 날로 중요해지는 만큼 이를 사전에 대비하겠다는 태도다.

아울러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퇴임 이후 국민의힘 내부 사정이 극도의 혼란상을 연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른바 아사리판에 뛰어들어 본인의 이미지를 깎아먹기보다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내실을 다지는 것이 효과적인 득점 포인트다. 이 때문에 윤 전 총장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저서를 탐독한 뒤 만남을 청한 뒤 격의없는 토론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칩거에 준하는 형태로 언론노출을 꺼리면서 국정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비밀리에 접촉하며 그야말로 열공 중이다. 이후 대권수업을 외부에 노출하면서 간접적인 정치행보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평생을 검사로 살아왔던 본인의 약점을 보완하고 대권주자로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과거 2012년 대선 도전을 앞두고 정치권 입문을 노크할 당시는 물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전문가그룹의 과외를 받은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윤 전 총장의 대권수업은 분야도 다양하다. 미중갈등이 격화되는 와중에 날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외교안보 분야는 물론 경제정책, 청년실업, 코로나방역 등 차기대선의 핵심 의제로 꼽히는 것들이다. 특히 윤 전 총장의 차기 지지율이 매번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윤 전 총장의 브레인 역할을 하겠다며 접촉을 시도하는 전문가그룹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은 그동안 외교부 2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 박도준 서울대 의대 교수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등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정당의 조력없이 스스로의 독자적인 힘으로 대권 집중수업에 나선 것이다. 수십여년을 정치인으로 살아온 여야 기존 차기주자들과 비교할 때 부족한 약점을 채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요 현안에 대한 윤 전 총장의 인식도 엿볼 수 있다. 철학과 국가관은 물론 향후 대선공약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정책의 밑그림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은 현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이었던 소득주도성장과 관련, “한국의 자영업 종사자가 1000만명이나 되는데 이들이 취약해지면 중산층 형성이 어렵고 한국 사회의 안정과 성숙이 어려워진다정책의 최대 피해자는 자영업자고 자영업자는 국가의 기본인 두꺼운 중산층을 만드는 핵심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3후보 실패 되풀이 없다완벽준비후 등판

고건 전 총리, 뉴시스
고건 전 총리, 뉴시스

그렇다면 윤 전 총장은 언제 어떤 식으로 정치무대에 공식 데뷔할까? 여야 정치권은 물론 국민적 관심도 폭발하고 있다. 지지율 상한가에도 여전히 조심스러운 행보를 거듭하면서 궁금증은 더욱 커지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시점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또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는 손을 잡을지 아니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연대를 선택할지 여부도 적잖은 관심사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윤 전 총장의 대권수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국민의힘 합류 여부를 포함한 차기대선 전략의 밑그림이 어느 정도 완성되는 시점이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야권 일각에서는 윤 전 총장의 잠행이 지나치게 길어지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윤 전 총장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를 포함한 플랜B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이 때문에 윤 전 총장이 서둘러 차기 대선도전 의사를 밝히는 것은 물론 향후 정치행보를 국민의힘에 합류할지 아니면 제3지대에서 독자세력화에 나설지 등 국민적 궁금증이 증폭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쓴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과거 대선국면을 돌이켜보면 여야 거대 정당의 기득권 정치구조 타파를 내걸고 늘 제3후보가 부상했다. 역대 제3후보 중 가장 강력한 인사는 2012년 대선 국면을 앞두고 혜성처럼 등장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였다다만 제3후보는 기존 정치권의 전방위적 공세에 무릎을 꿇고 대선에 실패하거나 중도하차한 전례가 적지 않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이 점을 충분히 알고 있는 만큼 대권수업이나 전략구상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특히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이 시작되고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마무리되는 6월 중순 이후가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라면서 윤 전 총장이 어떤 식으로 정치권에 공식 등판하든지 간에 여야의 기존 대선구도에는 엄청난 충격파를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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