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기우 언론인]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권을 장악한 이후 ‘윤석열-한동훈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의 만남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상병 특검법, 김경수 지사 복권, 의대 증원 등을 둘러싼 갈등이 또 다시 불거지면서 둘의 관계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시선이 적잖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갈등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여권 내 분위기는 그렇지만 않다. 윤 대통령은 매번 참석했던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참석하지 않았고, 당 지도부와의 만찬도 취소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윤석열-한동훈 갈등’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 “갈등은 없다”면서 尹 與 의원연찬회 불참, 韓 만찬 연기
- ‘의대정원’ 중재 나섰다가 ‘얼굴’ 붉힌 윤-한 갈등 ‘고조’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지난 6월 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 ‘차기 대표가 되면 공수처 수사 종결 여부와 무관하게 제삼자가 공정하게 특검을 고르는 내용의 채상병 특검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국민의힘 당대표가 된 이후에도 ‘제삼자 특검법’을 발의에 무게를 뒀다. 더불어민주당은 “‘채상병 특검법’을 발의하라”며 연일 한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한 대표는 지난 26일 민주당이 자신을 향해 ‘채상병 특검법’을 발의하라고 압박하는 데 대해 “그걸 따라갈 이유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 대표는 “민주당 입장에선 정치 게임으로 봐서 여권 분열 포석을 두는 것”이라며 “정 급하면 자기들이 대법원장 특검으로 독소조항을 빼서 새로 발의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것과 별개로 저는 (대법원장 추천 방식 특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당내 이견을 좁히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결과를 보고 특검을 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도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다”며 “원칙적으로 보면 특검은 수사가 진행된 이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물론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국민의힘 대다수 의원은 ‘공수처 수사 결과 발표 뒤 특검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한 대표의 태도와 달라지면서 당정 간 화합에 방점을 두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자연스레 ‘윤석열-한동훈 갈등’도 사그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의대 정원 유예 두고 또 불거진 ‘윤-한 갈등’
그러나 이 같은 전망은 얼마가지 못했다. 지난 25일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유예하는 방안을 한덕수 국무총리 등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대통령실은 한 총리를 통해 유예가 어렵다는 입장을 당에 전달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도 용산에 힘을 실었다. 그는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증원) 추진 방침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당도 함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 개혁에 관해 국민이 전폭적 지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의료 개혁은 한치도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한다”며 “상당 부분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하면서 필수의료 또는 전공의, 의료 현장 수가 체계 개선 등 많은 합의, 진전이 있는 걸로 안다”며 “증원 관련해 현재 아직 뚜렷한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는데, 어쨌거나 정부도 앞으로 의료계와 대화 진행중이고 접점이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도 쐐기를 박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9일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이제 의대 증원이 마무리된 만큼, 개혁의 본질인 지역·필수 의료 살리기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의료개혁을 멈출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증원 문제를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다”라며 “37회에 걸쳐서 의사 증원과 양성에 관한 문제들을 의료인 단체들과도 협의를 해왔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증원을) 지금부터 시작해도 10년, 15년이 지나서야 의사 공급이 추가되기 시작하기 때문에 부득이 (지금) 할 수밖에 없다”며 “의사단체들은 무조건 안 된다고, 오히려 줄이라고 한다. 국민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 정부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라고 강조했다. 한 대표가 제안한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보류안을 거부하면서 의대 증원을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강조한 셈이다.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29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번 연찬회는 한동훈 대표 체제 이후 처음 열리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여당 연찬회에 불참하는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연찬회는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열리는 연례행사다. 당 지도부와 소속 국회의원들이 모여 현안을 논의하고 당의 결속력을 다지는 자리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모든 연찬회에 참석했다.
또 대통령실은 30일 예정됐던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등 여당 지도부 만찬을 추석 연휴 이후로 연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연기 이유에 대해 “추석을 앞두고 당정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민생 대책을 고민하는 모습이 우선”이라며 “여당 지도부와의 식사는 추석 연휴가 끝나고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의대 증원을 둘러싼 한 대표의 ‘다른 목소리’에 대통령실이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친윤계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대통령 따로 가고, 당 따로 가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예가 단 한 번도 없다”며 “현실적으로 대통령의 권력이 더 강하다. 더 강한 대통령과 함께 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당 지도부, 원내 지도부가 더 많이 고민해야 하고, 의원들의 의사가 어디에 있는지, 모으는 절차를 더 자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야 당 지도부가 정부에 말할 힘이 생긴다. 설득을 해야지, 그냥 말 한마디로 툭툭 던진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며 각종 현안을 두고 대통령실과 다른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상황을 겨냥했다.
세력 미미한 친한계 ‘윤-한’ 결말은?
당 안팎에서는 ‘윤석열-한동훈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소속 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당 연찬회 시작 직후 인사말만 한 채 ‘다른 일정’을 이유로 자리를 떠났다. 대통령실이 주도하는 ‘의료개혁 관련 정부보고’ 및 질의 응답(총 80분)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여권 내에서는 ‘윤석열-한동훈 갈등’에 우려하면서도 그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그 결과는 여당 내 세력 분포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당의 주류는 친윤계다. 친한계 의원들도 있지만 현재로선 세력이 미미하다. 이 때문에 한 대표는 현역의원들과 스킨십을 갖는 등 세력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다만 추 원내대표가 윤석열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를 했고, 당내 현역들 대다수가 친윤이라는 점에서 다소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한 의원은 “친윤계와 친한계로 분류되 있는 의원들 중에서는 자신은 ‘중립’이라고 말하는 의원들이 적잖다”고 귀띔했다. 실제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대통령실 주도하는 의료개혁에 대해 한 대표의 주장에 힘을 싣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시 불거진 ‘윤석열-한동훈 갈등’이 어떻게 마무리 될지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