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정부 기구 중의 일부일거야... 상공부나 재무부 뭐 그런데 있는 정부 기구 아닐까...”

“제 친구가 그런 걸 알 것 같아요. 상공부에서 일하니까. 제가 알아보고 오지요.”
조준철이 밖으로 나갔다.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갔던 그가 금세 들어왔다. 곽 경감은 거기가 공장이니까 그와 관련된 시청이나 상공부 같은 관청의 기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준철이 들어왔다.
“알았어요. 그건 내무부에 있는 기구래요.”
“내무부?”

곽 경감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무부의 문서나 메모지가 공단의 봉제 공장에서 발견된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이상하게 본다면 볼 수도 있었다. 납치 흔적이 있는 곳에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은 내무부와 관계있는 자가 그 일에 관여했을지도 모른다는 억측을 낳게 할 수도 있었다.
“그 숫자 알았어요.”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조준철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그 숫자는 자동차 번호가 맞아요. 트럭의 번호판은 여섯 자리로 되어 있어요. 67에 8932...”

“맞아. 그것일지도 몰라...”
곽 경감은 조준철의 하숙집에서 새우잠을 잔 뒤 이튿날 변두리 다방에 강형사를 불러냈다. 그리고 67-8932라는 트럭의 차적을 알아 달라고 부탁했다.
"경감님은 수배되어 있으면서 무슨 수사를 한다고 그러세요? 망할 놈의 세상...”
강 형사는 곽 경감이 적어준 쪽지를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서글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형사와 헤어진 뒤 곽 경감은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갑자기 늙은 아내와 딸이 보고 싶었다. 집에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그는 카페 몇 군데를 더 서성거리다가 문득 남산을 쳐다보았다.
푸른 소나무는 애국가의 2절을 생각나게 했다. 그 위로 높이 솟아 있는 탑을 보았다.
그는 문득 그 곳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산 지가 30여 년이 되었지만 늘 남산 위에 한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가 보지는 못했었다.

그는 택시 한 대를 잡아타고 남산에 갔다. 도서관 앞을 한 바퀴 돈 뒤에 타워로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갔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 같은 서울을 내려다보았다. 저 많은 건물들 틈에 아내도 있고 나미도 있고 그가 찾고 있는 백성규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는 거기서 간이 음식점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혼자 남산 타워 위에 올라가 점심을 먹는 기분이란 묘하게 느껴졌다.

그는 점심을 먹은 뒤 평소에 가고 싶던 곳을 또 생각해 보았다. 광릉 숲이었다. 그가 대학시절 같은 과의 여학생과 처음 데이트했을 때 가 보았던 곳이었다. 그 여학생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때로 일에 쫓길 때면 문득 그 여학생이 생각나고 광릉수목원이 머릿속에 그려졌었다. 그러나 일에 쫓겨 그 뒤 한 번도 그 곳에 가본 일이 없었다.
곽 경감은 버스를 타고 퇴계원까지 갔다. 오후 두 시가 훨씬 넘었다. 그는 서둘러 택시 한 대를 잡아타고 수목원으로 갔다. 고갯마루에 초소가 있었다. 지나가는 차를 전부 세우고 헌병과 정복 순경이 체크를 했다.

곽 경감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지금 수배되어 있는 몸이 아닌가?
그렇다고 거기서 도망 갈 수도 없는 처지 였다. 차가 헌병 앞에 섰다.
곽 경감은 시선이 마주치지 않도록 고개를 돌렸다. 헌병은 차안을 힐끔 보더니 그냥 가라는 손짓을 했다. 참으로 형식적인 검문이었다.
곽 경감은 사건이 날 때마다 검문을 강화한다고 떠들지만 그 것이 얼마나 허술한 짓인가를 실감했다.

추운 계절 해질 무렵이라서 그런지 수목원에는 관람객이 아무도 없었다.
곽 경감은 혼자 이곳저곳을 한 시간쯤 돌아다니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조준철의 하숙집에 돌아 왔을 때는 피곤하고 다리도 아팠다.
시계를 보았다. 6시가 훨씬 넘었다.
그가 하숙집 방문 앞에 이르렀을 때, 문틈에 조그만 쪽지가 한장 붙어 있었다.
‘그 여관에 있겠습니다.’

쪽지에는 이 말만 적혀 있었다. 곽 경감은 분명히 자기 보라고 적어 두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여관이란 며칠 전 나봉주가 시골에서 올라 왔을 때 조준철이 만났던 곳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하숙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모텔급 여관이었다.
곽 경감은 그 곳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 오셨죠?”

곽경감은 이 여관에서 조준철이 의사 선생님으로 통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층 3호실입니다.”
곽 경감이 그 방에 갔을 때 도어가 약간 열려 있었다. 곽 경감은 문을 살그머니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그는 얼른 문을 쾅 닫았다. 방안에서는 조준철이 여자를 껴안고 누워 있었다. 거의 벗은 듯한 그 여자는 얼핏 보아도 나봉주인 것 같았다.
그들은 잠이 든 것 같았다. 그런데 잠을 자는 남녀의 모습이 너무나 우스웠다. 벌거벗고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의 자세가 참으로 구경거리였다. 여자가 반드시 누워있는데 남자의 손은 여자의 거시기를 손바닥으로 덮어 꼭쥐고 있었다.

여자는 옆으로 손을 뻗어 남자의 거시기를 손으로 움켜쥐고 잠들어있었다. 정사를 한 뒤 아쉬움을 태우면서 잠이 든 것 같았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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