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하도 위기를 느끼고 그에게서 빠져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놓아 주기는커녕 여자를 더욱 거세게 끌어당기며 얼굴에 자기 얼굴을 비벼댔다. 한 손이 가라이로 들어와 그곳을 움켜 쥐었다.
“이거 놔요!”

조은하가 그를 떠밀었다. 그러나 그는 놓아주지 않았다.
“내 앞에서도 벗어보아. 내 것도 받으란 말이야.”
그는 조은하의 스커트를 걷어 올리려고 애를 썼다.
“정말 왜 이래요? 미쳤어요?”
“미친 건 은하야. 넌 더러워졌어. 이 세상에 더 살아 있을 가치가 없어. 나한테 네 육체를 맡겨.”
조은하가 미친 듯이 덤벼드는 고문직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이 더러운 게...”

고문직은 얼굴이 험하게 변했다. 스커트를 걷어 올리고 사타구니를 공격하던 그의 손이 갑자기 여자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여자가 숨이 막혀 발버둥 쳤다.
“넌 죽어야 해! 죽어서 더러워진 몸을 씻어야 해!”

마침내 조은하가 의식을 잃자 고문직은 여자의 목에 있는 스카프로 다시 여자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몇 번 발버둥 치던 조은하는 마침내 사지가 축 늘어지고 말았다. 죽은 것이다.
여자가 축 늘어져 땅바닥에 허물어지자 그는 충혈 된 눈으로 여자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은하야...”
제 정신이 아닌 고문직은 여자를 들쳐 메고 유원지로 갔다. 텅빈 유원지는 고요했다. 그는 벤치에 여자를 반듯이 눕히고 곁에 앉았다.
“은하야. 이제 너는 영원히 내 꺼야. 아무도 다시는 네 몸을 더럽히지 못할 거야. 내 사랑 은하야...”

그는 조은하의 뺨에 자기 뺨을 대고 비볐다. 그의 눈에서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은하야, 내가 하늘로 보내주마.”
그는 조은하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안고 일어섰다. 그리고 회전 그네에 앉히고 그네의 스위치를 넣었다. 조은하가 그네를 타고 캄캄한 하늘로 치솟았다.
"은하야!"

하늘로 치솟는 조은하를 보면서 그는 절규했다. 그때 갑자기 소나기가 밤하늘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더러워진 조은하의 육체를 씻어내려는 듯이...

67. 당신 모가지 몇 개야?

하 경감의 이야기를 듣고 난 나봉주는 숙연해졌다.
“그런 걸 우리는 흔히 빗나간 사랑이라고 하나요?”
하경감이 천천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문 뒤 말했다.
“사련(邪戀)이라는 낡은 말이 있지.”

“고문직 교장은 조은하를 짝사랑하면서 평소에 왜 한 번도 왜 고백하지 않았을까요?”
“고백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어요. 몇 번 고백을 했다가 거절당했을지도 몰라.”
“고문직 교장이 조은하를 죽였다는 물적 증거는 충분한가요? 그가 거짓 자백을 할 수도 있지 않아요?”

나봉주가 몇 번이나 벼르던 말을 꺼냈다.
“고문직 교장의 집에서는 평소에 조은하가 쓰던 물건이 여러 개 나왔어요. 조은하의 손때 묻은 책, 화장품, 심지어 속옷까지... 그의 일기책에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었지. 현장에서도 증거는 많았어. 그리고 목격자도 충분히 확보했거든...”
하 경감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뒤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고문직 교장의 짝사랑이 지나쳤어. 변태적 수준이라고나 할까?”
“변태라니요?”

나봉주가 말을 해 놓고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조은하의 나체 사진이 여러 장 있었어. 특히 아래쪽을 클로즈업해서 찍은 장면이 많았거든 여자의 은밀한 곳을 확대해서 찍어 보관한다면 변태 아니야? 아마 몰카인 것 같아.”

“본인이 알았다면 얼마나 챙피 해 했을까... 그리고...”
하 경감이 더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변태 고문직이 조은하의 그곳 사진을 펴놓고 자위행위라도 하지 않았나 하는 말을 하려던 같았다. 
나봉주는 고문직 교장의 미친 사랑이 어쩐지 가슴 아팠다.

승부는 끝난 것 같았다. 계단 그늘에 숨어 있는 곽 경감이 아무리 용을 써 보았자, 사태가 뒤집어 질 것 같지는 않았다.

서종서 차관과 조준철은 두 사람이 더 가세하여 세 사람이 된 백성규 일당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권총 뿌리 앞에 꿇어앉는 신세가 되었다.
“정채명 장관 이래도 되는 거요?”
서종서가 눈두덩을 얻어맞아 퍼렇게 부어 오른 얼굴로 그때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던 정채명을 보고 말했다.

“이제 곧 세상이 바뀔 터인데 쓸데없는 반항은 하지 말고 우리 공화국에 협력하시오”
정채명이 조용하게, 그러나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정일만 국장이 당신을 수상하다고 했을 때 믿지 않았던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었소. 당신이 이 엄청난 반역자들의 괴수였군 그래. 도대체 이런 방식으로 정권이 빼앗아 질 것 같아요?”

서종서 차관이 침을 뱉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평생 동안 출세 지상주의로 살아온 전형적인 무소신 공무원 출신으로 알려진 서종서의 새로운 면모를 보는 것 같다고 곽 경감은 생각하고 있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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