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문재인 전 대통령은 과연 검찰 포토라인 앞에 설 것인가. 문 전 대통령의 향후 거취가 여야 극한대치 정국의 최대 변수로 급부상했다. 문 전 대통령의 옛 사위인 서모씨의 항공사 취업특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최근 문 전 대통령의 딸 다혜씨의 주거지와 별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특히 압수수색 영장에 문 전 대통령을 ‘뇌물죄 피의자’라고 적시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확산돼 갔다. 이에 따라 문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 여부는 향후 정국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정국 흐름과 여론 추이에 따라서는 ‘검찰의 전직 대통령 수사’라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 ‘文사위 항공사 특혜채용’ 검찰수사 속도전에 거센 후폭풍
- 文 침묵 기조 속 딸 다혜씨 “이제 참지 않겠다” 강경 기조
- ‘뇌물죄 피의자’ 文, 검찰 수사 향방에 따라 정국 최대 분수령
핵심 당사자인 문 전 대통령이 침묵하는 가운데 여야는 연일 날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죄없는 전임 대통령 괴롭히기’라며 강력 반발했다. 명백한 정치보복이자 야당 탄압이라는 주장이다. 국민의힘은 ‘법치주의 원칙에 따른 정당한 수사’라는 입장이다. 문 전 대통령도 법 앞의 평등에서 예외일 수 없는 만큼 검찰의 직접 수사도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문제는 향후 정국에 미칠 후폭풍이다. 사실상 전·현직 대통령의 정면충돌 양상으로 비화할 수 있다. 서해공무원 피살사건과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에 이어 문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文 뇌물죄 피의자’ 적시…검찰, 다혜씨 주거지·별장압수색 후폭풍
문 전 대통령의 옛 사위 서모씨에 대한 항공사 특혜채용 사건이 정국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4년 전 고발사건으로 다소 지지부진했던 검찰수사는 지난해 9월 친윤계로 불리는 이창수 당시 전주지검장 부임 이후 수사 속도가 붙었다. 전주지검이 지난달 30일 문 전 대통령 딸 다혜씨의 주거지와 제주 별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면서 압수수색 영장에 문 전 대통령을 2억2000만원의 뇌물수수 피의자로 적시했다. 앞서 지난 1월 서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최근 수사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사건 개요는 비교적 간단하다. 문재인정부 시절 지난 2018년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에 임명됐다. 이후 문 전 대통령의 옛 사위 서모씨는 이 전 의원이 실소유한 태국계 저비용 항공사인 타이이스타젯에 전무이사로 취업했다. 당시 서 씨가 항공업계 경력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중진공 이사장 임명에 대한 대가성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검찰의 판단은 서 씨가 받은 급여와 체류비 등 총 2억2000만원이 사실상 뇌물 성격이라는 것이다. 이는 딸 다혜 씨 부부의 생활비 등 경제적 지원에 나섰던 문 전 대통령이 사위 서모씨의 타이이스타젯 취업 이후 지원을 끊었다면 서 씨의 급여는 문 전 대통령이 받은 경제적 이익, 다시 말해 뇌물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 전 대통령 최측근들이 줄줄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현옥 전 청와대 인사수석은 물론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까지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사실상 검찰수사의 칼끝이 문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는 것이다. 조국 대표는 “추석 명절 밥상에 윤석열, 김건희 대신 다른 이름을 올리기 위한 국면 전환용 기획 수사”라고 비판했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검찰은 몇 년 동안 털어도 제대로 나온 게 없으니, 드디어 대통령의 딸을 공격한다”며 “자신들이 바라는 죄가 나올 때까지 별건 조사는 물론이고 먼지 털이식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보복성 기우제성 수사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및 내각 출신 의원 30여명도 “전임 대통령을 모욕준다고 현 정부의 무능과 실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며 “전임 대통령에 대한 억지 정치 보복을 중단하라. 부질없고 부정의한 칼춤을 당장 멈추라”고 촉구했다.
전주지검은 문 전 대통령 주변의 반발에 수사의 적법성을 강조했다. 전주지검은 “압수수색 과정에 대상자 측 변호사가 참여했고 그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했으며, 현재까지 이의신청도 없었다”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최소한의 범위에서 압수했음에도 일각에서 제기하는 일방적인 음해성 주장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입장문을 냈다.
양측의 갈등은 그야말로 전면전이다. 만일 문 전 대통령이 뇌물죄 혐의로 사법적 판단을 받는다면 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상징성을 고려할 때 진보의 몰락이다. 야권에서 기를 쓰고 검찰수사를 반대하는 이유다.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면 검찰개혁론이 거세지면서 현 정부가 곤경에 처할 수 있다. 정치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전직 대통령 수사라는 무리한 칼을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文 전 대통령 딸 다혜씨 “더 이상 참지 않겠다” 강력 반발
문 전 대통령은 별다른 입장 없이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일상을 공유하면서 책을 주로 주변에 소개하는 SNS에서도 검찰수사에 대한 언급은 없다. 최근에는 본인의 페이스북에 ‘통도사 메밀밭’이라는 짤막한 글과 함께 10초 영상의 분량을 올렸다. 영상에서 반바지를 입은 문 전 대통령은 아무런 말 없이 우산을 든 채 메밀밭을 응시하는 모습이다.
반면 딸 다혜씨는 검찰수사를 정면 반박하고 있다. 다혜씨는 지난 4일 SNS에서 올린 글에서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냐”며 “이제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다혜씨는 특히 문 전 대통령과 손을 잡고 나란히 포즈를 잡은 사진을 올리면서 “경제공동체라는 말을 만들어서 성공했던지라 다시금 추억의 용어를 소환해서 오더(?)를 준 건가”라면서 “우리는 ‘경제공동체’ 아니고 ‘운명공동체’인 가족”이라며 윤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윤 대통령이 과거 국정농단 수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씨를 경제공동체로 묶어서 사법처리에 나선 전략을 꼬집은 것이다.
불똥은 오히려 여야 정치권으로 튀었다. 여야는 문 전 대통령과 딸 다혜씨에 대한 검찰수사를 놓고 격렬하게 대립했다. 민주당은 전형적인 정치보복 수사라면서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촉발한 ‘논두렁시계 2탄’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불가피성을 내비쳤다.
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윤건영 의원은 “모욕 주기, 망신 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서 “김건희 명품백 사건 등에 대한 물타기고,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 시선을 돌려보려는 정치탄압”이라고 규정했다. 박찬대 원내대표 역시 “검찰 수사는 전직 대통령을 향한 전형적인 망신 주기로, 국정 실패에 대한 국민의 여론과 관심을 돌리려는 눈속임 공작 수사”라고 비판했다. 검찰 출신의 이성윤 민주당 의원은 “국민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논두렁 시계 수사 2탄'이라며 분노하고 있다”며 “수사가 아니고 스토킹이다. 이쯤 되면 검찰의 운명은 다했으니 검찰청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은 “배은망덕 수사이자 패륜 수사”라고 비꼬았다. 문 전 대통령이 윤 대통령을 과거 검찰총장으로 발탁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는 조롱이다.
국민의힘은 정반대의 입장이다. 민주당이 여당 시절 적폐청산 수사에 환호하면서도 막상 야당이 되니 치졸한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하는 건 내로남불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법률과 규정에 입각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정당한 수사를 중단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수사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김재원 최고위원 역시 “거의 증거가 확보됐을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빨리 소환해서 구속수사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대구시장 역시 “문재인 정권 초기 야당 대표를 했던 나를 1년 6개월간 계좌 추적하고 통신 조회하고 내 아들, 며느리까지 내사했다”며 “이제 와서 자기 가족들 비리 조사한다고 측근들이 '정치 보복' 운운하는 건 참 후안무치하기 그지없다”고 비꼬았다.
文뇌물죄 성립? 검찰 수사 향방에 정국 후폭풍 극심
이번 사건은 문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의 정면충돌 양상이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의 기구한 운명도 주목받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과거 국정원 댓글 수사로 한직을 전전하던 윤석열 대통령을 정권 출범과 더불어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한 뒤 이후 검찰총장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초기만 해도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다만 조국사태 이후 문 전 대통령과 등을 돌린 이후 정치적으로 결별했다. 이후 20대 대선 국면에서 국민의힘 대권 주자로 나서 정권교체의 염원을 이뤄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 울산시장 선거개입 △ 서해공무원 피살사건 △ 탈북어민 강제북송사건 등의 이슈를 놓고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문 전 대통령은 검찰수사의 압박 속에서 본인의 도덕성을 증명해야 한다. 윤 대통령 또한 정치보복 수사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검찰수사가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둘 중 한 명의 치명상은 불가피하다. 검찰수사는 크게 세 갈래다. 이상직 전 의원에 대한 중진공 이사장 임명의 정당성과 그에 대한 댓가로 항공업계와 무관한 사위 서모씨에 대한 특혜채용 여부 등 사실관계 확인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문 전 대통령의 관여 여부도 밝혀내야 할 사안이다.
여권은 문재인정부 시절 ‘적폐청산’ 프레임으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고강도 수사가 이뤄진 만큼 문 전 대통령 역시 같은 잣대로 수사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문제는 검찰의 전직 대통령 수사가 가져올 후폭풍이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특정인이나 특정 정당을 겨냥한 수사가 아니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번 수사는 기획수사가 아니라 지난 2021년 시민단체의 고발을 단서로 수사가 진행된 것은 물론 압수수색 역시 법원에서 적법하게 발부받은 영장에 기초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 주변에서는 그동안 이 전 의원의 중진공 이사장 임명 절차는 문제가 없고 사위 특혜채용에도 개입한 것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다만 검찰수사가 최근 급물살을 타면서 상황은 다시 복잡해졌다. 검찰이 지난달 30일 다혜씨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한 만큼 조만간 다혜씨의 소환 조사는 물론 문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조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르면 추석 연휴 이후 여론 추이에 따라서는 문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상황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은 정권교체 이후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과 수사라는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돼왔다”면서도 “전직 대통령이 뇌물죄 피의자라는 것은 심각한 사안이다. 무엇보다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검찰이 보다 공명정대한 태도로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여야의 불필요한 공방은 오히려 국론분열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며 “문 전 대통령이 떳떳하다면 검찰수사와 재판 과정에 협조해서 무죄와 결백을 증명하는 게 전직 대통령의 책임지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