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성 변호사 “윤석열 정부, 역사 포기… 후퇴”
군함도 해설사 “조선인들 앞다퉈 일하려고 경쟁”

군함도. [박정우 기자]
군함도. [박정우 기자]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일제 강제동원 현장인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하지만 전시나 안내되는 내용에서 전쟁범죄에 대한 사실 명시는 전혀 없다. 이에 2015년 군함도(하시마섬) 등재 당시 상황이 재조명받고 있다. 당시 일본은 ‘강제성’ 내용을 게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가 지난해 세계유산 등재 투표권을 얻어 이번 사도광산 등재에 앞서 입장을 충분히 피력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강제동원’ 사실이 서술되지 않자 정부 협상 및 대응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본 언론은 한일 정부가 강제동원 표현을 쓰지 않기로 사전에 합의했다고 보도하는 가운데, 국회는 정부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2015년 ‘군함도(하시마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당시 사토 구니 전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한국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의지에 반해 끌려와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한 것을 알리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이렇듯 세계유산 등재 전에는 ‘강제성’과 관련한 표현이 있었지만, 등재 이후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강제로 끌고 간 사실이 없다”라며 입장을 뒤집었다. 이번 사도광산의 경우에는 아예 강제성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지난달 27일 가노 다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채택된 모든 결정과 일본의 약속들을 명심할 것”이라며 “한반도 출신을 포함한 모든 사도광산의 노동자를 추모한다”라고 말했다.

결정문의 ‘한반도 출신 노동자’는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이라는 의미를 부정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한편 일본 언론은 ‘강제동원’ 관련 표현을 쓰지 않기로 한일 정부가 사전 협의했다는 기사를 앞다퉈 보도 중이다.

정부는 ‘강제’ 표현 요구 일본은 ‘거부’, 그래도 합의?

지난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외교부가 제출한 ‘강제 단어 협의’ 관련 답변 자료에 따르면 “(사도광산 관련) 전시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일본의 과거 사료 및 전시 문안을 일본 측에 요구했으나, 최종적으로 일본은 수용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이에 일본이 ‘강제’ 표현을 수용하지 않았음에도 우리 정부가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해 준 것이라는 논란이 점화됐다. 한국은 지난해 만장일치로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되는 구조 속 투표권을 가진 위원국이 됐다. 협상 테이블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었다.

우리나라가 반대 의사를 표하면 사도광산은 등재될 수 없었다. 이렇듯 2015년 군함도 당시보다 긍정적인 상황이었지만, 어떤 성과도 얻어내지 못하며 결과는 후퇴했다는 평이 나온다.

임재성 변호사는 한겨레를 통해 “윤석열 정부는 역사를 포기했다”라며 “2015년 군함도 때보다 훨씬 후퇴해, 사실상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실은 ‘일본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얻어냈다’라고 말하지만, 거짓말에 가깝다. 외교를 포기해놓고, 외교를 했다는 거짓말”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우리 정부가 요구했어야 할 사안으로 ‘2015년 (군함도) 약속을 온전히 이행할 것’, ‘사도광산에서 벌어진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에 대해 일본 정부의 공식적 입장표명’, ‘군함도 뒤통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세계유산 지역 내부 강제동원 사실이 명시된 전시시설 즉각적 설치’ 등을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임 변호사는 “세 가지 중 그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 못했다”라며 “군함도 때는 모르고 속았다면, 사도광산 때는 알고도 속았다”라고 비판했다.

역사왜곡 온상 군함도… 현장은?

지난 7일 취재진은 2019년경 강제동원 희생자 추도식을 위해 군함도를 방문한 역사단체 기억의 봄 회원들을 만났다. 연구원 고 모 씨는 배를 예매하는 안내소부터 항구, 선박, 섬 내부, 해설까지 전부 왜곡된 역사로 설명돼 있다고 밝혔다.

고 씨는 “안내소와 선박에 사진과 일본어, 영어로 표기된 해설이 명시돼 있는데 군함도에 대한 예찬뿐이었다”라며 “근대 일본 산업의 상징이자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유산이라고 소개한다”라고 밝혔다.

고 씨는 가장 큰 문제점은 섬에 정박한 이후 발생했다고 한다. 그는 “군함도 초입에서 내국인과 외국인을 분리한 다음 서로 다른 코스로 이동해 따로 해설을 진행한다”라며 “일본인 해설가는 ‘군함도 노동은 고됐지만, 임금이 높아 조선인들이 서로 다투며 오려 했다’라고 외국인들에게 설명했다”라고 회상했다.

끝으로 고 씨는 “섬 내 희생자 추도식도 제지당해 항구에서 술잔을 올렸다”라며 “군함도에서 뒤통수를 맞고도 사도광산과 관련해 (정부가) 그런 처사를 할 수 있는지, 정녕 우리나라 정부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역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엄청난 굴욕”이라고 일갈했다.

국회 “정부 합당한 대응해야… 촉구”

지난 6일 우원식 국회의장은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결정 관련 입장문’을 통해 사도광산 사태에 대해 정부 책임을 물었다. 우 의장은 “불법 식민지배와 강제동원의 피해국인 ‘대한민국 정부’로서 합당한 대응을 촉구한 국회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할 뿐만 아니라 국민적 상식과 보편적 역사 인식에서 크게 벗어났고,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나아가 국회를 대표해 정부에 두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로 사도광산 등재를 둘러싼 외교협상 과정과 내용, 전모 공개다. 우 의장은 “모르고 등재에 동의했다면 외교협상의 실패이고, 알고도 동의했다면 더 큰 문제”라며 “전시 내용에 대한 사전합의가 있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를 비롯해 여러 의문이 제기된다”라고 지적했다.

둘째로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 제공을 일본 정부에 요청하라고 촉구했다. 우 의장은 “숱한 사람들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로 노동자, 군인·군속으로 끌려갔다”라며 “굶고 매 맞고 다치고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였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 유골도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렇지만 누가 어디서 얼마나 어디로 끌려갔는지, 어디서 어떻게 희생당했는지, 그 실태와 진실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군함도 굴욕 이후 사도광산 사태가 벌어지며 정부 대응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역사는 전쟁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다고 평하며 현 상황을 평가했다.

군함도 내부. [박정우 기자]
군함도 내부. [박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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