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급발진 의심’ 사고 결국은 ‘운전자 조작미숙’

시청역 앞 역주행 사고 현장.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과 소주병 등이 놓여 있다. [이창환 기자]
시청역 앞 역주행 사고 현장.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과 소주병 등이 놓여 있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 발생 빈도가 높아지면서, 소비자와 완성차업체 사이 갈등을 풀어줄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국립과학수사대가 최근 5년 간 급발진 의심사고를 조사한 결과, 단 한건도 인정받은 사례가 없다. 이를 두고 문제제기가 나온다. 특히 완성차업체가 소비자 과실 주장의 근거로 삼는 ‘EDR(사고기록장치)’ 기록의 오류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 경찰 수사 후 언급되는 “제동장치 미(未)작동”은 주변 CCTV나 차량의 블랙박스 촬영을 근거로 하기에 ‘정말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는데 제동 등(燈)이 켜지지 않았다면?’ 이라는 의문이 따라다닐 수 있다. 만일 발밑에 블랙박스가 설치돼 있었다면 이는 의문스러운 일도 아니다. 과연 ‘발밑 블랙박스’ 설치 안하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급발진 의심사고 증가폭 확대… ‘발 밑 블랙박스’ 도입은?
국회, 소비자 & 제조사 눈치… 블랙박스 설치 여론에 등 돌려

지난달 1일 서울시청 앞 일방통행 도로에서 제네시스 G80 차량이 역주행 사고를 일으켰다. 이 사고로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경찰 수사 결과 최종적으로 운전자의 ‘운전미숙에 의한 가속페달 오인 작동’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차량이 인도로 돌진하며 사고가 발생하던 당시 A씨는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 페달을 밟았다는 것. 이에 대한 근거로 경찰은 “브레이크 등이 점등되지 않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영상을 확인했다고 언급했다. 

경찰, EDR은 정상 “피의자 가속페달 밟아”

남대문 경찰서는 지난 1일 “급발진 여부 분석 결과, 피의자는 주차장 출구 약 7~8미터 전에 이르러 ‘우두두’하는 소리와 함께 ‘브레이크가 딱딱해져 밟히지 않았다’며 차량 결함으로 인한 사고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라면서도 “국과수 감정 결과, 가속장치 및 제동장치의 기계적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고, EDR 또한 정상 기록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EDR 분석에 따르면 제동페달은 사고 5초 전부터 사고발생 시까지 작동되지 않았고, 충돌 직후 보조 제동등 잠시 점멸 외에 주행 중 제동등이 점등되지 않은 것이 확인됐다”라 “가속페달 변위량은 최대 99%에서 0%까지로 피의자가 밟았다 뗐다를 반복한 것으로 기록됐다”라고 설명했다. 또 “피의자가 신었던 오른쪽 신발 바닥에서 확인된 정형 문양이 가속페달과 상호 일치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고 전했다.

경찰은 “국과수 감정결과, 주변 CCTV 12대 및 블랙박스 4개의 영상자료, 참고인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바, 피의자 주장과 달리 운전조작미숙으로 확인된다”라면서 “피의자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업무상과실치사상) 제3조 제1항 및 형법 제268조 위반 혐의로 송치했다”고 덧붙였다.

‘급발진’ 의심사고, 제조사 증명 법안 개정될까?

2022년 4월 국토교통부는 “전국의 자동차 등록대수가 2500만 대를 돌파했다”라면서 “국민 2명 중 1명은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국민 둘 중 하나는 누구나 급발진 의심사고 또는 조작 미숙에 의한 사고를 발생시킬 가능성에 놓여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에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국회부의장을 지낸 정우택 전 국민의힘 의원이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 시 결함 원인에 대한 입증책임을 제조사가 부담토록 하는 내용을 담은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 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정 전 의원은 당시 “고도의 기술력으로 제조된 자동차의 결함을 비전문가인 일반 소비자가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도, 입증책임을 소비자에게 지우는 것은 무리”라면서 “개정안을 통해 입증책임을 현실에 맞도록 재분배해 국민들을 급발진 피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발의됐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법은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가 발생하면 소비자이자 피해자가 모든 것을 증명토록 하고 있어 억울함을 따지려 해도,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개정안으로 급발진 의심사고 발생 시 차량 제조사가 ‘입증책임’을 부담토록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법원 ‘자료제출명령제도’로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진상규명에 무조건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 없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담았다”라면서 “전문가조차 제대로 분석하기 어려운 첨단 전자장비들이 자동차에 적용되고 있는 시대로, 비전문가인 일반 소비자가 사고차량의 모든 정보는 물론 돈과 시간까지 갖춘 제조사에 대등하게 맞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소비자 과실 ‘100%’ 법안 발의 한계점은?

문제는 이런 법안이 발의되더라도 통과되는 것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미 10년이 넘도록 ‘민관합동조사단’이 꾸려져 급발진 의심사고에 대해 조사하고, 지원해왔지만 어떤 것도 진척된 것이 없다. 더욱이 지난 10여 년간 급발진 의심 사고 가운데 단 한 건도 인정받은 것이 없다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국과수가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확인해 보면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급발진 의심사고 관련 국과수 감정 진행 건은 총 364건이다. 2020년 57건, 2021년 56건, 2022년 76건, 2023년 117건 등이며, 올 상반기에만 벌써 58건이나 감정을 진행했다.

이 중 100%의 확률로 모두 소비자(운전자) 과실로 판명됐다는 것을 고려할 때, 국과수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제동등의 점등 유무와 EDR 기록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ECU 장치 차량의 경우 제동 페달을 밟더라도 제동등이 켜지지 않을 수 있다”라면서 “EDR 장치는 제조사의 면죄부 수단일 뿐 100%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발밑 설치 페달 블랙박스”라면서 “확보된 영상을 통해 제동장치와 가속페달 중 무엇을 밟았는지 쉽게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튜브 ‘한문철 TV’를 운영하고 있는 교통사고 분야 전문 한문철 변호사 역시 자신의 채널을 통해 “급발진 의심사고의 입증을 위해서는 ‘페달 블랙박스’가 답”이라면서 “이를 통해 확보된 영상이 정확한 판별 근거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지난 10여 년간 수백 건의 급발진 의심사고가 있었지만, 단 한건도 제조사 잘못으로 판명된 사례는 없다. 더욱이 소비자 과실이 100%라는 결과는 더욱 의구심을 자아낸다. 국회와 완성차업계가 이런 국민적 의심을 떨치고, ‘의심사고’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다. 페달 블랙박스의 의무설치를 요구하는 소비자의 목소리도 확대되는 이유다. 

최근 5년간 국과수 급발진 의심사고 조사 건수. [국과수]
최근 5년간 국과수 급발진 의심사고 조사 건수. [국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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