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색 강해지면 서울 민심은 멀어져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 이재명 대표 [뉴시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 이재명 대표 [뉴시스]

[일요서울 l 박철호 기자]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이재명 호위무사'로 입지를 굳힌 모양새다. 최근 김 최고위원은 여야를 막론한 공격적인 발언으로 화두에 올랐다. 그러자 전당대회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전폭 지원을 받은 김 최고위원이 성과로 보답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김 최고위원이 차기 서울시장 선거를 염두에 둔 적극 행보를 펼치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We go high' 외친 김민석의 변신 
22대 총선 선거 운동 기간 첫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당시 비대위원장)는 "정치를 개 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말했다. 당시 민주당 총선상황실장인 김 최고위원은 당 내부에 "한동훈 위원장 욕설에 과도한 대응은 자제하라"고 공지했다. 김 최고위원은 미셸 오바마의 명언을 인용해 "그들이 저급하게 나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며 "품격 있게 국민 앞에 지지를 호소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선거 운동 첫날 경합 또는 우세 지역이 대거 열세로 돌아섰다는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확인했다. 승기를 잡은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도발에 응할 이유가 없었다. 야권 내 '전략가'로 꼽히는 김 최고위원의 발 빠른 대처는 호평을 받았다. 여론은 정치 초보 한 대표의 실수로 귀결됐다. 

다만 품격을 강조한 김 최고위원의 최근 발언 수위는 심상치 않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23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정부가 정권 교체를 막기 위한 쿠데타적 계엄이나 테러 유혹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배 국민의힘 부대변인은 당일 논평을 통해 "저급한 인식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받아쳤다. 

범야권을 향한 공격도 강해지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19일 국회 본회의에 불참한 조국혁신당 의원들을 두고 "쇄빙선 내려서 동네 선거하나? 부끄럽다. 지방의원인가"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어서 지난 22일 자신의 SNS에 "국회의결에 빠지는 소탐대실"이라며 "이미 고인 물을 넘어 상하기 시작한 물"이라고 지적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창당한 새미래민주당에 대한 독설도 이어졌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자신의 SNS에 "어설픈 제3세력론으로 망한 후에 갑자기 민주당 이름을 무단차용해 우회 복귀를 꿈꾸면서, 자기네 편이 불붙인 검찰의 조작질 성공기원 나팔을 불어대는 모습은 역겹다"며 "이 전 총리 잔당들은 모두 정계은퇴가 맞다"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전병헌 새민주 대표는 지난 26일 시사저널TV에 출연해 "이 대표의 애완견에서 사냥개로 나섰다"고 응수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최고위원이 차기 서울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석준 전 의원은 지난 26일 매일신문 유튜브에 출연해 "(김 최고위원) 본인이 서울시장 선거를 굉장히 나가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야권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2년 남은 지방선거에 출마할 서울시장 후보군들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원내에서는 김 최고위원·정청래·박홍근·박주민 민주당 의원, 원외에서는 홍익표·우상호 전 의원 등이 거론된다. 

盧를 져버린 DJ의 정치적 아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뉴시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뉴시스]

김 최고위원의 정치 인생에서 '서울시장'은 빼놓을 수 없는 단어다. 1982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김 최고위원은 1985년 총학생회장과 전국학생총연합의장을 맡았다. 그는 1985년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으로 3년간 구속된 뒤 1990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입 인재로 정계에 입문했다. 

김 최고위원은 1992년 14대 총선 당시 28세의 나이로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했다. 그는 노태우 정부의 경제부총리를 지낸 고(故) 나웅배 전 의원을 상대로 불과 260표 차이로 낙선하며 86세대의 선두로 떠올랐다. 1995년 1회 지방선거 당시 김 최고위원은 고(故) 조순 전 시울시장 캠프에서 대변인 및 기획단장을 맡았다. 그는 선거 초반 2%에 불과한 지지율을 딛고 역전한 '조순 드라마'를 함께했다.   

이어서 김 최고위원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다시금 영등포을에 도전한다. 당시 유명 배우인 최불암(본명 최영한) 전 의원과 맞붙은 김 최고위원은 "최불암은 무대로, 김민석은 국회로"라는 구호를 앞세워 32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최 전 의원은 2011년 "상대방의 선거 전략이 너무 좋았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른 전성기에 돌입했다. 대통령이 총재를 겸임하던 시절인 2000년 DJ의 총재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김 최고위원은 16대 총선에서도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2002년 6월 지방선거 당시 38세의 나이로 새천년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돼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맞붙었다. 

당시 김 최고위원은 12월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노무현-김민석과 함께 가는 것이야말로 미래로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장 선거 결과 김 최고위원은 9% 격차로 이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이내 추락은 시작됐다. 김 최고위원은 대선을 두 달 앞둔 2002년 10월 민주당을 탈당해 정몽준 전 의원의 국민통합21로 합류했다. 당시 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김 최고위원을 "원칙과 소신도 없이 오로지 여당을 하고 싶은 철새"라고 비판했다. 

당시 김 최고위원은 탈당 선언문에서 "이 길이 후보단일화를 통해 대선 승리를 이루기 위한 현실적인 마지막 대안"이라고 강변했다. 실제로 김 최고위원은 정 전 의원 측의 협상 대표로서 노 전 대통령 측 신계륜 전 의원과 여론조사 방식 단일화에 합의했다. 

한겨레 기자 출신인 김의겸 전 의원은 2002년 11월 29일 작성한 기사에서 민주당 측이 단일화 협상 연기를 요청하자 김 최고위원이 "노무현은 내가 죽여버리겠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김 최고위원은 자신의 발언을 사과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김 최고위원은 21대 총선 당시 선거공보에 "'이회창 대세론' 뒤집으려 민주당 탈당. 노무현 캠프 신계륜과 단일화 그러나 정몽준의 노무현 지지 철회로 정치적 미아가 되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도 자서전에서 김 최고위원의 행동을 두고 "후보단일화를 해야만 이길 수 있다는 신념과 충정의 발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 정치적으로 좋은 결과를 안겨주지는 않았다"고 두둔했다. 

김 최고위원은 2010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피선거권을 5년간 박탈당하기도 했다. 그는 21대 총선에서 승리하기 전까지 18년간 야인 생활을 지속했다. 이렇다 보니 김 최고위원이 자신의 정치적 명예 회복을 위해 서울시장 출마를 고려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김 최고위원이 차기 서울시장을 염두에 둔다면 지금의 공격적인 행보가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김 최고위원은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시민들이 비정치적인 색깔을 잇는 분을 원하는 공통성이 있다. 조순, 고건, 박원순, 이명박, 오세훈이 다 그런 컬러"라고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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