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한수원에 근무하는 20대 청년이 회사 사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는 유서로 추정되는 글도 함께 발견됐으며, 타살 흔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경찰은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직장 동료와 간부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망 원인과 경위를 조사하고 특히 유서에 적힌 내용이 직장 내 괴롭힘 관련여부와 이것이 중대재해처벌법에 해당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단순한 자살 사건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내부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고인이 직장 내 괴롭힘과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아왔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한수원은 황주호 사장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한 엔지니어링 조직개편에 대한 성토의 글들이 봇물 터지듯 일고 있다. 내부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게시글에 문제(사망)의 근본원인은 엔지니어링 조직개편’,‘역대 최악의 조직개편인명사고’,‘ 조직개편이 사람 죽였다.’‘과거보다 엄청나게 힘들어진 업무환경’,‘엔지니어 조직개편 제대로 하려면 2배 인력이 필요하다.’ 등의 게시글이 눈길을 끌었다.

한수원 황 사장은 엔지니어링 체계는 원전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라며, “선진화된 엔지니어링 체계를 우리 환경에 맞게 적용해 초격차 원자력 경쟁력을 갖추고, 나아가 운영체계도 수출 품목의 하나로 성장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다. 미국 조지아공과대학교 대학원 원자핵공학 박사이자 원자력공학 교수로서 풍부한 지식을 기초하여 운영체계 고도화로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높여 원전 이용률을 높이자는 취지이다.

그러나 발전소 현장의 상황은 황 사장의 교과서적 안내와 전혀 딴판이다. 엔지니어링 조직개편은 대한민국 원자력 사상 최초로 적용되는 것으로 혁신적 도전이다. 이제까지 기계/전기/계측 분야별 정비관리 체계를 엔지니어링 체계로 바꾸는 것으로 정비체계를 융복합하여 엔지니어체계로 체질변경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성이 우수한 인재 영입과 바뀌는 업무량에 맞는 조직진단을 통해 그에 맞은 인원보강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이지 단순히 간판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한편 평생 해왔던 분야별 정비관리 체계를 시범적용도 없이 이론적 근거에만 기반하여 추진되는 것은 13,000명으로 이뤄진 한수원 시스템에 대한 무시이자 오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꽃다운 젊은 청년이 심장에 칼을 꽂고 자결하며 유서 3장을 남긴 사건을 단순 자살 사건으로 넘길 사안이 아니라 원자력발전소 현장의 상황이 폭발전 임계점에 왔다는 상황인식이 필요하다. 원전종사자가 안전해야 국민이 안전하다.

한수원의 운영체계 및 정비체계의 고도화는 원자력발전소에 일하는 종사자의 전문성 강화와 위기대응 능력 고도화와 같은 말이다. 황 사장이 좋은 취지로 추진하는 한수원의 운영체계 고도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현장의 불만이 아니라 한수원의 인사제도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한수원의 인사제도는 2015년 원전비리 근절이라는 핑계로 탈원전 선동꾼이 주도하여 제정된 원전감독법(원전비리 방지를 위한 원자력발전사사업자 등의 관리 감독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순환근무제를 적용하고 있다. 순환근무 제도는 한 사업소에 장기근속하게 되면 유착등 비리의 원인이 된다고 보는 관점에서 다른 사업소로 강제 순환근무 시키는 제도이다. 때문에 원전 종사자의 전문성을 축적시킬 수 없고, 원전의 안전문화까지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APR1400형 새울1발전소에서는 입사한 신입직원이 현장에 밸브 하나를 조작하는데 2년의 교육의 시간이 필요하다. 신입사원 교육에만 2년의 시간을 투자하지만 정작 9년차가 되면 타발전소로 강제 이동을 해야 한다. 운전원과 정비원의 일부 유예적용을 하고는 있지만 원전감독법 이후 한수원에 입사하면 퇴직할 때까지 2~3번의 사업소 순환보직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여러 나라에서 수입해 왔고, 기술개발 해왔다. 제일 먼저 미국에서 수입해 왔던 웨스팅하우스형, 캐나다에서 수입한 중수로 CANDU, 프랑스에서 공급받은 프라마톰형, 미국과 한국이 협력하여 건설한 OPR, 국내기술로 자립한 APR형 등 이렇게 다양한 원자력발전소 모델이 있다. 이렇듯 외국으로부터 도입된 원자력발전소는 수입국에 따라 역사와 쓰는 언어가 다르듯이 각자의 독도법, 원자로시설의 구조, 재료 및 설계, 원자로의 운전제어 등 이 완전히 다르다.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처음 외국 땅을 밟았을 때의 낯설고 어색한 느낌을 생각해보면 그와 비슷할 것이다. 또한 원자력발전소는 수없이 많은 설비와 부품들의 집합체로 어느 시스템보다 복잡한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델이 전혀 다른 발전소로 이동하게 되면 신입사원과 같이 머리가 새하얘지는 그야말로 백지상태가 되어 버리고 만다. 따라서 모델이 다른 발전소로 이동하게 되면 다시 신입사원 처지가 되어 버린다. 때문에 고참이 되면 발전소를 벗어나려는 문화가 팽배해 있다.

이렇게 매 10년마다 신입사원이 되어버리는 인적구성으로 정비능력을 고도화하겠다는 엔지니어링 조직개편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한편 현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직을 알박기로 수행하고 있는 당시 김제남 국회의원(정의당 소속 비례대표)이 발의한 원전감독법은 원전산업계의 구조적 유착 관계 근절 구매 제도 구조 개선 품질·검증 시스템 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원자력발전공공기관 임직원의 재산등록의무(14)와 취업제한에 관한 규정(15)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직업선택의 자유를 현저히 침해하고 있다. 또한 굴뚝 없는 에너지원인 원자력에서 종사하는 에너지 영웅을 비리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구감소 및 고령화에 상반되게 원자력기술자에 대한 수요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신규 원전수출 등 원자력산업은 3배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취업 제한 규정 때문에 원자력발전소에서 평생 일해왔던 고급 시니어 인재들의 노하우를 활용하지 못하고 치킨집을 운영하게 하여 망하게 하는 상황을 멈춰야 한다.

우리 국민 모두는 원자력을 통해 모두가 잘먹고 잘사는 것 그리고 원자력을 안전하게 잘 관리되는 것을 희망한다. 원자력을 앞날을 가로막고, 원자력안전을 위협하는 원전감독법은 여야가 하나된 목소리로 폐기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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