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중도원(任重道遠)’은 <논어(論語)> ‘태백편(泰伯篇)’에 실린 고사성어로,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역대 모든 대한민국 대통령은 취임 후 ‘임중도원’의 소명에서 단 하루도 편안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대통령직은 어려운 자리이다.

한국이 이룬 ‘한강의 기적’을 말하면 진부한 이야기라고 치부하는 부류가 있지만, 그것은 놀랍게도 한국인에게만 그렇다. 개발도상에 있는 인류에게 한국은 여전히 경이로운 대상이며, 가보고 싶고 배우고 싶은 희망의 나라다.

박정희 대통령이 펼친 경국대본(經國大本)은 부국강병과 국태민안으로 압축된다. 박정희정신은 ‘실사구시(實事求是)’와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이라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반공을 국시(國是)로 삼고, 자주국방과 자립경제의 두 축 위에 ‘수출주도-중화학공업육성-외자도입’ 국가전략으로 5,000년 찌든 가난(보릿고개)을 몰아냈고, 민주화로 가는 물적(物的) 토대를 만들었다.

지금 대한민국호(號)는 박정희에게 길을 물어야 한다. 시대가 증명하고 세계가 인정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기러기가 우연히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고 홀연히 떠난(雪泥鴻爪·설니홍조) 삶을 영위하지 않았다. 국민에게 얻게 하고 본인은 재가 된 지도자이다. 그야말로 멸사봉공의 산증인이다.

그가 걸어온 영욕의 길을 반추함으로써 조국의 미래에 대해 답을 찾아야 한다. ‘위기의 대한민국’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국가대개조’가 필요한데, 필자는 그것을 소위 ‘경북4대정신’에서 찾고 싶다.

경북4대정신은 ‘화랑-선비-호국-새마을정신’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기본정신이다. ‘경북4대정신’은 곧 대한민국 국가정체성의 원형으로 민족문화와 국가발전을 이끌어온 주춧돌 역할을 면면히 해왔으며, ‘박정희정신’의 역사적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의 ‘화랑정신’은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 건설의 초석이 되었으며, 포용과 개방성으로 ‘한민족’의 원형을 만든 바탕이 되었다. 중세의 ‘선비정신’은 고려·조선의 올곧은 현실 참여를 이끌었으며, 선비의 기개와 절의는 호국정신의 바탕이 되었다. 근대의 ‘호국정신’은 국난 극복의 바탕이 되었다. 구한말 항일의병 운동과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들은 나라를 지킨 원동력이 되었다. 현대의 ‘새마을정신’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으며, 근면·자조·협동의 박정희 정신은 ‘세계정신’으로 승화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국교 정상화를 추진한다고 하여 야당으로부터 ‘매국노’라는 욕을 들었으며, 월남에 국군을 파병한다고 하여 ‘젊은이의 피를 판다’는 악담을 들었으며, 서독의 돈을 빌려서 경제건설을 앞당기겠다고 하여 ‘차관 망국’이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그러나 수많은 반대 여론을 뛰어넘어 산업화·선진화의 바탕을 이루었다.

박 대통령은 “내가 잘했는지 못 했는지는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라며 자신 있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말했다. 1977년 봄. 기자들과 환담에서 한 그의 말에서 지도자의 진정한 ‘역사관’을 엿볼 수 있다.

“나는 물론 인간인 이상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당대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 일하지 않았고, 후세 사가(史家)들이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일해 왔다.”

여소야대의 정국 구도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지만, 윤석열 정부의 중간 성적은 ‘구름만 가득 끼어있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는 뜻의 ‘밀운불우(密雲不雨)’의 상태가 아닐까. 낮은 대통령 지지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윤 대통령은 ‘박정희의 역사관’을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추진동력이 약해졌다.

그는 대통령 취임 후 일관되게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과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개혁은 인기가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반드시 우리가 해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여기에다 올 2월에는 의료개혁을 추가해 ‘4대 개혁’을 추진 중인데, “강력한 적과 미온적인 동지”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형상이다.

그러나 ‘4대 개혁’의 국정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이다. 당장 손에 잡히는 성과가 없더라도 아직 임기가 반환점을 돌지 않은 윤 대통령은 <순자(荀子)>에 나오는 ‘공재불사’(功在不舍, 성공은 그만두지 않음에 있다)의 투철한 개혁 의지를 불태워야 한다. 지속 가능한 나라를 위한 보수 정권의 개혁과제는 혁명보다 어려운 일이다. 윤 대통령은 개혁에 수반되는 저항에 ‘설득과 타협’의 높은 정치력을 발휘하여 박정희 대통령처럼 “당대의 인기보다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는 자세로 ‘4대개혁’에 일로매진해야 한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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