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대정원 확대 재논의 없다” VS 의료계 “본질 못 짚는 정부의 개악”

[뉴시스]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정부의 내년도 의대정원 확대 방침을 놓고 의‧정 갈등이 심화하면서, 전공의들이 대거 사직서를 내고 의료현장을 떠난 데 이어 의대생들이 등교를 거부하는 등 의료대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소위 ‘응급실 뺑뺑이’ 등 의료공백 사태로 이어지며 국가 의료체계가 붕괴 위기를 맞았다는 우려마저 자아내고 있다. 이에 윤석열 정부와 여당도 의료계의 이같은 집단 반발에 대응 노선이 미세하게 갈리는 등 좀처럼 갈피를 못 잡는 모양새다. 의료대란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 여당이 추진 중인 여‧야‧의‧정 협의체는 의료계 불참 선언에 20일 현재까지 닻도 올리지 못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협의체 구성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야말로 이해당사자인 정치권과 의료계, 의료서비스 싱크홀에 직‧간접적 피해를 보고 있는 국민들까지 총체적으로 엮인 대혼돈 국면이다. 이에 본지는 의료대란 중심부에 선 전공의 단체 등 의료계의 반발 사유와 여야의정 협의체를 둘러싼 정치권 난맥상을 짚어 봤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2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 일환으로 내년도 의대정원을 기존에서 2000명 수준 더 늘린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와 함께 정부 패키지에는 개원가 중심의 현 의료생태계와 수도권‧지방 의료서비스 불균형, 필수의료(소아청소년과‧외과‧내과‧산부인과‧흉부외과‧응급의학과 등) 고사 위기, 전공의 수련‧근로 여건 등을 개선한다는 취지도 담겼다. 

역대 정부들도 이같은 의료개혁을 고민하지 않은 아니다. 하지만 의료계 실상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에 따른 합리적‧대승적 방안을 도출하는 작업에는 고도의 의료‧정책 전문성과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는 만큼, 역대 어느 정부도 의료개혁에 쉽사리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필수의료혁신 전략’이라는 기치 아래 의대정원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의료개혁을 강행하고 나섰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필수의료 패키지 정부안 공개와 함께 의대정원 확대에 대해 “의사 수가 부족해서 많은 국민이 불편을 겪고 있다”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의사 인력 확대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사회문제로 자리매김한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 의료서비스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서는 의대정원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서울시내의 한 의과대학의 모습 [뉴시스]

전공의들의 의료현장 집단 이탈이 7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현 시점에도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확고하다. 의정갈등의 중심에 선 전공의 단체들이 내년도 의대정원 확대를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며 업무 복귀와 협의체 참여를 모두 거부하고 있음에도 “이미 내년도 수시 접수가 시작돼 논의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의정갈등 지속에 지난달 말 고위당정협의회에서 2026년도 의대정원 확대를 유예하자는 절충안을 냈지만 대통령실은 이 또한 거부한 바 있다. ‘의료계 반발에 굴복해 의료개혁이 지연되거나 좌초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윤석열 대통령의 기본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지난 19일 “의료계는 (여야의정) 협의체 제안에 대해 정부의 태도 변화와 같은 전제조건을 달며 문제 해결을 미루지 말라”면서 “우선 대화의 장에 나와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재차 못 박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의힘 신임 당 지도부 만찬에 앞서 한동훈 신임 당대표와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의힘 신임 당 지도부 만찬에 앞서 한동훈 신임 당대표와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여야의정 협의체, 의료계 핵심단체 불참에 닻도 못 올려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료계 핵심 단체들도 의대정원 확대 철회, 사직 전공의에 대한 수사중단 등을 주장하며 물러서지 않는 모양새다.

의협은 추석 연휴 전 여야의정 협의체가 화두에 오르자, 지난 13일 8개 의료단체와 함께 공식 입장을 내고 “아무 죄 없는 전공의들을 경찰서로 불러 전 국민 앞에 망신을 주고 겁박하면서 협의체로 들어오라고 한다”며 “이는 대화 제의가 아니고 의료계에 대한 우롱”이라고 정부를 직격했다. 이와 함께 2025년도 의대증원 재논의를 비롯해 의료개혁 강행에 대한 정부의 사과, 사직 전공의들에 대한 수사 중단 등을 협의체 참여 조건으로 내걸었다. 

전공의 협의체인 대전협에서도 당정을 향한 극한의 불신을 드러냈다. 국민의힘 한동훈 지도부가 협의체 출범을 위해 의료계와 꾸준히 접촉을 시도하는 등 대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힌 데 대해 ‘거짓과 날조’라고 맞선 것이다. 

박단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8일 자신의 SNS에 “한동훈 당대표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유감”이라며 “당대표 출마 전인 6월 초에도, 당 대표 당선 직후인 7월 말에도, 언론에서는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한 대표는 지속적으로 만남을 거절했다. (한 대표가 강조한대로) 읍소는커녕 단 한 번 비공개 만남 이후 대전협은 한 대표와 소통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거짓과 날조 위에 신뢰를 쌓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본지에 “박 비대위원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한동훈 당대표가 협의체 출범을 앞두고 협상 핵심인 전공의 단체를 패싱했을리 없지 않나. 소통창구가 박 대표만 있는 게 아닌데, 거기서 생긴 오해”라고 설명했다.

사직전공의들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사직전공의들을 위한 근골격계 초음파 연수 강좌'를 듣고 있다. [뉴시스]
사직전공의들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사직전공의들을 위한 근골격계 초음파 연수 강좌'를 듣고 있다. [뉴시스]

전공의 “의사 수 부족? 정부 ‘오진’...진료수가 개선이 핵심”

그렇다면 의정갈등의 핵심 주체인 전공의들이 무려 7개월째 의료계를 떠나 정부와 대치전선을 두텁게 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지 취재에 따르면 전공의들은 의료개혁 패키지는 의료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부의 ‘오진(誤診)’에 기반한 탁상행정이라며 의사 수 확대도 국내 의료생태계를 개선할 근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 방침을 전면 백지화하지 않는 이상 전공의들은 여야의정 협의체에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대전협 소속인 한 사직 전공의는 정부 의료 패키지에 대해 “필수의료 부문에서 수가를 높이겠다고 한 정부 방안은 과거를 답습하는 수준에 그쳐있다”며 “일례로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과의 경우 진찰수가를 높이는 게 핵심인데, 정부안은 입원수가 증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가) 의료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탁상행정이자 졸속 정책”이라고 짚었다.

또 그는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여부에 대해 “정부안이 철회될 가능성도 없어 보이고, 동료 전공의들이 수사까지 받고 있는 마당에 (협의체에) 참여할 일은 추호도 없다”고 단언했다.   

또 경기권 대학병원 소속 인턴이었다가 사직한지 5개월이 됐다는 한 전공의도 “2035년까지 의사 1만5천명을 추가 확보해야 한다는 정부 주장도 어폐가 있는 게, 저출생에 인구 감소세가 뚜렷하고 지금도 우리나라의 면적당 의사 수는 주요국에 비해 전혀 부족함이 없다”면서 “문제의 본질은 필수과 전공의들에 대한 진료수가 체계를 실효적으로 개선하는 것인데, 정부가 완전히 ‘오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병원 인턴들은 월급 200만 원대를 받으며 소명의식 하나로 열악한 수련여건 속에서 몸을 갈아넣고 있는데, 이러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도 급선무”라며 “전공의들이 ‘공공재’라는 인식 하에 이렇듯 혹사시키는 구조적 시스템이 혁신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의료 불균형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반면 정부는 필수‧지역의료 불균형의 원인을 의사 수 부족으로 지목한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2035년이면 의사가 1만5천명 부족해질 것이라는 수급 전망(한국개발연구원‧서울대‧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통계)에 따라 향후 10년간 의사 1만명을 증원하는 것을 의료개혁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그 일환으로 현 3000명대인 의대정원을 내년부터 2029년까지 5000명대로 늘려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이후에는 의료계 실태 등을 감안해 정원을 유동적으로 관리하다는 계획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