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폐쇄적인 자급적 농업 중심 사회였으며, 노비가 전체 인구의 30~40%를 차지한 신분제 사회였다. 조선의 노비는 생사여탈(生死與奪)이 주인에게 있는 재물로서의 노예였다. 노비는 주인의 토지를 경작하고 지대를 바쳤다. 노예적 생산양식이 지배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체제는 ‘지배와 보호’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한 국가체제는 외부의 충격에 무척 취약하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왜군의 한양 도성 침입이 임박하자 4월 30일 선조(宣祖)는 평양으로 몽진(蒙塵, 임금이 난리를 피하여 안전한 곳으로 떠남)을 떠났다. 그러자 왕실을 호위하는 금위군(禁衛軍)이 가장 먼저 흩어졌으며, 난민(亂民)들은 경복궁·창덕궁에 불을 질렀고 장예원(掌隷院, 노비문서와 소송을 담당하던 관아)과 형조의 노비문서를 불태웠다.

소작의 역사는 멀리 삼국시대에서 시작되었으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 농지개혁 때까지 이어졌다.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동은 수원 백씨들이 대대로 살아온 마을이었다. 박정희의 아버지 박성빈은 수원 백씨 문중으로 장가들어 처가의 위토(位土, 문중 제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마련된 토지) 약 1,600평을 소작하는 가난한 농부였다. 박정희는 성장하면서 소작농의 비애를 경험했으며, 그래서 빈부격차를 해소해야 하겠다는 신념이 싹텄다.

우리 역사의 반인륜적인 ‘착취’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바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과 ‘소작제도 금지’다. 이승만 대통령은 제헌헌법에 “농지는 농민만이 소유할 수 있고, 농지 소유는 최대 3정보(약 9천 평)를 초과할 수 없다.”고 한 ‘농지개혁’을 명시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제3공화국 헌법 제113조에 “농지의 소작제도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금지된다.”라고 ‘소작농 금지’를 명시했다.

지니(Gini)계수는 빈부격차와 계층 간 소득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0(완전 평등)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완전 불평등)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0.331으로 호주(0.318)보다 다소 높고, 일본(0.334)과 유사한 수치를 보였다. 미국(0.375)·영국(0.355) 등은 우리나라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주관적 계층 인식은 ‘하층’이 줄고 ‘상층’이 늘었다(출처: 2023년 국민통합위원회 이슈 페이퍼). 박정희 대통령의 ‘소작농 금지’가 소득불평등과 소득양극화의 악화를 막는 데 크게 일조했다 할 수 있다.

좌승희 전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은 “박정희 시대는 세계 최고의 동반성장을 경험했지만, 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성장과 분배가 악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박정희의 ‘동반성장 메카니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중소기업을 수출기업으로 육성 → 수출 수익을 국내 투자로 환원 → 내수(서민경제) 활성화 →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도시와 농촌의 포용적 동반성장 창출 →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개선.”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의 20%에 달하는 자영업자는 과거 농업사회의 소작농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 약자이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7위 수준으로 미국(6.6%), 독일(8.7%), 일본(9.6%) 등 주요 선진국의 2∼3배 수준이다.

지금은 폐업 자영업자 100만 명 시대다. 서민경제의 주축으로 민생경제의 최전방을 지키고 있는 570만 자영업자가 절체절명의 위기다. 고물가·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내수 불황, 원재료비 상승과 최저임금 인상 등이 겹치며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이 1,056조 원에 달했고, 취약 자영업자의 대출금 연체율이 10.21%까지 치솟았다.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인 자영업자 빚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이에 속이 타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정책과 제도가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의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제 경제구조를 다시 짜야 한다. 자영업 비중을 줄여야 한다. 단기 대책인 현금 지급이나 보조금 지원 등은 최소화하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개혁에 집중해야 한다. 경쟁력을 잃은 자영업자는 채무조정과 금융지원으로 전·폐업을 유도하고, 임금근로자로 재취업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구직 및 인력개발 프로그램을 적극 가동해야 한다.

자영업자의 위기는 우리 경제에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자영업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경기침체의 탈출구를 찾기 힘들 수 있다. 특단의 내수 진작책이 필요하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정부는 새로운 중장기 자영업자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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